22.01.13 09:14최종 업데이트 22.01.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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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배우 오영수의 TV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을 발표하는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갈무리. ⓒ 골든글로브

 
팔순을 앞둔 노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노배우의 열정이 이룬 성과에 문재인 대통령도, 윤석열 후보도 축하를 보냈다.

오영수의 수상을 계기로 <오징어 게임>에 대해 잠시 다시 곱씹어 보게 됐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본주의를 데스 게임에 담아 나름 독하게 풍자하는 한편, 그 유명한 오일남(오영수의 극 중 배역)의 "우린 깐부잖아"가 등장하는 구슬치기 게임을 다루는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오징어 게임>의 폭발적인 인기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 인기의 다른 한 축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시리즈의 설정부터 에피소드 전반에 깔려 있는 수많은 밈(meme) 요소였을 것이다. 

밈이란, 인터넷 이용자들이 적절한 쓰임이나 재미를 위해 SNS와 커뮤니티에 패러디해 확산시킨 창작물을 지칭한다. <오징어 게임>에는 이런 밈에 적합한 요소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제목에 상징적으로 쓰인 ○ △ ▭ 도형, 독특한 복장의 진행요원들, 녹색 트레이닝복의 참가자들,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해봤을 놀이들, 그리고 "그만해, 이러다간 다 죽어!"와 같은 몰입도 높은 장면에 배치된 실생활에서 활용도 높은 명대사들까지.

전략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징어 게임>의 밈들이 온라인 공간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밈들이 확산될수록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오징어 게임>의 밈화는 국경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온라인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극 중 데스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만들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의 게임을 실제로 재현하는 이벤트가 세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개최되기까지 했다.

<오징어 게임>은 하나의 현상이라 불릴 만했고, 여기에는 밈을 통해 대중이 놀이문화로 향유하면서 콘텐츠를 확산시킨 작용이 존재했다. 사실 <오징어 게임>이 가장 최근의 두드러진 사례일 뿐이지 밈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확산되며 콘텐츠의 영향력을 키우거나 수명을 연장하거나 재발굴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욕구

이런 밈의 시대적 효용 때문인지 대선 후보들도 밈 요소를 넣은 홍보 동영상이나 이미지들을 SNS나 유튜브에 올리며 주목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경향에 가장 앞장서 있는 것은 단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다.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시절부터 반려견 토리를 동원해 젊은 유권자들과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검찰 출신에 지금까지 대중과 접촉면도 없었던 본인의 소위 '아재'스럽고 딱딱한 인상을 중화하려는 시도였겠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경선 후보 시기 최대 실수였던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여당과 언론뿐만 아니라 야당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그날 밤 인스타그램 반려견 토리의 계정에 난데없이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모습을 올려 '사과는 개나 주라'는 조롱이 아니냐는 논란이 오히려 더 크게 일었다. 지금까지도 해당 사진의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밈을 한번 노려봤다가 사과는 사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

지난 1월 8일에는 앞선 1월 6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SNS '멸공' 발언 이후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들고 쇼핑하는 모습의 사진에 '#멸치'와 '#콩'을 해시태그로까지 달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소위 '멸공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 포스팅을 두고 윤 후보는 공산주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당장 중국과 북한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두 국가와의 관계가 국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라의 제1 야당 대통령 후보가 몰상식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여당과 전문가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윤 후보 본인과 캠프는 이 포스팅을 정용진 회장의 발언에 대한 유머러스한 밈 정도로 생각하고 올렸을 수 있지만, 본인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국가의 지정학적 특징과 국제 관계의 기초 상식조차 부족하다는 점만 드러냈다. 대선 후보가 노린 재미도 목적도 없는 밈 하나가 국가 간, 남북 간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8일 낮 12시쯤 이마트 이수점을 방문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통조림 3개를 들고 살펴보는 모습과 약콩 봉지를 든 모습이 담긴 사진 2장과 함께 “장보기에 진심인 편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라는 글을 올렸다. ⓒ 윤석열 인스타그램

 
윤 후보 측은 페이스북에 공약을 구호처럼 1~2줄로 적어 놓는 게시물을 연속적으로 올리는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월 6일에는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고 단 두 줄 게시물을 올리더니, 다음 날에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 게시물을 올렸다.

이런 게시물들도 일종의 문자로 구성된 밈을 노린 전략으로 여길 수 있다. 메시지만 최대한 선명하게 반복적으로 내보내 의도적인 논란을 일으켜 관심을 끄는 식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가 첨예한 사회 이슈인 젠더와 직결되는 공약을 아무런 맥락 설명 없이 구호처럼 던져둘 때 그걸 수용해야 하는 유권자들은 메시지의 맥락을 추측해야 하고 결국 불명확한 상태에서 찬·반의 이분법적인 거친 논쟁과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SNS 활용 태도 역시 자기중심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1월 4일 유튜브 계정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화를 검토한다는 취지의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에서 이재명은 뽑는 게 아니라 '심는 것'이라는 자기들 딴에는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를 밈으로 삼아 아이디어를 홍보했다.

그러나 아직 정식으로 채택되지 않은 공약을 후보가 직접 '나의 머리를 위해' 자신을 심어 달라는 내용의 동영상으로 홍보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아이디어가 공개되자마자 찬반 논란이 크게 일었다. 특히 의료 전문가와 보건 시민단체에서는 탈모보다 중대 질환에 대한 보험 적용 확대가 시급하다는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유튜브에 올라온 탈모 공약 관련 영상 ⓒ 이재명 유튜브

 
선거 기간 이슈 몰이와 관심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접근이 아쉬울 따름이다.

밈은 인위적으로 확산시킨다고 확산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기적 특징이나 사회 상황에 따라 대중에게 발견되고 창작되어 확산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즉각적인 관심을 위해 강박적이고 인위적으로 생산되는 대선 주자들의 어설픈 밈은 대중의 욕구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욕구는 고사하고 어색하고 재미도 없다. 진심이다. 누가 그랬던가. 유머는 지능의 영역이라고.

부동산은 폭등하고, 물가는 오르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코로나 장기화로 유권자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치러지는 대선이다. 게다가 투표가 두 달도 남지 않은 현시점까지도 이재명-윤석열 양강 후보의 각종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 여론은 역대급 비호감 투표라고 말하는 상태다.

후보도 캠프도 없는 감각을 짜내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그냥 후보들이 잘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방식대로 유권자에게 '진심'이 느껴지게 다가서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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