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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과 무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스타들의 빛나는 모습과 의상. 이 모든 것은 무대 뒤편,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손길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직접 고용된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이하 어시스턴트)'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의상 협찬부터 관리 및 손질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는 어시스턴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결과물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대다수가 20~30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근로계약서 없이 한 달 100만 원도 안 되는 쥐꼬리만 한 임금, 담당 연예인들의 일정에 맞추어진 노동시간 및 예측 불가한 대기시간, 보장되지 않은 휴일, 갑질 및 감정노동과 업무 내외적으로 쏟아지는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며 일한다.

2020년, '청담동 염전노예', '유령노예', '현대판 시다' 등의 이름으로 자조하는 이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국내 최초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었다. 이어 2021년 4월, 어시스턴트들은 청년유니온 최초로 '직종지부 노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비표준화되고 불확실한 세계
 
2021년 4월 17일 신촌에서 진행한 패션어시유니온 창립총회
 2021년 4월 17일 신촌에서 진행한 패션어시유니온 창립총회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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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를 둘러싼 방송/미디어 업계 내 관계는 크게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스타일리스트로 이루어진다. 연예기획사는 연예인의 코디를 담당할 스타일리스트들을 구하고, 스타일리스트들은 여러 기획사와 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어시스턴트들을 직원으로 고용하면서 '실장'이자 실질적 사용자가 된다. 이러한 고용 관계는 노동시장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는 하도급 구조를 연상시킨다. 최하부의 어시스턴트로 내려갈수록 임금 배분은 불균형해지고 책임과 관심도 분산될 수밖에 없으며, 스타일리스트들은 "나 때는 이 정도도 못 받고 일했다"라며 일축하기 일쑤다.

이러한 구조에서 객관화된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어시스턴트들은 고질적인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가령 경력을 쌓아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실장의 권유 또는 매니저나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 인맥을 통해 일감을 얻어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지표나 평가 체계 없이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기간도 1년부터 10년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업계 자체가 아주 좁고 인맥이 크게 작용하여 종사자들 내부에서 소문도 돌기 쉽다.

이외에도 노동 자체의 표준성이나 어시스턴트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일의 강도가 높고 미래가 불안정하다 보니 이탈하는 인원도 많다. 이를 충원하기 위해 별다른 조건이나 체계 없이 즉각 새 인력을 뽑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프리랜서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다.

청년유니온에서 수행한 '2021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부당대우실태조사'에 따르면, 구인공고나 면접 시 협의한 내용과 근로조건이 달랐다는 응답이 51.4%에 달하며 처음부터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공고를 내는 곳도 다반사다.

청년유니온과 만남, 변화

노동조합 조직화의 첫걸음은 마라(가명) 패션어시유니온 지부장과 뜻을 함께한 어시스턴트들이 '정보공유'라는 이름으로 만든 익명 단체 오픈 채팅방이었다. 100여 명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영화, 드라마, 음악, 잡지 등 다양한 분야의 어시스턴트 400여 명이 모인 이 채팅방에서 노동조합 가입이나 활동 홍보가 이루어진다. 어시스턴트들의 실정에 부합하는 노동단체를 찾던 중 무료 노동 상담으로 알게 된 청년유니온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이들에게 적합한 동반자가 되었다.

마라 지부장은 "밖에서는 '힘든데 왜 그 일을 계속하냐'는 반응밖에 없었거든요. 청년유니온에 왔을 때 함께 분노해주시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서 감동이었어요. 잘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라며 첫 만남을 설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어시스턴트 당사자가 아닌 청년유니온 일반 조합원들도 압구정에서 일터 방문 캠페인을 진행하고, 떼인 월급을 계산하고 고용노동청 진정을 지원하는 TF 활동에 협업하며 신생 노동조합에 힘을 보탰다.

