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적용 중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사진의 업체는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적용 중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사진의 업체는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새해 1월 1일 군산의 이정표인 월명산에 올라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몇 가지 소망을 기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가족 간의 건강, 직업적인 일의 발전과 번영, 특별한 배움과 취미의 성취를 소망했다. 그중 나 개인을 벗어나 지역, 사회, 나라 전체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하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코로나 종식과 일상 생활 회복'이었다.

사실 '코로나 종식'은 나 한 사람이 두 손을 모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나 거국적이고 세계적인 이슈이고 걱정거리다. 코로나 3년째인 올해도 이 영향에서 벗어날 확률은 낮다고 한다. 매일 쏟아지는 코로나 관련 뉴스가 이젠 내 일상과 한 몸이 되었다. 아침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아래 중대본)와 군산시에서 보내는 안전문자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학원을 운영하는 내게 가장 민감하게 다가온 코로나 관련 뉴스는 지난해 연말에 나온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 발표 소식이었다. 도나 시의 학원연합회 밴드에서는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고, 뉴스에 나오는 학부모단체들은 '정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학생들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한다'는 주장을 폈다. 

학원가의 혼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 생활을 꾸리는 내가 20여 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집중한 것은 오로지 '교육'이었다. 학원생들의 수로 나의 수익을 가늠하는 학원 운영 시스템은 오랫동안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럼에도 지역사회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나만의 영어 교육에 대한 소신을 보였고, 신뢰를 얻었다. 차츰 학원 운영도 안정됐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부터 학원을 운영하면서 참으로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경제적인 어려움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확진자 한 명이 생기면 주변의 인적 인프라가 무너졌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두려움과 소외감, 고립감 등을 파악하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개인 직업인이 아닌 학원장이라는 위치에서 남보다 더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남보다 더 많이 어려움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확진이나 청소년 방역패스라는 말 한 마디에도 남보다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정부가 학원이나 도서실 등 학생들의 학습 공간에도 청소년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생각이 복잡했다. 학원 입장만 고려해 이 방침에 반대를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학생을 못 오게 한다면 학원으로서는 분명 괴로운 일이었다. 무한정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비를 받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미 고3 학년(당시 수능생) 학생들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은 고2 이하 학생들부터 심지어 초등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화두였다. '학원가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던 날도 우리 학생들은 서로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주사를 맞겠다느니 안 맞겠다느니, 안 맞으면 우리는 학원에 못 다니는 거냐느니, 학원 안 오면 공부도 숙제도 안 하니까 좋겠다느니, 주사 안 맞으면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른다느니, 우리 학원에도 패스 기계가 설치되는 거냐느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학원 학생들과 주변 학원 학생들의 백신 접종 현황을 자세히 알아보고 이에 맞게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모아 <오마이뉴스>에 기사 하나를 썼다. 이 기사를 쓸 때도 나의 글 하나로 혹시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했다. 

[관련 기사] 학부모들 전화에... 백신 접종 권유 문자를 보냈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당연히 학원 가족들이었다. 지역에서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공동체가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하던 나였다. 그런데 청소년 접종에 대한 걱정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내가 올바른 권고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새해 들어 학원가를 포함한 학생들의 학습 공간에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 정지'라는 뉴스가 나왔다.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은 '백신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 결정권은 충분히 존종되어야 한다'라며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이 부당함을 주장하는 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을 두고 정부는 항고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청소년 방역패스 건을 두고 누군가는 '백신 접종만이 이 코로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방역패스는 사실상 접종을 강제하는 것이며 인권침해이자 낙인찍기'라고 말하고 있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내 가족들만 해도 이 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당연히, 백신 접종이나 방역패스 적용 등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서 이 혼란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만 쌓여갈 뿐이다.

청소년 방역패스,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법원 판결이 나온 뒤, 백신 접종에 대한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내 주변에 한정하면, 한 달 전에 비해 중학생들의 접종률이 상당히 늘었다(약 80% 정도).

그러나 초등 6학년들의 접종에 대한 생각은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낮은 편이었다. 최근 한달 간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실제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의 확진자 수가 늘었다. 확진자가 있으면 가족과 그 주변의 모든 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지만, 소아청소년 접종은 여전히 두렵다는 얘기가 많았다. 

또한 학부모들과 학생을 둔 지인들에게도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원장님 알다시피 제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워낙 약하잖아요. 그래서 확진자 소식만 있어도 우리 아이들 등원은 무조건 안 했고요. 그런데도 확진자는 늘어만 가고, 병원 일을 하는 저는 무조건 접종을 해도 아이들이 학교와 다른 활동을 하니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요. 그래서 큰맘 먹고 아이들의 접종 신청을 했어요. 최소한 코로나 위험성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막연한 마음도 있어요."

"학습 현장이야말로 반드시, 누구나 방역패스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봐요. 최소한 나라의 방역 방침은 존중하고 따라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귀찮지만 모두가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는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법원 판결이 이해가 좀 안 되네요. 개인 자율권을 중시한 건가요?"

"방역패스 반대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부작용 많고 (뉴스에서 백신을 접종한 후) 건강하던 가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보고 저는 이건 선택이지 강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새롭게 알게 된 게 특이체질인데요. 이유가 충분해서 안 맞은 건데 편가르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어린이들은 코로나 걸려도 중증까지 갈 확률이 희박하다던데, 어린이까지 강제로 맞추려는 이 상황이 답답합니다."

"소수의 의견도 소중하고 10대 이하는 맞지 말라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사람마다 걸렸을 때 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 누구는 강제적으로 맞아라 마라 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해요. 지인 아들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코로나19 양성 나왔는데 아무 반응 없이 그냥 지나갔더라고요."


말 그대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한편, 청소년 방역패스는 당분간 학원가와 학생들 학습 공간에는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나의 우문에 대한 현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바라건대, 믿음을 교류하며 그런 세상에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