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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함성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어울릴 수 있는 친구와 생업으로 바쁜 부모의 빈자리는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인서울'에 방점이 찍힌 입시교육에서 마을은 자연히 '떠나야 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함께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나고 자란 터전이 가진 자원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없습니다.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예산행복교육지구'입니다. 예산교육지원청은 지난 2018년 충남도교육청 '행복교육지구' 공모사업에 선정돼 '행복을 꿈꾸는 학교, 살아 숨 쉬는 마을, 함께 하는 예산'을 비전으로 민간과 지자체, 학교가 협력하는 교육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주요 역할을 하는 것은 주민들이 주체가 돼 조성한 '마을학교'입니다. 군내에는 ▲꿈자람마을학교(고덕) ▲ 신양놀이문화마을학교(신양) ▲달기물마을학교(응봉) ▲예아모마을학교(예산읍) 4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우리의 아이'입니다. 단절됐던 세대를 잇고 마을의 교육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를 보도합니다.[기자말]
꿈자람마을학교 아이들이 직접 수확한 옥수수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다.
 꿈자람마을학교 아이들이 직접 수확한 옥수수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다.
ⓒ 꿈자람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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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면 조용하던 고덕 상장2리에 활기가 돈다. '꿈자람마을학교(대표 이재하, 충남 예산군 고덕면 소재)'를 찾은 아이들은 문을 열어젖히며 즐거운 함성을 쏟아낸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동안 마을어르신들은 한쪽에서 맛있는 저녁밥을 짓는다. 일상을 따뜻하게 돌보는 손길에 아이들은 함께 자란다.

이재하(41)·이승희(36) 부부는 남편이 목사로 있는 상장감리교회에서 지난 2016년부터 작은도서관을 운영했다. 농촌지역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이 대표는 2020년 '충남형 온종일(마을방과후) 돌봄활성화사업'에 선정돼 꿈자람마을학교를 열었다.

이곳에 다니는 15명은 모두 고덕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업을 마친 뒤 통학차량을 타고 와 두어 시간 정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상장1리 도랑골마을 농장에서 사과와 배를 따고 미꾸라지나 올챙이를 잡아보는 활동부터 원예치료, 뉴질랜드에서 오래 거주했던 승희씨와 함께 하는 영어독서까지 다양하다.식사는 마을어르신 6명이 돌아가며 맡고, 아이들이 집에 갈 땐 교회차량을 이용해 데려다준다.

이 대표는 "고덕초 근처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는 지원기준이 있어 대상이 아닌 아이들은 갈 수 없어요. 야간근무 등으로 돌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부모들이 아이가 여기 머물다 집에 안전하게 돌아와 있는 모습을 보면 좋다고 하세요. 어린 자녀가 태어나 다른 형제자매들을 동시에 케어하기 힘든 가정에서도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요. 또 주로 같은 학년끼리 생활하는 학교와 달리 이곳에는 동생과 언니오빠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동네에서 다 같이 어울려 놀고 밥 먹고 그랬잖아요"라며 "요즘 아이들을 보면 통학버스를 타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요.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눈을 뜨면서부터 붙잡고 있는 거에요. 집에만 있으면 더 하죠. 밖에 나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연물을 접하는 활동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오니 활기가 생겨요" 

마을교사는 그와 사무장을 맡고 있는 승희씨, 같은 마을에 사는 이서현(35)씨다. 서현씨는 11년 전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으로, 자녀 3명도 마을학교에 다닌다. '한국어능력시험(토픽)'에서 가장 높은 6급에 합격할 만큼 우리말에 능통해 베트남 전통문화와 관습, 언어 등을 가르치는 수업을 열기도 했다.

서현씨는 "이런 활동이 없으면 집에만 있거나 학원에 가야했을 거에요. 농장에서 토마토같은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보며 직접 수확하고, 흙을 만져보는 등 다양한 체험을 많이 하게 할 수 있어 좋고 보람을 느껴요"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12월 28일 찾은 이곳은 아이들을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오후 4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건물 안팎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사과 팬지꽃차 수제청 만들기'. 덕산 대치리에서 화수분꽃차교육농장을 운영하는 이희숙씨가 체험교사로 나섰다.
 
