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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 등 '독립'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존중받는 말에 속한다. '독립'이라는 말은 지금도 예를 들어, 중국의 '신장지역 분리독립 운동'이라든가 '스페인 바스크족의 분리독립 운동'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이 대목에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나라인 것인가? 또 우리 한민족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민족인가?

'독립'이란 중국 청나라로부터 분리 독립을 의도한 용어였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이라는 용어는 구한말 시기 만들어졌던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에서 처음 출현하였다.

독립협회를 주도한 서재필은 갑신정변 뒤 미국으로 망명했던 대표적인 개화파였다. 그런데 구한말 당시 조선의 개화파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인물은 바로 일본 근대화론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 福沢諭吉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독립자존, 独立自尊'이나 "개인이 독립하고 국가가 독립한다, 一身独立して一国独立す"고 주장하면서 '독립'이라는 용어를 특별하게 주창했다. 그리고 이는 조선 개화파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는 일본 학계에서도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청나라와 조선의 종속관계라는 의외의 장애에 직면한 후쿠자와는 '조선개조론'을 전개하면서 개화파의 '독립'론으로 이어졌다.

清朝と朝鮮の宗属関係という意想外の障害に直面した福沢は「朝鮮改造論」を再展開し、開化派の「独立」論へと繋がっていった, 月脚達彦, 『福沢諭吉と朝鮮問題「朝鮮改造論」の展開と蹉跌』, 東京大學出版會大, 2014年.
 
결국 조선의 개화파 그리고 독립협회가 내세웠던 '독립'이라는 말은 (일본의 국익을 위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 것이었다. 독립협회가 세웠던 독립문은 바로 그 대표적인 상징이자 증거이다. 훗날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세울 때 일제가 사용한 '만주국 독립'에서도 '독립'이라는 용어는 애용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독립운동'이라는 말은 그 뒤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 연용(沿用)해 사용되었고, 해방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쓰여왔다.

물론 미국에서 11년 동안 살면서 미국 여성과 결혼했던 서재필은 당연히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용어의 '독립(independence)'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미국은 영국 이주민들이 세웠던 나라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 independence' 했다는 말은 충분히 그 근거가 존재하며 논리에 부합한다. 그러나 조선은 처음부터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었고, 그러한 양국 관계가 아니었다. 일제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 운동의 정확한 영어 표현은 independence가 아니라 liberation이다.

'광복'이나 '민족해방'이란 용어가 적합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단기간 빼앗겼던 국권을 찾기 위한 운동을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볼 때 부합되지 않다. 동아시아에서 한일 양국관계는 동등한 관계였고,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각종 제도와 문화를 전수받는 관계였다.

'독립'이라는 용어는 바뀌어야 한다. 이제 '독립'이라는 말 대신 '광복'이나 '해방', '수복'이라는 용어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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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우리가 몰랐던 중국 이야기>,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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