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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오래간만에 뵙게 된 50대 후반의 지인이 최근 아들을 독립시켰다. 직장이 천안이라 그쪽에 거주할 곳을 마련했는데 전세의 일부를 도와주셨단다. 그 말을 하는 내내 지인의 표정이 환했다. 자녀를 잘 키워 한 사회인으로 독립시켜내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혹시 장성한 아들의 빈 자리가 허전하진 않을까 궁금해서 여쭤보니, 허전은커녕 다 큰 녀석 뒷바라지에서 해방되어 기쁘다 하신다. 아들을 내보내고 새 취미로 주말마다 남편과 전국 명산의 올레길을 걷고 차박을 하는데 너무 좋다며 주말이 매번 기다려진다고 자랑이시다.   

부모의 독립이란
 
자녀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일과 취향에 집중할 수 있는 50대.
 자녀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일과 취향에 집중할 수 있는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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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말을 들으며, '자녀의 독립은 곧 부모의 독립'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가족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결정하는 일이지만, 자녀의 독립은 부모, 자녀 모두에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양육의 막중한 책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롭게 자신의 일과 취향에 집중할 수 있고, 성인 자녀는 부모의 돌봄이 해제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시작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요즘 아이들과 별 것 아닌 일로 부대끼며 부모-자녀 간 적정 거리두기와 자녀의 독립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홀로 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진즉부터 보내고 있었는데, 둔한 나는 여전히 녀석들을 품 안의 자식으로만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50대 독립을 고대하는 나로서는 녀석들의 그 신호와 징후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엄마, 이 수저집 좀 그만 가지고 다니면 안 돼요?" 
"아니, 왜?"
"다른 애들 아무도 안 가지고 다니고요. 코로나도 안 걸리거든요! 딸그락거리는 소리만 시끄럽다고요."
"그치만, 숟가락이라도 따로 써야 그나마 안심일 텐데..."


학교 다녀온 고등학생 작은 애가 불만을 쏟는다. 불안하니 계속 숟가락을 챙겨갔으면 좋겠지만, 이젠 우긴다고 내 말을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다. 귀가시간, 자유시간 등 일과의 결정도 제 맘대로 하겠다고 수시로 고집을 핀다. 염려와 걱정의 말들이 다 큰 아이에겐 괜한 간섭이고 과한 참견일 뿐임을 인지해 가는 중이다.

또 다른 징후는 서로의 가치관이 부딪힐 때이다. 진로 결정이나 사회적 이슈, 정치현안 등을 논할 때, 종종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과 견해를 밝히는 걸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세대 간의 시각 차도 있겠지만, 분명 오랜 시간 내 가치관에 길들여져 영향을 받았을텐데 매사 꼭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과 의견이 맞설 때 자연스레 할 말을 고르고 생각을 한 번 더 점검한다. 괜한 언쟁으로 부딪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가고, 세상사에 주관을 세워가는 걸 보면 물론 대견하다. 이제 아이들에게 삶의 주도권을 제대로 넘겨줘야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든다. 게다가, 주도권 이양이 필요한 이유는 정작 내게 있다. 다 큰 아이들에게 일상사를 의지할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자녀의 정보력과 빠른 검색력에 자꾸 의지하게 된다.
  자녀의 정보력과 빠른 검색력에 자꾸 의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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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쏟아지는 혁신기술과 신개념들에 대해 아이들은 당연히 나보다 앞서 있다. 예를 들면, NFT 같은 신조어 개념이나 증강현실과 AI 기술 등의 진척 상황, 핸드폰으로 주식 거래방법 등 내가 문외한인 분야의 정보와 기술들을 꿰고 있다. 덕분에 물어보기만 하면 친절한 설명과 생생한 경험담까지 언제든 기꺼이 나누어준다. 나에겐 이만한 간접체험이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나 고급 펜 같은 물품을 구입할 때에도 아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듣는다. 신뢰할 만한 정보에 대한 검색력이 나보다 훨씬 빠르고, 취향과 안목마저 더 세련되어 보이니 자꾸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도움받는 게 뭐가 문제랴 싶지만, 의지하는 만큼 나 자신은 게을러진다. 

세상의 신조류를 따라가기에도, 나만의 취향과 안목을 기르는 일에도, 노력과 시간 들이기를 등한시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들의 독립에 굳이 굳은 의지를 갖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이대로라면 나의 50대 독립은 자발적 취소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같은 공간에서 정서적 거리라도 가져보려 내심 작정해 보았지만, 어느새 해오던 대로 되돌아가 버리고 만다. 지난 20여 년간 몸에 뿌리 깊이 각인된 무한 관심과 돌봄의 DNA가 스스로 작동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과 거주를 분리해 물리적 거리를 두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마침 큰 애 동창들의 자취와 아르바이트 이야기들을 종종 전해 듣던 터이기도 하다. 셰어 하우스나 원룸 자취, 간혹 아파트 살이까지 거주 형태가 다양하다. 아르바이트도 과외부터 초밥집, 카페 등등 부지런히 하는 것 같다. 부산에서 올라온 한 동창은 학비에 용돈까지 스스로 마련하느라 일하랴, 공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대학에서부터 당당하게 홀로 서려는 굳은 의지와 열정들이 참 놀라웠다.

당장 독립은 어려워도... 포기는 아니다

큰 애에게 독립의 의향을 물어보고, 말 나온 김에 학교 근처의 원룸 시세를 알아보았다. 보증금-월세 방식이 가장 많은데, 매달 40만~80만 원 정도 하는 월세가 부담이다. 그럼 차라리 전세를 알아보면 어떨까 싶어 알아보니 아뿔싸, 생각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다가구 원룸이 1억~1억 6천만 원이고, 신축으로 좋아 보이는 건 2억이 넘어간다. 

주변에 많은 50,60대 부모들이 대학생인 또는 취업준비중인, 심지어 직장인인 성인 자녀들과 함께 사는 이유가 헤아려진다. 당장은 어렵지만, 큰 애와 함께 가능한 다른 방법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자녀를 내보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이고, 평생 한 직업에 묶여 사는 시대는 끝이란다. 교사였다가 사진작가로, 유치원 이야기 할머니로 보람되고 즐겁게 사신다는 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중년 어느쯤엔가 세상을 재탐색하고, 새로운 취향과 일거리들로 삶을 재구성하신 게 존경스럽다. 

나도 바란다. 벌이가 적더라도 나만의 취향과 안목을 가꾸며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삶을. 목공도 재미있을 것 같고, 미술관 드나들며 사람들과 어울려 미술공부도 해보고 싶다. 새로운 경험이 불러올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가능성들이 기대된다. 그렇게 내 삶을 오롯이 즐기고 돌볼 줄 알 때, 타인을 억압하거나 탓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온기 나누며 소박하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50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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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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