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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술 중 하나인 맥주. 우리는 맥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문화로서의 맥주를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기자말]
라이언 스타우트
 라이언 스타우트
ⓒ flickr @Bernt Ros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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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평론가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시원하게 마시면 그만이지, 도대체 왜 맥주를 평론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독자도 있을 듯하다. 누군가에게 맥주는 입가심용, 혹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술일 테니까. 그러나 맥주에도 와인처럼 수천 년의 역사, 수백 개의 종류로 설명할 수 있는 맛의 세계가 있다. 

이 깊은 세계를 탐구하면서 <비어 헌터>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맥주 평론가가 있다. 바로 맥주뿐 아니라 위스키에 있어서도 깊은 조예를 자랑했던 마이클 잭슨(1942 ~ 2007)이다. <비어 헌터>는 그가 출연했던 다큐멘터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전 세계를 춤추게 했던 팝의 황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평론가 마이클 잭슨이 미국 맥주계에 행사한 영향력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팝음악에 미친 것에 버금갈 것이다. 1977년 '세계 맥주 가이드북'을 집필한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유럽 맥주의 스타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알렸다. 소규모 양조장(마이크로 브루어리)을 알린 공 역시 있다.

스리랑카에서 뜻밖의 맥주 만나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전 세계 팬들을 만나기 위해 월드 투어를 했다면, '비어 헌터' 마이클 잭슨은 전 세계의 맥주를 만나기 위해 월드 투어를 돌았다. 1986년, 그의 발길은 스리랑카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부터도 일곱 시간 이상 떨어진 산속에서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된다. 실론 브루어리라는 맥주 양조장을 발견한 것이다. 실론 브루어리는 영국이 스리랑카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인 1849년, 영국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무더운 열대 지방에서 험준한 산길을 지나 도착한 양조장이었으니 모든 맥주가 꿀맛처럼 느껴졌을 법 하다. 그러나 유독 그의 혀를 자극한 맥주가 있었다. 바로 라이언 스타우트였다. 스타우트란 보리 맥아를 볶고 구워서 양조한 맥주이다. 생소하다면 편의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네스를 떠올려 보시라. 라이언 스타우트는 이보다 도수가 높고 맛이 진한 '임페리얼 스타우트' 스타일에 가깝다. (관련 기사 : '오아시스' 형제가 물처럼 마시던 그 맥주, 이겁니다)

당시 이 맥주를 감명 깊게 마셨던 마이클 잭슨은 이 맥주를 마시기 위해 다시 스리랑카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언제나 이 순간을 '자신의 가장 특이한 맥주 여행'으로 뽑았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이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다. 강렬한 카카오와 다크 초콜릿 류의 향이 입을 스치고, 은은한 단맛과 과일맛 역시 혀를 즐겁게 한다. 일반적인 맥주들과 비교했을 때 높은 도수(8.8도)를 가지고 있지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음용성이 있다.

맛난 맥주의 역주행,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맥주가 눈에 보일 때마다 3000원 안팎의 가격을 주고 마신다. 마이클 잭슨만큼의 식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판매되는 맥주 중 이 이상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맥주는 몇 안 될 것이다.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가격대가 최소한 6000~7000원 이상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가성비'가 좋은 맥주인 동시에,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역시 어느 정도 만족시킨다.

마이클 잭슨의 격찬에 힘입어, 스리랑카 내에서만 유통되던 맥주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롤린'이라는 곡으로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브레이브 걸스가 그랬듯, '맥주판 역주행'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며, 때마침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일맥상통한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마이클 잭슨은 2007년 6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잭슨은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맥주를 마실 때 가장 중요하게 찾는 요소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잭슨은 단 한 단어로 모든 대답을 마쳤다. 'Taste(맛)'.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맛있는 맥주다. '개발도상국의 맥주'라는 편견 같은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손발이 차가워지는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맥주는 차가운 맥주인데 겨울에는 어떤 맥주를 마셔야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캔만 마셔도 몸이 따뜻해질 만큼 진한 맥주를 마시는 것을 권한다.

40여 년 전 마이클 잭슨이 머나먼 타지에서 느꼈을 신선한 발견을 상상하면서 먹는다면,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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