성과는 임금에서부터 나타났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 출범 이후 이들의 평균 임금은 지난해 97.24만 원에서 17.21만 원 오른 114.45만 원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최저임금에는 못 미치지만, 이들의 여론 및 요구사항이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됨으로써 헐값 노동을 개선하려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그동안 개인이 부담하던 택시비나 식비를 실장이 지원해 주었다는 사례도 간간이 들을 수 있다. 다만 실장, 매니저, 연예인 등에 의한 일터 안팎에서의 폭언이나 신체적·정신적 피해, 갑질 문제는 업계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는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대중에게 업계 이면의 모습과 구조,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라는 직업 자체를 알리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다. 작년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폭언과 갑질을 한 사건이 공식적으로 문제 삼아진 것은 방송/미디어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라 지부장은 "예전 같으면 '스타일리스트는 돈 잘 벌고 멋있는 사람'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유튜브만 봐도 '그런데 어시 돈은 잘 주고 계세요?' 이런 댓글이 있는 것처럼, 일반 대중에게도 경각심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할 수 있어요"라고 더욱 적극적인 사회 및 제도의 관심을 촉구했다.

조직 내외에 도사리는 제약들

개인적·구조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한계도 적지 않다. 내적으로는 어시스턴트들의 특성상 조직화의 응집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휴일에도 언제 콜타임(담당 연예인의 촬영 등을 위해 부름을 받는 시간)이나 일정이 생길지 모르는 이들의 불확실한 처지는 정기모임이나 현장 활동을 어렵게 한다. 하루 평균 11시간에 달하는 노동이 끝나고 나서야 밤늦게 온라인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좁은 업계 내에서 일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 역시 개개인의 좌절이나 체념을 낳는다. 마라 지부장은 노동조합을 이끄는 입장에서 꾸준한 조직화가 어렵고 사회적 파급력이 약하다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들의 사용자인 스타일리스트들의 태도와 입지도 노동조건 개선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들도 개인사업자로서 업체로부터 일감을 얻어내는 유동적인 신분이기에 협상의 대상은 업체가 아니라 다시 어시스턴트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마라 지부장은 "위쪽으로 실장과 엔터가 있으니까 우리가 '힘들다' 하면 (실장들과) 같이 뭉쳐서 엔터 쪽에 목소리를 내면 좋잖아요. 그런데 실장들은 아무래도 갑을 관계가 확실하다 보니까 '실장들도 힘들다'라고 토로하는 거예요"라고 구조적 고충을 밝혔다.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이를 최저임금 논쟁과 관련한 '을들의 싸움'에 빗대었다. "최저임금의 의미는 다뤄지지 않고, 단지 '소상공인 살기 힘들다' 이런 이야기만 나오잖아요. 우리끼리 갈등할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실장과 어시 간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적·행정적으로도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근로계약서 및 소정의 근로시간이 없어서 형사사건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진정해도 "어시스턴트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패션어시유니온의 신청으로 일부 스타일리스트들의 근로감독이 이루어졌지만, 분산된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특성상 개별 사례만으로는 업계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기 힘들다.

지난해 10월 21일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서 스타일리스트들이 사용자의 신분을 자각하고 노동 및 고용에 관한 의식을 고양할 수 있도록 노동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미래지향적

패션어시유니온은 현재 최저임금과 근로계약서 문제부터 바로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패션업계에 관심이 있는 스타일리스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정보공유를 공유하고 상담을 진행하며 유니온 활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세웠다. 지속적인 공론화와 함께 인접 단체와 연대 범위도 넓혀갈 예정이다.

최근 청년유니온은 어시스턴트들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청년 여성들로 이루어진 미용실 스태프와 헤어디자이너 등의 조직화를 위해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로써 동질감과 연대감을 토대로 '열정페이' 문제와 젠더화된 노동에서의 적극적인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더 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어시스턴트 시절 겪었던 부조리를 인지하고 바꾸려는 의지를 공유하여 업계 내 관례를 바꾸어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스타일리스트와 연대하여 공통의 요구사항을 상위의 방송계와 연예기획사에 전달하고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제작 과정에서의 노동을 존중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이슈로 만들려는 관심이 필요하다.

"돈을 일확천금 벌거나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한 만큼만 벌되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스타일링한 결과가 방송에 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거거든요."

이들은 '패션어시'라는 약칭보다도 전문성을 인정받는 엄연한 '스타일리스트'로 불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존중받길 바란다. 오늘도 멋진 스타일리스트로 거듭나겠다는 희망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안고 일하는 이들과 용감하게 첫발을 뗀 패션어시유니온이 보여줄 다채로운 행보가 기대된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할수록, 뒤편에서 일하는 청년들 역시 진정으로 즐거운 노동의 보람을 느끼도록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자원활동한 권유미 학생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YOUTHTORY'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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