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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루 종일 오락가락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는 눈발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올 거면 펑펑 오던지.' 혼잣말을 해놓고는 얼른 삼켰다. 빙판은 반갑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낭만은 줄고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절대 잊히지 않는 엄마의 빙판 이야기가 떠오른다.

"야야, 어제 일을 생각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표정으로 엄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귀가 솔깃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우리 집은 보통 걸음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날은 몹시 추운 겨울이었고 눈이 왔다. 우리 부부는 송년모임이 있어 엄마에게 집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 더 이상 딸네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집을 나섰다. 모임이 끝나면 우리가 차로 태워다 드리기로 했건만. 엄마는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자식들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낮에 녹았던 도로가 밤이 되자 꽁꽁 얼었다. 가로등 불빛에 살얼음이 유난히 번들거리고 있었다. 길은 미끄러웠지만 되돌아 갈 마음이 애시당초 없었던 엄마는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집이 제일 편하다. 잠은 내 집에서 자야지.'
 
빙판은 반갑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낭만은 줄고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빙판은 반갑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낭만은 줄고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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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지론이다. 문제는 대로였다. 달리는 바퀴들로 더 다져진 데다가 자세히 보면 대로 중앙선이 살짝 올라와 경사져 있어 위험천만하다. 물빠짐 때문이겠지만 빙판이 되면 누구도 방심할 수 없는 난코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사가 더 무섭다.

넘어지면 큰 일 난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예 기어가기로 했다. 엉덩이만 살짝 들었을 뿐 두 손도 땅을 짚었다.

"누가 봤으면 개가 지나가는 줄 알았을 거여."

그렇게 엉금엉금 도착한 집 앞에서 안도의 한숨도 잠깐. 열쇠가 만져지지 않았다. 아이쿠! 눈 앞이 캄캄했다. 엄마는 네 발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이쯤해서 그만 딸 집에서 자도 되련만. 엄마는 키를 들고 다시 당신 집으로 향했다. 왕복도 아니고 왕복을 두 번이나 한 셈이다.

엄마 말로는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라 했다. 밤새 엉거주춤 미끄럼을 타며 가슴 졸였을 엄마를 생각하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달리는 차라도 있었으면 어찌되었을지. 자칫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다행히 넘어지지 않아 추억이 되었지만 엄마의 극성스런 고집을 대변하는 일화가 되었다.

20여 년이 흘러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내 집이 좋아도 아프면 내려놓아야 한다. 자식들 집에서 지내다 병원으로, 지금은 요양원이 집이 되었다. 낯선 침대와 공동생활이 이제는 적응 되었으려나.

"야야, 내가 잠이 안 와서 약을 좀 더 달라는디 왜 안 주는 거여. 내가 지금 죽어도 아쉬울 게 없는 나이에 뭐가 무섭겄냐. 니가 말 좀 혀라."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침대나 휠체어에서도 손과 발 스트레칭을 멈추지 않는다. 정신 줄 하나 만큼은 놓치지 않고 살고 계시니 엄마의 고집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와 블러그 게재 예정


태그:#엄마, #빙판,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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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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