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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도착과 동시에 모두가 분주해진다. 5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우리) 집에서 (어머니) 집으로 온 것이지만,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손 씻기다. 이제는 알아서 손을 씻는 첫째, 둘째를 앞서 보내고 나머지 두 아이의 뒤를 따른다.

당연하다는 듯 싱크대로 향하는 셋째와 넷째.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욕실 사용이 어려운 아이들은 싱크대가 손 씻는 곳이 된다. 싱크대 앞에서 까치발로 끙끙대는 모습에 나는 급히 발판으로 쓸 욕실 의자를 찾았다.

그런데 욕실에 있어야 할 의자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화장실에 있나?', '지난번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는 베란다에 두었나?' 으레 있어야 할 곳에 의자가 없었다.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크고 작은 대야에 담긴 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 대야마다 받아둔 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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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물이 끊긴다는 안내가 나온 날이면 볼 수 있었던 모습. 크고 작은 대야에 물이 그득하게 받아져 있었다. 추억을 동반한 놀람도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아파트 오늘 단수인가?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오늘 물 끊긴대요?"

다용도실에 몸을 반쯤 걸친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어째 심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해명'을 시작하셨다.

"안 있나... 그란께... 헹군 물이 아까워 가꼬... 마~알간 물을 고마 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받아서 쓴다고... 놔둬.... 버리지마..."

나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어머니 말씀은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 헹군 물을 받아두었다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보푸라기 같은 것이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 청소할 때 쓰시려나?' 생각하며 어머니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이번에는 항변에 가까운 어머니의 2차 해명이 시작됐다.

"아깝다 아이가, 헹구기만 한 물이라 깨끗한데.. 너무 아까버서 그리 받아 놨다. 손빨래 할 때 쓸라꼬."

택시비를 내고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어머니였다. 1천~2천 원의 거스름돈은 됐다고 흔쾌히 거절하면서 물은 아까워하는 어머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택시 운전을 하는 제부가 생각나서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뭔가 일관성이 없어 보여 조금 타박하듯 말했다.

"택시비 더 주는 건 안 아까워하시면서 썼던 물을 아까워하시면 우짭니꺼. 이리 쪼그려 앉아서 빨래하시면 무릎만 더 나빠지것네요, 병원비가 더 들것어요. 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급소를 제대로 찌른 것 같다. 본심을 들키면 저렇게 웃곤 하시는데 허를 찔린 어머니의 웃음소리는 민망함과 들켜버린 속 시원함의 화학적 반응 때문인지 매우 우렁찼다. 고백과 폭로는 즐거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더니,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할매들의 이야기를 아직도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어머니
 어린 시절 할매들의 이야기를 아직도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어머니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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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함을 재료로 쓰는, 상쾌함이 극에 달하는 천연 재생 웃음이었다. 얼마나 크게 웃으시던지 나는 잔소리 2절을 잇지 못하고 그저 "에?", "하... 참...", "허..." 하며 허탈하게 따라 웃고 말았다. 한참을 더 웃던 어머니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머쓱해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게 안 있나... 옛날에 할매들이 물 함부로 버리면 저승가서 다마셔야 된다켔다 아이가. 아깝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내는 그게 무서버서... 그래서 함부로 못 버리겠어... 아들... 그러니까 버리지마..."

아, 어머니. 환갑이 지난 어머니는 여전히 신비주의 쪽으로는 어린 아이였다. 불현듯 지난 일이 떠올랐다. 자식들과 가까이 살면 출세길이 막힌다는 점쟁이 말에 나만 학업을 마치면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던 어머니였다. 미신을 맹신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그게 가족이나 업보에 관계된 일이라면 그냥 흘려 듣지 못했다.

부끄러워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은 어머니에게 무리하진 마시라는 당부 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데 어쩔 도리가 있나. 다용도실 문을 닫기 전 굽어 본 대야엔 어머니 말씀대로 마~알간 물이 찰랑거렸다. 저 물을 어머니가 다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 걱정되긴 했다.

집에 돌아갈 때쯤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놓으면서 우리 집에 대야가 있는지 떠올려 보는 나를 발견한다. 나 참. 그 어머니의 그 아들. 하마터면 모창자수가 될 뻔했다. 아마도 이때였던 것 같다. 비록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낭비는 하지 말자고 마음 먹은 것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많은 물이 사용되고 잇다
▲ 보이지 않는 물, 가상수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많은 물이 사용되고 잇다
ⓒ K-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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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다. 우리가 물 부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 조달에는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를 수입으로 대체하고 있기에 물 부족을 체감하기 힘들 뿐, 물이 풍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때마침 읽은 책이 나의 작은 다짐에 의미까지 부여해줬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아주 사소한 일을 시작했다.

당연할지 모를 사소한 실천

손을 씻고 나면 손을 두세 번 더 흔들어 물을 털어 내고 핸드 타올을 한 장만 뽑는다. 사용한 핸드 타올은 그대로 가져와 사무실 책상의 먼지를 닦거나 습도 조절용으로 책상에 올려 둔다. 아, 가끔 코푼 휴지로 오인 받을 수 있어 잘 펴서 올려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닦을 때 컵을 쓰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하지 않던,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을 뒤늦게 하고 있다. 이게 영 습관이 되지 않아 회사에서 양치할 때면 컵을 가져가는 것을 자주 까먹는다. 그럴 때면 최대한 빠른 손놀림으로 물을 틀고 잠그는 노력을 하는데, 아무래도 칫솔을 꽂아 둘 양치 전용 컵을 하나 가져다 놓아야 할 듯하다. 절약의 시작은 번거로움을 이겨내는 것부터다 싶다.

자연보호라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물을 아끼는 어머니를 보고부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져 시작한 일이다. 웬만한 미신을 믿진 않지만 이런 미신은 믿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택시비는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면서 흘러가는 물은 담아 두고 쓰는 어머니. 환경을 위한다는 거창한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겁낼 줄 아는 마음이 참 곱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단한 대의나 이상향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겁이라도 낼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성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어린 생각이 드는 것은, 옛날 할매들의 영향력이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까지 미친 것처럼 이 글을 보고 손을 두세 번 더 털고 핸드 타올을 한 장만 사용하며 양치 컵을 사용할지도 모를 사람들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느끼기 어렵고 중요한 것의 소중함을 잘 알아채기 힘든 사회지만 가끔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해본다면 마음 한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뿌듯함을 품게 될 거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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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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