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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골~~!"​

강력한 중거리 슛이 아들의 골문을 통과할 때 내 입에서는 거대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은 천장이라도 뚫을 듯 위로 솟구쳤다. 이것은 무의식적 행동이요, 오래도록 동면했던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장모님과 통화 중인 아내는 혀를 찼다. 

"지금 신 서방이 첫째랑 게임하면서 저래 고함치고 있어요. 낼 모레 오십인 사람이나 중학생이나 하는 짓이 똑같으니 쯧쯧쯧...."

아마도 내 소리에 놀란 장모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창피할 여유조차 없었다. 내 골문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는 아들의 아바타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우리는 환희와 좌절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서로의 진영을 탐미했다.

게임기를 구입하다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컨트롤러를 구입하다
▲ 게임 컨트롤러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컨트롤러를 구입하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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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사에서 할 일이 잔뜩 있음에도 칼퇴근을 했다. 왜냐하면 점심때 게임 컨트롤러가 도착한다는 택배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급하게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잘 받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게 뭐라고 회사에 있는 내내 설렜다. 손가락은 모터를 단 듯 춤을 추었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줄인 채 작성한 보고서를 부서장에게 검토 받았다.

지난 주말 게임기가 도착했으나 아쉽게도 컨트롤러가 하나밖에 없었다. 아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더 필요했다. 중고 앱에서 저렴한 것을 사려고 했더니 이왕이면 좋은 것을 사라는 아들의 조언에 정품을 구매했다. 그것은 일주일치 점심값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눈물을 머금고 결제를 했다. 수시로 쇼핑 사이트에 접속해서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드디어 이날 도착한 것이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아들에게 전화해서 컨트롤러 세팅을 부탁했다. 집에 오자마자 겉옷만 대충 벗어던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도착한 녀석은 세련되고 잘생긴 검은색이었다. 아들의 흰색과 구별하기 위해 다른 색을 골랐다. 둘이서 흥분을 주체 못 하고 축구 게임에 접속했다. 왼쪽 심장은 평소보다 1.5배 이상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들은 선심 쓰듯 나에게 좋은 팀을 양보했다.

드디어 운명의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야수처럼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고,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들은 내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아마도 평소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방심한 듯했다. 이래뵈도 한때는 게임계에서 방귀 좀 뀌었다고.

전후반 각각 한 골씩 넣어 2대 0으로 승리했다. 나의 포효는 오래도록 끝날 줄 몰랐다. 아들은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뺨이 벌겋게 물든 채,

"아빠. 좋은 팀 골라도 돼?"
"그럼. 마음대로 해."​


눈에 독기를 품은 아들은 그때부터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손끝은 찬란하게 빛났고, 나의 공격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리곤 그간 습득한 모든 기술을 쏟아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또다시 2대 0이었다.

묘하게도 득실 차까지 같은 승부였다. 결론을 내려고 한 게임 더하려 했으나 아내가 숙제해야 한다며 제지했다. 속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녀석은 진심이었다. 나도 씻으러 가기 전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아빠랑 게임 하니깐 좋아?"
"으.... 응. 좋아."​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자식. 그 정도 표현이면 정말 좋았다는 뜻이었다. 마음 안에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사춘기와 갱년기, 관계의 실마리를 찾다

사실 최근 들어 아들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사춘기의 절정을 찍고 있는 요즘, 수시로 부딪쳤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는 아들에게 잔소리만 늘어놓다가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나도 갱년기가 찾아온 것일까. 전 같으면 참고 넘어갈 일도 감정적으로 대했다. 아들의 나의 예민함이 만나 서로 간에 거리만 벌였다. 옆에서 아내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하면 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아들도 게임기를 사고픈 의사를 자주 표현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고이 모아두었던 비상금을 꺼냈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히고자 게임기도 사고 게임을 해보았는데 효과 만점이었다. 진작 살 것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틈틈이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에서 조그마한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마흔을 훌쩍 넘어 다시 게임기를 손에 쥐었다. 부끄러움은 잠시 내려놓고 이 순간을 즐겨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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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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