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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 안 풀리고 답답할 때면 일기장을 펼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나 고통도 일기장에 증명사진 찍듯 문자로 정착시켜놓고 여러 번 읽으면 길이 보인다. 2022년 새 일기장, 벌써 열두 페이지가 문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1월 1일 일기장 첫 줄, 한 해를 여는 문장이다. '올 한해 어떤 결심으로 살 것인가.' 이해인 수녀의 시 '어떤 결심'에서 따온 화두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 몸이 많이 아플 때 /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 ------ / 내게 주어진 하루를 /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 저만치서 행복이 / 웃으며 걸어왔다. <어떤 결심 / 이해인 >".

'하루씩만' 사는 삶, '하루를 전 생애로 생각하는' 삶이 가능할까? '고마운 것, 사랑한 일만' 써놓은 일기장이 있을 수 있을까. 지난해 일기장을 펼쳐본다. 2021년 1월 1일,

"인생은 질문이다.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살아보자! 올해 나를 이끌어줄 질문은 무엇인가?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안에 있다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논어 19편5장)' 가까운 일상, 다반사에서 나만의 질문을 찾자."

지난해 화두는 '질문'이었다. '나만의 질문'을 찾아 열심히 일기장을 메우는 하루하루였다. 일기를 쓰기 위해 하루를 사는 느낌이 드는 때도 있었다,

<월든> 작가 소로(1817~1862)는 일기광이었다. 20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44세 폐결핵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24년간 모두 39권(2백만 단어)의 일기장을 남겼다. 20세에 하버드를 졸업한 천재, 소로가 주위 사람들이 다들 황금을 찾아 서부로 떠날 때 혼자서 그 조용하고 작은 고향마을 콩코드를 평생의 거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일기 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8세부터 2년 2개월 2일 동안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어 생활하고 37세(1854년) 때 발간한 체험담, <월든>도 사실은 17년간 쓴 일기장을 축약한 기록이다. 소로는 "일기를 쓰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을 정도였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는 일기를 '매일 신들에게 한 장씩 써 보내는 나의 편지'라고 말했다.

오늘치 일기장을 펼친다. 소로의 일기는 '신들에게 쓰는 편지'라지만 나의 일기는 '나에게 쓰는 편지'다. 고마운 것, 사랑한 일만 기록하는 감사편지는 아니다. 나 외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기도문 편지다. 비밀 기도는 사랑처럼 고난을 이겨낼 동력원이다. 비밀이기에 사랑처럼 세상의 고난을 이겨낼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금 이 순간, 내일은 없다. 오늘치만큼만 괴로움, 고통을 기도 올린다.

세상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박 터지게 싸우는 '탐진치(貪瞋痴; 탐욕, 분노, 어리석음)세상'이다. 탐욕은 괴로움, 고통, 분노, 어리석음의 원천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소유경제에서 공유경제로 간다고 한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세상'이 온단다. 디지털 세상이 미래 비전이다. '내일 먹을 것을 오늘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고 믿어도 될까. 이제 공유경제 세상에선 인간 탐욕은 어디로 흐를 것인가.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박완서(1931~2011)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 중 1988년 10월 X일 자 한 부분이다. 정성 들여 내 일기장에 필사한다. 베껴 쓴 구절을 여러 번 되풀이 읽어본다. 오늘 내 고통은 얼마나 좁쌀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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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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