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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엔 한복과 함께 40년을 살아온 이용순 씨가 있다.
 포항 죽도시장엔 한복과 함께 40년을 살아온 이용순 씨가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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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헝겊과 바늘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때는 1960년대. 그 시절만 해도 결혼을 앞둔 신부가 어머니와 함께 한복을 짓고, 신랑과 사용할 베갯잇을 직접 만드는 경우가 흔했다.

경북 포항 외곽의 크지 않은 동네. 열두어 살 아이 이용순(현재 66세)은 시집간 언니와 엄마가 한복과 이불 홑청을 만들고 남은 헝겊으로 인형 옷을 꿰매며 놀았다. 그러니, 바늘과 헝겊은 50년을 함께 한 이용순 씨의 오랜 친구다.

죽도시장에서 백합주단을 운영하는 이용순 대표는 지금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가게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도 이 대표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바늘과 한복 원단이다.

수십 년 고운 색채와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옷들과 더불어 지내왔기 때문일까? 이용순 대표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회갑을 진즉 넘겼지만 목소리는 소녀 같다. 지난 2011년엔 대구에서 열린 '미즈 모델 선발대회'에 직접 지어 입은 한복을 입고 나가 신사임당상(賞)을 받았다고 한다. 

사양길 걷고 있는 주단 가게, 그렇지만

"바늘 하나로 즐거움을 만들며 인생을 보냈다"고 미소 짓는 이용순 대표. 스물여덟 살에 첫 한복을 만들고, 포항 송도의 상가에서 10여 년을 보낸 후 죽도시장에서 정착한 게 벌써 22년째.

주단(綢緞)은 품질이 빼어난 비단을 의미하는 한자다. 한눈팔지 않고 삶의 2/3를 손님이 원하는 한복을 지으며 살아온 이 대표의 인생도 어찌 보면 '주단' 같았던 것이 아닐까?

- 한복을 만드는 주단 가게가 예전과 달리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맞다. 한창 땐 죽도시장에 주단골목이 있을 정도로 성업했다. 하지만, 이제 20여 개 정도의 가게만 남은 것으로 안다. 사람들이 한복을 잘 입지 않는다. 입는다고 해도 대여하는 비율이 80%다. 맞춤 한복을 선호하던 시대에 비하자면 지금은 주단 가게 모두가 너나없이 어렵다. 특히나 나처럼 맞춤(제작) 전문인 경우는 더 그렇다."

- 주단 가게의 주요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결혼식을 앞둔 신부와 혼주들이다. 한복의 매력을 알고 격식을 따지는 경우엔 고모, 숙모, 이모 등도 함께 맞춰 입는다. 20여 년 전쯤엔 결혼식이 많은 계절이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한꺼번에 10벌을 동시에 작업하기도 했으니까."

- 주단 가게도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단 3년 전부터 사람들이 결혼식을 미루거나 안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 않나. 사실 코로나19 영향 탓도 있지만, 결혼하는 젊은 남녀가 줄어들면서 주단 가게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내가 죽도시장에 처음 들어오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한복 판매가 1/10로 줄었다."

- 그럼에도 가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40년 가까이 한복을 지으며 살아왔다. 지금 와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겠나? 또 하나. 대도시인 대구나 서울에서 내가 만든 한복을 입고 결혼식과 폐백에 참석한 사람들이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받았다'며 찾아와 고마움을 전하는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해서다. 그럴 땐 평생 옷을 만들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죽도시장 자신의 일터 백합주단에서 한복을 짓는 이용순 대표.
 죽도시장 자신의 일터 백합주단에서 한복을 짓는 이용순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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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세월... 자장면 가격 10배 오르는 동안 한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가 예전보다 좋아지거나 발전해야 하는 게 세상사 이치. 하지만, 한복을 짓고 빌려주는 주단 가게의 상황은 오히려 뒷걸음질 쳐왔다.

