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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나는 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마을에서 살았다. 부모님께서 식수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냇물이나 빗물을 큰 독에 담아두고 윗물을 떠서 식수로 사용하는 방법과 이웃 마을까지 손수레에 큰 물통을 실고 가서 수돗물을 얻어오는 방법이었다. 두 방법 모두 우리들의 삶을 '저장량(stock) 개념의 식수'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데는 차이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우리 가족은 익산시로 이사를 나왔다. 이제 집에는 당연히 수도가 있었고, 게다가 전기펌프로 퍼 올리는 우물까지 갖춘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목욕탕에 큰 함지(대야)를 놓고 항상 물을 받아놓으셨다. 전주로 이사하면서 개인주택에서 아파트로 생활 장소가 변경되었을 때도 욕조에 물을 담아두고 쓰는 습관은 계속되었다.

우물이나 냇물을 길어 먹던 시절의 식수는 우리가 항상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따라서, 항상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일정한 저장량의 물을 확보하고 보관하는 일은 일상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사항이었다. 하지만, 식수를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로 제공하는 수도가 제공되는 사회에서 이제 식수는 더 이상 저량개념이 아니라 유량(flow) 개념, 스트리밍 자원으로 탈바꿈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식수를 스트리밍 개념으로 접해온 요즘 세대에게 물을 길어오고 저장해놓고 쓰던 방식은 이해 불가능한 영역일 것이다.

지식 스트리밍 시대를 사는 포노사피엔스들!
 
지금의 초중고교생은 이미 지식과 정보가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된 시대에, 그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장 빠른 속도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의 초중고교생은 이미 지식과 정보가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된 시대에, 그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장 빠른 속도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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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현상이 지식과 정보 분야, 교육과 학습 분야에서도 지난 30년간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지식은 필사본, 인쇄물, 책과 잡지 등에 보관된 어떤 것으로 인식되어왔고, 그래서 그 지식을 물질화된 형식이든, 자신의 머리에 기억하는 방식이든 저장량으로 확보해야 하는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인류가 지식과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되고 모든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우물과 냇물이 수도를 통해 집집을 찾아가듯이, 이제 지식과 정보도 유량의 개념으로,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스마트 폰과 무선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거의 무한대로 받아 쓸 수 있는 24시간 365일 제공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었다.

이제 지식과 정보는 도서관이라는 저수지에 저장되는 저량의 자원이 아니라, 스마트 기기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언제나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되었다. 문화 컨텐츠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음식에서부터 자동차까지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5세대-6세대 통신기술, 위성 인터넷 등등의 발달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서비스가 스트리밍으로 전환될 것이다.

한국의 모든 학교 교육은 전통적인 저량 개념의 지식과 정보에 기반하여 설계되고 운영되어 왔다. 교육과정 설계와 수업 수행, 학생의 학습 결과에 대한 평가까지 철저하게 저량개념, 즉 학생의 머리 속에 얼마의 지식과 정보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저장되어 있는지를 측정하고, 필요할 때 그것들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추출하는 능력을 지녔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목적과 방식으로 실행되었다. 특히, 학력고사와 최근의 수능시험은 철저히 저량 개념의 저장된 지식과 정보, 그것을 추출하여 문제를 신속, 정확하게 풀어내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평가이다. 지금의 학부모 세대가 가장 익숙하고 오랫동안 수행해온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의 초중고교생은 이미 지식과 정보가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된 시대에, 그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장 빠른 속도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 포노사피엔스들에게 지식과 정보는 머리에 담아두거나,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도서관에 가서 찾을 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의 손끝에서 검색하고 확인하고 활용하면 되는 서비스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수능시험과 같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지필고사는 넌센스이고 황당한 짓이다. 반대로, 수행평가, 프로젝트 수업과 평가, 참여와 체험을 통한 팀 플레이 등등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학습활동이고 정당한 평가인 것이다. 왜냐면, 그런 활동은 지식과 정보를 담아둘 것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 접속해서 필요한 것을 스트리밍해서 적용하고 활용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부모 세대와 학생 세대 간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차이가 지금 학생부 전형 중심의 수시전형과 수능중심의 정시전형을 둘러싼 대립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식 스트리밍 시대의 미래학교, 디지털 네트워크 학교

우리는 모든 삶의 필요를 스마트기기와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하는 세대를 포노사피엔스라고 지칭한다. 1990년대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모두 포노사피엔스이다. 이들은 지식과 정보의 저량 개념이 무너지고 급격히 유량 개념,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되던 시대에 태어나서 그것들을 즐기고 활용하면서 자란 세대이다. 이제 우리가 필요할 때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수돗물을 사용하면서 살고 있듯이, 지식과 정보도 자신이 필요할 때 스마트 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의 우주에 접속해서 불러 쓰면 되는 자원이라는 개념을 의식하지조차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가 포노사피엔스이다. 이들을 위한 교육은 당연히 많은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머리와 노트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찾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수업과 평가,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은 여전히 지식과 정보의 저량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수행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는 수많은 미래학교 담론이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지식과 정보 개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식과 정보가 스트리밍 자원으로 전환된 시대, 그것들에 익숙하고 능통한 포노사피엔스에 적합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수업설계와 평가방식을 고민하지 않는 모든 미래교육, 미래학교 담론은 실패할 운명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미래학교는 오직 디지털 네트워크 학교, 포노사피엔스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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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 중. 플로리다주립대 정책학 박사: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2) 강의: 순천대 객원교수(2015),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 강의 저서: 《교육을 교육답게》(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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