수제청에 넣을 사과를 다지기 위해 팔에 리듬을 실어 커터기에 달린 줄을 열심히 잡아당긴다.
 수제청에 넣을 사과를 다지기 위해 팔에 리듬을 실어 커터기에 달린 줄을 열심히 잡아당긴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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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반으로 잘린 레몬을 끝이 뾰족한 선인장처럼 생긴 착즙기에 눌러 즙을 내고, 사과를 잘게 다지기 위해 커터기에 넣어 열심히 줄을 당겼다. 잘 갈린 과육에 설탕과 팬지꽃시럽을 넣고 섞으니 분홍빛이 도는 수제청 완성이다. 체험을 마친 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시간이 남자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승희씨가 저녁메뉴를 학교급식과 겹치지 않으면서 영양균형이 맞는 식단으로 구성한다. 상에 오른 건 닭곰탕과 멸치꽈리볶음, 깻잎순볶음 등이다. 주방에서 솜씨를 발휘하던 한 주민은 "요즘 시골에서 애들이 귀하잖아요. 이렇게 오니 활기가 생겨요. 밥 차려주는 게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 대표는 "이장님과 부녀회장님, 총무님 모두 '우리 마을에 필요한 일'이라며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고 계세요. 쌀이랑 학용품을 가져다주시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열 명 넘게 있는 것만 봐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세요"라고 덧붙였다.

상장2리와 상궁리, 면소재지인 대천리 등에 사는 아이들을 집집마다 데려다주고 나면 저녁 8시다. 방학도 없이 매일 마을학교를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 그래도 부부는 여건이 되는 한 계속 돌보고 싶다고 한다.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가 '고맙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좋아요. 가깝게 사는 이웃사촌이 별로 없던 아이들에게 동네친구가 생기고 주말에도 가끔 놀러와요. 여럿이 함께 어울리며 나눠 쓰는 법도 배우고요" 바삐 움직이던 승희씨가 긍정적인 반응을 전했다.

이 대표는 "소멸위기에 놓여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마을이 많아요. 시설을 아무리 만들어도 마을학교에 대한 철학을 공감하고 이끌어갈 사람이 없으면 힘든 일이에요. 장기적으로 지역을 위한 길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양육수당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환경에서 기를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해요. 지역 곳곳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요.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마을 2~3곳을 묶어 마을학교와 같은 돌봄공간이 생기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

가장 바라는 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마을학교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분이 많아요. 고덕초 전교생이 76명(2021년 9월 1일 기준)인데 처음에 모집할 때도 10명 이상 모으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역사회가 적극 관심 가져 참여할 수 있길 바라요."

돌아오고 싶은 곳, 어떻게 만들까 
 
고구마를 캐는 데 여념이 없는 아이들.
 고구마를 캐는 데 여념이 없는 아이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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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람마을학교처럼 저녁돌봄을 제공하는 곳은 또 있다. 예산읍 '예아모마을학교'다. 2020년 예산교육지원청 '지역기반 초등돌봄공동체' 사업에 선정돼 예산엄마들이 맞벌이가정 아이 등을 돌보고 있다.

응봉 계정2리 '달기물마을학교'는 2019년 계정교회에서 문을 열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김기정 대표를 비롯해 음악과 미술, 유아교육을 전공한 마을교사 7명이 돌봄교실과 응봉초 방과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계정FC'를 꾸려 군내 다른 초등학교 친구들과 축구경기를 펼치고, 천연화장품 자격증이 있는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비누 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오는 5월에는 '충남형마을만들기사업'을 통해 마을학교 아이들을 위한 교육관을 준공할 예정이다.

예산교육지원청은 2023년 시작하는 '예산행복교육지구' 2기를 앞두고 올해 삽교와 대술, 덕산, 봉산에 마을학교가 조성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아이들이다.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닌, '돌아오고 싶은 곳'을 만드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달렸다. 

[관련기사] 
-"아이들에게 고향을 갖게 하고 싶어요" http://omn.kr/1wpf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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