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개승자>의 한 장면.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 KBS2

 
"이 세계는 냉정하다. 진보한 디자인(웃음)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한다." 모델 겸 방송인 이소라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리즈에서 '패션'의 세계를 설명하며 남겼던 유명한 어록은, 주어를 '개그'로 바꿔도 유효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콘서트>의 주역들도 시대에 뒤처진 진부한 웃음 앞에 한층 엄격해진 관객들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월 8일 방송된 KBS 2TV 코미디 서바이벌 <개승자>에서는 3라운드 '깐부미션' 후반전이 진행됐다. 두 팀씩 같은 연합이 되어 각각 두 개의 무대를 꾸미고, 전후반전 성적 합산으로 5개 연합 중 최하위가 된 연합은 두 팀이 동반탈락하는 구성이었다. 전반과 달리 후반전 점수는 각 팀들이 모든 무대를 다 마친 이후, 마지막에 합산된 점수로 공개하기로 했다. 

전반전에 67점으로 최하위에 그친 박준형-오나미 연합이 후반전에도 첫 순서로 나섰다. 아이디어 회의 중 연습실에 오나미의 남자친구로 화제가 된 축구선수 출신 박민이 깜짝 방문했다. 

훈훈한 외모와 사랑꾼의 면모가 돋보인 박민은 친구에게 자신의 이상형을 오나미로 밝힌 후 소개팅이 성사 됐고, 적극적으로 대시해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일화를 고백했다. 박민은 오나미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시키자 "오. 나의 여신. 미니(민이) 여자친구 나미"라며 센스있는 답변으로 개그맨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오나미는 "항상 자존감을 높여준다. 예쁘다고 얘기해준다. 저희 엄마도 너무 좋아해서 나한테 하는 것보다 박민한테 더 많이 전화한다"라고 고백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박준형-오나미 팀은 후반전 무대로 '나미의 오빠들'이라는 콩트를 선보였다. 오나미의 연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동생의 연애를 걱정하는 오빠들의 전쟁'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전반적으로 멤버들의 연기력은 무난했지만 웃음치트키라는 오나미를 메인으로 내세우고도 그 장점이 제대로 살지 않았고, 연합팀으로서의 개성도 느껴지지 않는 밋밋한 무대로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째로 전반 73점으로 2위를 차지했던 김민경-신인 연합팀이 나섰다. 선배인 김민경팀은 캐릭터 위주의 무대를 꾸미고 싶어 하는 신인팀을 적극 배려하며 기꺼이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신인팀은 1, 2라운드에서 영상개그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리더 격인 홍현호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영상으로만 출연하며 객석에서 관객들과 직접 가까이서 호흡할 기회가 없었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전 멤버가 모두 함께 출연하기로 했다.

신인팀은 용산역에서 직접 1호선에 탑승해 사람들을 관찰하며 아이디어를 연구했다. 김민경팀 선배들은 꼼꼼하게 연기 디렉팅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힘을 실어줬다. 김민경-신인팀은 '1호선 빌런'이라는 코너를 통하여 대한민국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는 기상천외한 상황과 철도학과 학생-아이돌 지망생 등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출하여 웃음을 이끌어냈다. 

3번으로 전반전 71점으로 3위를 기록한 이승윤-변기수 연합 팀이 나서서 양팀의 코너인 '신비한 알고리즘의 세계' 속에 '힙쟁이'를 결합시킨 콜라보 무대를 연출했다.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스우파> 패러디에서 애니메이션을 재구성한 퇴사짤 등 최신 힙합과 유행밈으로 가득 채운 트렌디한 구성이 시선을 끌었다. 

전반전 81점으로 1위를 차지한 이수근-김준호 연합팀은 전문 분야인 콩트를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김준호 팀이 다시 '좀비 콘셉트'에 욕심을 내자 이수근은 "진지하게 얘기했다. 제발 우리랑 같이 있을 때는 그 얘기 하지도 마라"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수근-김준호 연합팀은 10여 년 전 <개그콘서트>에서 단 한 회 만에 종영되었다는 비운의 코너를 되살린 '콩트의 신 2021' 코너를 선보였다. 하지만 바보 분장을 하고 '콩신'으로 등장한 김준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애드리브와 삼행시 등이 예상외로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각종 돌발 상황까지 겹치며 실수를 연발하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에 미니언즈가 만두를 먹는 모습을 재현한 몸개그에서 비로소 웃음다운 웃음이 터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기실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의 반응도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무대를 마친 뒤 이수근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개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고 의기소침한 김준호를 격려하면서도 "같이 해보니까 안 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더라"고 뼈있는 반전 농담을 남겼다.

