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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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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콩"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를 두고 한 진보지의 사회부장은 11일 자 칼럼에서 "세습으로 취업하는 재벌 3세가 관종을 '부캐'에서 '본캐'로 삼았다"라고 직격하면서 "짜증은 시민과 주주 몫, 뒤치다꺼리는 신세계 직원 몫"이라고 썼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가십류의 뉴스에 더 보탤 것은 없지만, 글을 쓰는 것은 시민으로서 가누어야 할 '짜증' 때문이다. 앞의 기자는 "멸공의 횃불을 높이 든 1968년생 재벌 3세 부회장이 이런 유치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쓰고 있다"라고 하며 혀를 찼다. 그런데 삼성의 방계로 재벌 반열에 든 이 '젊지 않은' 기업인이 벌이는 '놀이'에 유력 대통령 후보가 동참하고, 같은 정당의 정치인들이 이른바 '릴레이'를 벌여나가는 모습은 '짜증'을 배가한다.

나는 그를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즉석 피자'가 '동네 영세 피자가게'의 생존권이 위협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라고 반문한, 이마트를 계열사로 둔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0년, 이마트의 '즉석피자',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냐"고 반문하던 그

201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신세계에서 그해 3월에 출시한 피자는 8월 한 달간 성수점에서만 6천 개 이상 팔려 7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복수의 누리꾼들이 "대형 피자점에 맞서 값싼 피자를 파는 동네 영세 피자가게들의 영역에 대형마트가 숟가락을 얻는다"라며 비판에 나서서 그와 트위터로 설전을 나누었다. 그때 양측이 나눈 대화를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누리꾼 : 신세계는 소상점들 죽이는 소형 상점 공략을 포기해 주기 바란다. 자영업자들 피 말리는 치졸한 짓이다.
정용진 : 장을 직접 보는가?
누리꾼 : 그렇다. 재래시장과 작은 슈퍼도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정용진 : 많은 분들이 재래시장 이용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어차피 고객의 선택이다.
누리꾼 : 지난 9년 동안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2.9배 늘어난 반면, 일반 슈퍼마켓은 30% 감소했다.
정용진 : 그것이 소비자의 선택이다.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나, 이념적으로 하나?
누리꾼 : 소비를 이념적 소비와 실질적 소비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SSM의 경우 아예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정용진 : 한국이 OECD 국가 중 기업형 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작다. 요즘 마트 가면 떡볶이, 오뎅, 국수, 튀김 등 안 파는 게 없는데 피자만 문제인가? 유통업의 존재를 부정하나?
누리꾼 : 동네 슈퍼와 대형마트의 생태계는 달라야 한다. 독점 자본의 잠입은 옳지 못하다.
정용진 :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 당신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당신을 걱정할까?…… 마트의 진화를 부정하는 듯 들린다. 우리도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소비도 이념적으로 한다"는 그의 비난에 발끈해 나는 그해 당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그래, 우리는 소비도 '이념적'으로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 메인 면에 게재되었다.

이 논쟁에 경제학자 우석훈이 참여(라기보다는 '관전평'이 정확하겠다)하였는데 그는 매우 중립적인 자세로 이를 정리했다. 당시 우석훈은 "'이마트 피자 사건'은 신세계라는 회사가 너무 옛날 방식으로 '박리다매' 그리고 '문어발식 독점'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석훈은 그 사건이 "대기업 특히 최근 문제를 일으키는 유통 자본들이 한국의 국민과 어떠한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라고 규정했다. 이 질문에 신세계가 '싸고 맛있는 피자만 주면 되는 소비자'가 아니냐고 답한다면 "매출은 약간 늘지도 모르지만, 신세계라는 기업은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근본적으로 등을 돌리는 국민이 더 많아지게 된다"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별로 정돈되지는 않은 글로써 정용진을 반박한 것은 우석훈의 냉정한 관전평이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나는 소비도 이념으로 하느냐는 정용진의 반박에 분노했다. 한 누리꾼이 대형마트가 마땅히 지켜야 할 태도를 지적한 것에 대해 40대 초반의 젊은 최고경영자(CEO)는 터무니없이 '이념 소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응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리적 소비' 따위를 소환하여 성마르게 대응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필요하면 언제든 이념적 소비를 한다. 재래시장이 우리를 걱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몇 닢의 가격 차이쯤이야 얼마든 뛰어넘을 수도 있다. 몇 닢의 돈으로는 '공감과 연대'를 결코 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이마트 피자'가 어떻게 되었는진 모르겠다. 아마, 논쟁이 더는 이어지지 않으면서 그냥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또 다른 대형마트에서 '통큰치킨'을 팔기 시작한 게 같은 해 10월이었고, 그게 달리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았던 듯하니 말이다.

12년 전, 변해야 살아남는다던 그, 웬 '멸공' 타령인가

정용진이 되뇐 '멸공(滅共)'은 정말 오랜만에 듣는 어휘다. 그건 한반도 분단이 끊임없이 재생산해 낸 냉전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절대부정, 극단적 반공주의를 집약하는 이름이다. 40년도 전, 현역 사병 시절에 부른 군가 '멸공의 횃불' 가사마저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종전선언'이 모색되는 2022년에 난데없이 한 재벌 3세가 그걸 소환한 것이다.

정용진이 군대도 안 갔다는 걸 환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군대 안 갔다고 해서 '멸공'을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50대 소시민도 아닌 재벌그룹 경영자가 그걸 들먹인 건 '유치'한 거고 저열한 것도 맞다.

유치한 거 말고도 나는 그가 보여준 이 촌극이 한 기업인의 정신적 지체(遲滯)로 봐야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누리꾼들에게 "마트의 진화를 부정하는 듯 들린다. 우리도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라고 반문한 지 12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과실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열릴 만큼 세상은 변했는데, 그는 여전히 '멸공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여론이 별로 호응하지 않는 듯하자, 그는 "멸공이 자신의 현실"이라며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현실'은 전쟁의 위험성을 말하는 걸까. 그의 이 발언에 서울시민들이 얼마나 공감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세계 8대 무역국이 된 한국 재계가 다 같이 부끄러워해야 할 수준"이라고 한 앞 기자의 지적은 차마 부인하지 못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태그:#정용진, #멸공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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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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