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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학가들에게 있어서 자전적인 경험은 작품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곤 한다. 더군다나 시인에게 있어서 삶과 작품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연관성을 지닌다.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비극을 겪은 허향숙 시인에게 있어서 '시(詩)'란 가족 혹은 핏줄의 배경으로부터 출발하거나 주요동인이 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허향숙 시집 '그리움의 총량'
 허향숙 시집 "그리움의 총량"
ⓒ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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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고 네가 피는 것인데
네가 살고 내가 죽는 것인데
부모 자식 간의 연속성
비켜 간 자리
생리혈 같은 통곡
질 줄 모르고 피어 있네
- <통점> 중에서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간 비극에도 불구하고 허 시인은 슬픔을 개인의 영역에 고립된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비가 사선을 긋는 이유도
구름이 하늘을 흐르게 하는 이유도
별빛이 어둠 가르며 내리는 이유도
풀벌레 우는 이유도
꽃이 피고 지는 이유도
슬픔이 내 몸을 지나는 이유도
웃음 한 말 빌려 오는 이유도
숨을 고르는 이유도
온통 너이기 때문이다
- <그리움의 총량> 중에서

이 때의 '너'는 떠나보낸 핏줄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영혼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 떠나왔던 곳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슴으로 마음으로 그리는 온통 너라는 존재는 언젠가 다시 만나는 곳의 너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세계, 고향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옷처럼 생을 벗고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는 시인의 말은 육신의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바람을 얘기했으나 스스로, 직관적으로 생명이라는 것이 연속성과 영원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수백 수천 번의 한탄과 설움, 험담, 음해, 음모, 배신 등속
비밀스런 이야기
단 한 번도 발설하지 않는 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 <나무> 중에서

영혼은 삶과 죽음의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치며 육신의 옷을 잠시 동안 갈아 입으나 나무는 사계절을 통해 아주 긴 시간 생명의 속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육성으로는 알려주지 않는 나무이지만 나무 곁에 서서 그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지혜의 선배가 많은 속삭임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매일매일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과 일상은 일상이 아니라 기적과도 같다.
 
얼었던 강물 풀리는 일
산과 들 꽃 피우는 일이
나비의 날갯짓,
철새가 대양을 넘고
대륙을 횡단하는 일이
...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당신과 내가 만나
사랑하는 일이
-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중에서

우리의 삶이 일상이 아니라 기적처럼 보인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저 하찮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꽃밭이나 정원에 가도 무시하거나 잘 눈에 띄지 않는 풀들은 인간적으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인지 몰라도 신의 시선이나 자연의 세계에서는 정작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다.
 
나를 잡초라 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를 모른다고
나의 이름을 모른다 해서
- <신의 꽃> 중에서

허 시인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은 생명의 경계를 넘어 무생물에게조차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저 음푹 파인 구덩이가 비가 온 뒤에 작고 아름다운 연못이 되거나 지나가다 걸린 돌부리가 삶의 일깨움을 자극시켜준다. 돌멩이란 무생물은 다시 삶과 인간으로 환원되어 되돌아온다.
 
아파트 뒤편
비포장 산책로에
나흘 전 내린 게릴라성 폭우로
생긴 물웅덩이
흙물 가라앉자
맑은 빛 거울 되었어
- <물거울> 중에서

산길 가는데
돌멩이가 발을 걸어왔다
넘어질 뻔한 나는 돌멩이를 걷어차다가
그만 울컥, 했다
...
나도 그랬어
사랑한다는 말 대신
독한 말로 나를 넘어뜨리곤 했었지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원망하며 떠나온 나
- <돌멩이> 중에서

허 시인의 작품세계의 가치관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굳이 애써 하나를 꺼내보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이다. 마치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처럼 거대한 것,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 살아있는 것, 고정되어 있어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이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란다.
 
그녀의 살(肉) 닿는 곳마다
부드러워지고 촉촉해지고 따뜻해지고
싹이 돋고 꽃이 피어난다
투명한 그녀의 살
일곱 빛에서 나서 수천 빛깔로,
둥근 것에서 나서 수억의 형태로 변하는
- <햇살> 중에서

허 시인에게 있어서 햇살은 시인의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는 여성성, 모성으로 인해 '햇살'은 '그녀'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햇살과 공기가 없으면 우리 모두가, 아무도 살아갈 수 없듯이 이의 시혜를 알게 모르게 받는 존재들은 자기답게 살아갈 때, 존재답게 살아갈 때 가장 빛난다.

허 시인은 삶과 죽음이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따라 리듬처럼 이어질 것을 직감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애정으로 바라볼 때 생명력이 더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문학을 지니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많은 시인들과 작가들이 쉴새없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다이내믹한 세계에서는 약간의 글 재주만 있다면 자신의 인생 경험 하나만으로도 자전적인 소설과 시집 한 권쯤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권을 넘어서거나 승화시키는 것은 또다른 진화이거나 별개의 자세를 요구받는다. 이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세계를 매일매일 새롭게 온전히 바라보는 시선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허 시인은 스스로 부여한 숙제를 넘어서야 할 테지만 시선의 넓이와 진화의 열정을 지녔기에 또다른 미래를 기대케 한다.

노자의 도덕경이나 불경에서 보던 삶과 세계의 가치들의 단편들을 허 시인의 작품들로부터 느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삶을 사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승화시키며 육신의 시선을 극복해서 넓게 보고자 하며 섭리의 세계로 다가가는 시도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한계로 규정하지 않고 스스로 넘어서는 일은 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아가 스스로 던진 질문이자 숙제라면 영혼의 봉인된 기억이라는 선험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나름의 벅찬 숙제를 지니고 있는 인생의 길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향숙 시인의 작품에서 공감과 위안의 한 조각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움의 총량

허향숙 (지은이), 천년의시작(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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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탐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문명의 현실과 미래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구촌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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