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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파> 스틸.
 영화 <여파> 스틸.
ⓒ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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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후손분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지난 5일 유튜브에 <여파>라는 제목의 2시간 48분짜리 영상 하나가 짧은 글과 함께 공개됐다. 장편 다큐를 올린 이는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그는 EBS 재직 당시 <지식채널e>를 기획하고 연출한 피디로 2013년 4월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 제작하던 도중 수학교육팀으로 인사 발령을 받고 사표를 낸 뒤 EBS를 떠났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22년 1월 김 교수는 EBS 피디 시절 마침표를 찍지 못했던 반민특위 후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무료 공개했다. 

지난 7일 오후 김진혁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다큐를 마무리를 하지 못한 사실은 지난 10년 동안 반민특위 후손들에게 진 빚이었다. 항상 송구했다"며 "후손 한 명 한 명의 삶에 집중해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제목을 '여파'라 지은 것도 영화를 본 시민들이 영향을 받아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기 때문이다. 공감한 분들은 관련 인물을 찾아볼 테고, 이를 통해 반민특위와 인사들을 기억할 것이라 기대했다. 이렇게 되면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을 떠나 (후손들처럼) 누군가 부당하게 억압을 당할 때 함께 아파하거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여파>는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이다. 전주영화제 측은 이 영화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었던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부의 지속적인 방해로 어려움을 겪던 중, 1949년 6월 6일 친일 경찰들의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으로 사실상 와해됐다"면서 "이후 반민특위는 역사에서 배제됐고, 그 후손들은 가난과 이념의 굴레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됐다"라고 소개했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 한통    
 
다큐멘터리 <여파>를 만든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다큐멘터리 <여파>를 만든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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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재직 당시 그는 이 영화를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처럼 만들고자 했다. 2008년 개봉한 이 작품은 1982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 참전했으나 그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리 폴만 감독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가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다.

"방송국에 있을 때는 소위 포인트를 잡아 섹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2013년 처음 후손들과 인터뷰했을 때는 인터뷰만으로는 꾸릴 수 없다 생각했다. <바시르와 왈츠를>을 떠올린 이유다. 그런데 제작 도중 갑자기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고,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인터뷰해주신 후손분들께 방송을 못하게 돼 죄송하다는 말만 드렸다. 그랬더니 오히려 반민특위 후손들이 나서서 밥을 사주며 격려해주더라. 해결 못한 숙제로 잊고 지내왔다."

그런데 5년이 지난 2018년, 퇴사 직후 김 감독에게 밥을 사줬던 반민특위 후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화 <여파> 역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게 한 것이 노시선 선생님의 전화 때문이었다. 2013년 첫 인터뷰 후 혈관성 치매가 와서 기억을 못 하시는데, 수년이 지났는데 반민특위와 관련된 기억만 남아 아무 말도 없이 새벽에 연락을 하신 거다. 오로지 자신이 당한 고통만 남아 알린 거였다. 그 순간 여파라는 생각이 들었고, 후손들을 다시 만나 구술을 중심에 뒀다." 
 
제헌의원이자 반민특위 검찰차장으로 활동한 노일환 선생
 제헌의원이자 반민특위 검찰차장으로 활동한 노일환 선생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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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이 다시 카메라를 들게 만든 노시선 선생은 대한민국 제헌국회 의원이자 반민특위 검찰차장으로 활동한 노일환 선생의 조카다. 노일환 선생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 일제강점기 당시 동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활동했지만 국회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다. 한국전쟁 중 월북했고 남은 가족들은 고통 속에 일생을 살아야 했다.

김 교수는 상황이 달라진만큼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방송을 위해 '포인트를 잡아 섹시하게 만들' 필요가 없어진 그는 "중요한 사건을 알려야지 하는 거시적인 접근보다, 영화를 통해 반민특위 후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알리는 작업에 집중했다"면서 "좋은 전달자가 되자는 생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개인의 아픔을 성공이냐 실패로 따지기보다 맥락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알리고 싶었다" 
     
영화 <여파> 스틸.
 영화 <여파> 스틸.
ⓒ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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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2시간 48분 러닝타임을 고수했다. 영화로서는 다소 긴 이 시간동안 김 감독은 반민특위 검찰차장이었던 노일환 제헌 의원의 조카인 노시선,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 아들인 김정륙, 김옥주 의원 부인 송명순과 아들 김진원, 정철용 반민특위 조사관의 아들인 정구충, 김만철 특경대원의 손녀 김홍현과 손녀사위 김선동, 김웅진 의원 딸 김옥자와 아들 김성걸, 이봉식 조사관 아들 이영국, 김철호 조사관 아들 김용민 등 10여 명의 후손들의 증언을 차례대로 풀어냈다.

이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려는 이도 있었지만 반민특위의 '반'자도 꺼내지 못하게 한 후손들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반민특위 와해 후 남은 후손들은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일생을 살아왔다. 소위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 때문에 취업이 제한되고 해외여행도 제약됐다. 

인터뷰 말미 김 교수는 영화 <여파>의 대표이미지로 반민특위 특경대원 출신 김만철 선생을 꼽은 이유에 대해 호탕하게 웃으며 "멋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담배를 문 김만철 선생은 진중한 멋을 뽐낸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김만철 선생의 손녀는 단 한 번도 조부로부터 '자신이 반민특위 활동을 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손녀 김홍현은 "빨갱이라는 오명을 써서 후손들에게 해가 미칠까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5일 김진혁 감독이 무료로 공개한 영화 <여파>는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https://youtu.be/z-ZuZybb8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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