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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의 소득을 확인한다고? 사생활 침해라고 여길 법한데 핀란드인 다수는 이를 투명성을 위한 전통으로 여긴다.
 누군가 나의 소득을 확인한다고? 사생활 침해라고 여길 법한데 핀란드인 다수는 이를 투명성을 위한 전통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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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는 11월 첫째 날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다. 바로 '질투의 날'이다. 매년 11월 첫 업무개시일 오전 8시, 핀란드 국세청은 직전 해의 납세 정보를 공개한다. 한 해 동안 누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세금으로 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 인사는 물론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정의 수수료만 내면 평소 궁금했던 동료의 연봉이라든지 얼마 전 차를 바꾼 이웃의 소득까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납세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 빼고 다 잘 버네." 국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10만 유로(약 1.3억 원)이상의 고소득자 명단을 공개한다. 명단을 보며 느끼는 감정 탓일까? 핀란드 사람들은 이날을 '질투의 날'이라고 부른다. 며칠 동안 뉴스 제목은 '핀란드 최고 부자', '일 년 동안 누가 제일 많이 벌었나' 등으로 도배된다.

누군가 나의 소득을 확인한다? 사생활 침해라고 여길 법한데 핀란드인 다수는 이를 투명성을 위한 전통으로 여긴다. 납세 기록은 공공 정보이며 소득 공개를 통해 업종 간 소득 격차가 터무니없이 커지는 것을 막고 성별에 따른 소득차를 줄이는 순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소득이나 납세 내역은 개인 정보에 해당하는 영역이라며 공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자라는 낙인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고,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의 경우 여러모로 생활이 불편해진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두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2019년 개정 발효한 유럽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해 명단에 오른 고소득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국세청 발표 자료에서 제외해달라 요청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듬해인 2020년에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사례가 4000건이 넘었다. 하지만 이는 공표하는 것을 금지한 것일 뿐 개인이 국세청에 자료를 신청해 검색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국세청은 법원이 내린 공표 금지 결정에는 따르되 납세자 정보 제공은 종전대로 하겠다며 세금에 있어 개방성과 투명성의 원칙은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북유럽의 성공한 이들과 한국의 성공한 이들의 미묘한 차이 

수년째 핀란드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 중 하나인 일카 파나넨Ilkka Paananen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모바일 게임 회사 슈퍼셀의 CEO다. 〈클래쉬 오브 클랜〉이라는 게임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업체다. 파나넨의 연 소득은 약 1000억 원가량으로 등락이 있지만, 소득세로만 한 해에 수백억 원을 낸다. 파나넨의 인터뷰를 보면서 북유럽 사람들이 세금을 대하는 태도와 공정에 대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수백억 원을 소득세로 내왔으니 아까울 만도 한데 파나넨의 답변은 지극히 모범답안이었다. 국가의 창업 지원이 없었으면 슈퍼셀도 없었다고, 자신은 이미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받았으며 자신의 성취를 통해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만났던 북유럽의 고위 공직자, 사업가, 평범한 직장인, 심지어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소득을 신고하던 내 친구까지 모두 한결같은 말을 했다. 개인이 성공한 것은 사회가 제공한 인프라 덕이라며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재, 건강보험, 도로와 인터넷 연결망 등 모든 사람이 낸 세금으로 건설한 공공재와 사회기반 덕에 자신이 이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충실하게 세금을 내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북유럽 전체에 비밀스러운 정신교육이 이뤄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국과 북유럽의 인터뷰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북유럽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지를 말하려고 하고, 한국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말하려고 한다. 결국, 성공의 원인을 나로 보느냐 사회로 보느냐에 따라 세금을 내는 일이 아까울 수도 있고 반가울 수도 있겠다.

북유럽에서 부자는 세금뿐 아니라 벌금도 많이 낸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국가는 음주운전, 과속운전 등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누진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수벌금제(日收罰金制)라고도 하는데,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의 하루 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법규 위반 내용에 따라 매겨진 범칙금을 곱해서 계산한다. 스파이더맨의 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북유럽 일수벌금제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벌금 최고 기록은 12억 원이다. 2010년 한 스웨덴 사업가가 무려 시속 290km로 주행하다 잡혀 과속 벌금으로 1백만 달러를 냈다. 2002년 핀란드의 통신장비업체 노키아의 부사장이 시속 50km 구간에서 75km로 주행해 벌금으로 약 1억8천만 원을 낸 사례도 유명하다.

누진 벌금제도의 찬반이야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와 별개로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인 '공정'의 관점에서 이런 북유럽식 기준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북유럽과 한국은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다른 것 같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누구는 벌금으로 12억 원을 내고, 누구는 120만 원을 내는 것이 한국식 관점에서 공정하다고 여겨질까? "부자가 봉이냐", "벌금 낼 돈도 없으면서 누가 과속하래?"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120만 원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까짓 푼돈일 수도 있다. 성경 속 가난한 과부에게는 두 렙돈(1천 원가량)이 전 재산이지만 부자에게는 비웃음거리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할 때 공정의 기준을 벌금의 액수에 두느냐, 벌금을 내는 이가 느낄 부담감에 두느냐에 따라 벌금제도가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서비스에 다른 값을 내는 것은 공정한 것일까? 스웨덴의 어린이집 비용은 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일정액을 내기 때문이다. 같은 곳에서 같은 돌봄을 받지만, 소득이 높은 집은 더 많이 낸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불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는 것이 북유럽식 공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이것이 공정하다고 여겨질지 의문이다.

먼저 필요한 건 사회적 합의 과정
 
스웨덴 국회
 스웨덴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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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차등 벌금제도는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몇 차례 논의되기도 했었다. 제도는 가치관의 발현이라 어느 정도 사회적 동의가 형성되어야 효과를 본다. 오랜 시간 쌓인 사회적 자산을 무시한 채 시스템만 바꾼다고 북유럽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역사와 문화,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어느 나라에 좋은 제도가 있으니 들여오자고 하는 것은 일면 무책임한 일이다. 한국에서 개인 소득을 공개했다가는 오히려 소득으로 서로를 판단하거나 줄을 세우며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북유럽에서 참고할 지점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제도 하나를 만들고 발효하는데 보통 10년이 넘게 걸리고 정부는 대대적 캠페인과 시민교육을 병행해 인식 변화에 공을 무척 들인다. 이후에 뒤집거나 뜯어고치는 일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노동 환경과 소득 재분배에 있어 무엇이 공정한지 일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먼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세계의노동'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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