현재 적절한 원단으로 고운 한복 한 벌을 만들어 입는데 드는 비용은 약 60~70만 원. 이 대표의 말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에도 그 가격이었다고 한다.

물가 변동을 알아보는 데 흔히 사용되는 자장면 가격.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 자장면 한 그릇 값은 약 500원이었다.

2022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으려면 적어도 5000원은 지불해야 하니 10배가 오른 것이다. 그간 한복의 가격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했다. 주단 가게 운영자로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럼에도 이용순 대표는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산다. 기억에 남은 손님과 추억 속에 돋을새김 된 결혼식도 없지 않았다.

- 죽도시장에 온 이후 잊을 수 없는 손님은.
"20년 전쯤이다. 울릉도 신랑과 포항 신부가 결혼을 했다. 우리 가게에 와서 한복을 800만 원어치 맞췄다. 신부는 사계절 바꿔 입을 한복 3~4벌을 주문했고, 신랑과 신부의 부모는 물론, 고모와 숙모, 이모와 외숙부 한복까지 모두 맞췄다. 나는 가게를 하는 사람이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옷을 지어간 분들이 고맙고 기억날 수밖에."

- 또 다른 추억 속의 손님은.
"20대 젊은 커플을 만났다. 절대 다수가 연미복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시대임에도 '우리는 꼭 한복을 입고 결혼할 거예요'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건 아마도 평소 한복을 자주 입었다는 그들 부모님의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소녀 시절부터 회갑을 넘긴 오늘까지 실과 바늘은 이용순 대표의 좋은 친구였다.
 소녀 시절부터 회갑을 넘긴 오늘까지 실과 바늘은 이용순 대표의 좋은 친구였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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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으면 단아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절로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입고 벗기가 번거롭고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지만, 한복을 허례허식의 도구처럼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형적 형식과 내적 의미의 중요성을 치우침 없이 두루 이해하고 용인해왔다.

이용순 대표는 이런 말로 한복이 지닌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충일함을 설명한다.

"곤룡포(衮龍袍)를 입고 있을 땐 그 사람이 왕이란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옷을 벗는 순간 누가 왕과 백성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겠는가? 입은 옷이 사람을 말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한복은 입는 순간 몸가짐은 물론 마음가짐도 단아해지는 마법을 부린다"고. 웃음 섞이지 않은 진지한 어투였기에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때다. 송도의 집에선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헛갈려 하던 이 대표. 다음 날 아침 죽도시장에 와서야 현실을 체감하며 크게 놀랐다.

진열된 한복 뒤편에 놓였던 원단과 옷 짓는 재료들이 모조리 쏟아져 내려 가게가 엉망진창으로 변해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이 대표는 마냥 절망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바늘과 옷감과 있으면 행복할 수 있었다. 아침에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가게로 나오면 해가 질 때까지 일 년 내내 한복과 함께 살았다. 크게 기쁜 날도 있었고, 견딜 수 없이 슬픈 날도 있었지만, 그것들 모두가 다 지나가는 것이더라."

한 우물을 파며 진솔하게 살아온 이들에겐 어떤 경지의 깨달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이용순 대표의 '낙관주의'는 선승(禪僧)이 평생 정진해 얻어낸 빛나는 공안(公案)보다 못할 게 없지 않을까?

올해 예순여섯이 된 이 대표가 운영하는 가게의 건물주는 나이가 아흔에 가까운 할머니. 그 할머니 역시 젊은 시절엔 양복점에서 옷을 짓는 일을 했다고 한다.

함께 한 22년 짧지 않은 세월과 같은 일을 해왔다는 동지의식은 두 사람을 모녀의 관계처럼 만들어줬다.

"나이는 잊고 힘이 닿는 데까지 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 대표가 몸과 마음 모두를 단아하게 바꿔주는 '한복의 마법' 속에서 오래오래 죽도시장을 지켰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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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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