김원효-윤형빈팀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김원효는 전반전에서 의도했던 연기와 웃음포인트를 모두 살렸음에도 68점으로 4위에 그친 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며, 후반전 공연 전부터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전을 주도한 윤형빈은 그런 김원효를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김원효-윤형빈 연합팀은 주민센터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담은 '행복 주민센터' 코너를 선보였다. 개그 인생 최초로 바보 캐릭터에 도전한 윤형빈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다. 김원효는 할머니로 변신해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무대를 뒷받침했다.

모든 경연이 끝나고 전후반 점수를 합산한 총점이 마침내 공개 됐다. 전반전 1위였던 이수근-김준호 연합팀이 콩트 최강자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후반전에서 56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며 모든 출연자들을 경악시켰다. 전반전 점수 합산은 137점이었다. 베테랑 개그맨들의 애드리브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된 격이었다. 출연자들은 "(관객들이) 왜 이렇게 냉정하냐"며 걱정했고, 이수근은 "우리가 탈락할 수도 있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 KBS2

 
김민경-신인 연합팀은 후반전에 무려 93점을 획득하며 합산 166점을 기록했다. 홍현호는 "신인팀 다섯 명이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갔을 때 시너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그 진심이 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감격했다. 김민경팀은 "전적으로 후배들 덕분이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후배들"이라며 모든 영광을 돌렸다. 

이승윤과 변기수 연합팀은 후반전에서 만점에 가까운 96점을 받아 167점으로 김민경-신인팀을 제치고 3라운드 1위에 올랐다. 이승윤은 김민경-신인 연합팀의 점수가 나올 때만 해도 1위를 포기했으나 점수가 공개되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방송 전만해도 약체로 지목되었던 이승윤팀은 1, 2라운드에 3라운드 깐부미션까지 모두 1위로 통과하며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등극했다. 이승윤은 "우리는 진짜 너무 분주하다. 해야할 게 너무 많으니까"라며 의욕을 드러냈고 변기수도 "1등할 만했다"며 이승윤팀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탈락 후보가 된 이수근-김준호팀과 아직 점수가 공개되지 않은 박준형-오나미팀, 김원효-윤형빈팀 리더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한꺼번에 점수를 공개했다. 박준형-오나미팀은 68점, 김원효-윤형빈팀은 69점으로 전반에 비해 각각 1점이 오르는 데 그쳤다. 점수 합산은 박준형-오나미팀이 135점, 이수근-김준호팀과 김원효-윤형빈팀이 137점 동점이 되며 불과 단 2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출연자 중 맏형인 박준형은 "아쉽다. 하지만 개그무대를 마련해주셔서 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재밌고 고마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2라운드에서 패자부활전으로 살아남고도 또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 오나미는 "너무나 뛰어난 분들이 살아남으셨으니 앞으로 국민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드렸으면 좋겠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주 예고에서는 4라운드 '1대 1 데스매치'를 통하여 3라운드 깐부미션을 함께했던 양팀이 이제부터는 적으로 서로 대결하게 된다는 대진표가 밝혀지며 출연자들을 또 한 번 경악시켰다. 

방송 전까지 기성 개그맨들에 비하여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신인팀의 대약진, 약체로 거론되었던 이승윤팀의 깜짝 선전에 비하여, 김대희-박준형-유민상-이수근 등 고참급 개그맨들의 연이은 부진과 조기탈락은 현재 한국 공개 코미디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더 이상 억지스러운 유행어 만들기나 예측가능한 애드리브, 개연성 없는 몸개그로 일관하는 낡은 콩트로는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몇 팀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팀들은 여전히 <개그콘서트> 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준다. 서바이벌 포맷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개승자>의 시청률이 첫 방 이후 평균 3~4%에서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살아남은 팀들에게도 무거운 책임감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개승자 오나미 김준호 이승윤 개승자신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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