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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는 가봅시다
 자, 이제는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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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말씀드렸듯, '어떻게'는 오직 손이 하는 일입니다. 손으로 쓰면(노동하면) 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손을 사용해 일정한 글자의 모양을 이루게 하는 것.
손으로 이뤄낸 단어의 조합인 것.
'어떻게'는 오로지 손이 하는 것.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하는 것.
그러지 않고는 써낼 수 없는 것.

(일전에 말씀 드린 내용 발췌)

실례로 작가는 손목과 손가락에 직업병이 납니다. 열심히 글 노동한 거죠. 손목이 시큰하거나 손가락 움직이기가 영 거슬릴 때면, 어김없이 좀 많이 쓴 날의 주변이더라고요. 과다한 (손)노동의 흔적입니다.

그럼에도 쓸 게 많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쓸 게 없어 손가락 기능을 잃게 생겼을 때의 불안보다야 퍽 기쁠 테니까요. 작가라고 옆에 뮤즈를 끼고 사는 건 아닙니다(물론 나타날 때가 있다고 믿긴 합니다. 항상은 아닐 뿐). 수시로 차오르는 영감에 뚝딱 책 완성하는 일은 극도로 드물고, 잘 쓰이는 날과 안 쓰이는 날이 모여 간신히 만들어낸 게 책입니다. 다만 써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 위 살포시 손가락 올려둔 채, 시간을 짜낼 뿐. 그러다 뭐라도 쓰게 되는 것이고, 손이 행하도록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게 전부입니다. 이토록 쓰기란 손의 끼적임입니다. 그럼에도 편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하면 세 가지 이유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엔 '퇴고'가 있음을 잊지 마세요 
 
세 가지 이유란?
 세 가지 이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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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쓰기의 특성에 있습니다. 기록을 말합니다. 말하기보다 쓰기가 더 오래 걸리는 것, 눈치 챈 적 있나요?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지라도 말에 비해 글은 느립니다. 말은 즉흥적으로 뱉는 반면, 글은 고치고 다시 쓰기를 상습적으로 하게 되죠. 오류를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단어를 골라 신중히 타이핑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말은 발화되고 글은 흔적이 됩니다. 글이 되어 시공을 건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요.

게다가 글은 말의 억양이나 움직임 등 제스처를 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내 생각이 최소한의 허용 오차범위 내에서 전달되길 바랄 겁니다. 이심이 전심 되길 바라는 까닭에 토씨 하나 살피며 글을 다듬게 되는 건 이 때문이죠. 더듬대다 소통에 걸리적거리는 단어 하나를 만나면 외출 전 옷장을 뒤지듯 이것, 저것 가져다 대어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 일겁니다. 우리 사이 글에서 발생하는 오해는 없기를 바라는 거지요. 그런 이유로 자꾸 망설여지는 거 아닐까요.

그럴 땐 '퇴고'라는 수정의 시간이 있음을 인지하면 그만입니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한편, 말과 달리 뱉어놓고 도로 주워 담을 수 있는 게 글의 효용입니다. 저는 그래서 글이 좋아요. 덤벙대는 제게 한 번이라도 더 숙고할 시간을 주니까요. 한결 정제된 나로써 여러분 앞에 서게 합니다.

둘째는 생각이 흠뻑 숙성되지 않아서입니다. 경험이 사유가 돼 충분히 숙성하지 않고는 쓸 거리가 잘 없습니다. 직접 혹은 간접경험 뒤, 자유롭고 넉넉한 시간을 두고 사유했을 때 쓸 말이 생긴다고 했어요. 써먹을 만큼 잘 익은 상태가 되어서이겠고요. 익지 않은 생각을 써먹는 건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어라도 쓰겠지만, 쓰면서 찾아지는 생각이 있지만, 보통은요.

만약 보이지 않는 권위와 지성이 작가에게 있다면 마뜩이 사유에서 오는 것일 겁니다. 한 권의 책이 될 때까지 모자람 없이 사유할 것. 숙성할 것. 작가가 쓰기 전 하는 일이니까요. 반대로 생각하면 이미 숙성된 생각을 풀면 쉽게 써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흘러넘치도록 사유해 본 대상이나 사건, 상황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엄마 수강생하고 글 쓰며 절절히 느낍니다. 육아 이야기는 정말 쉽게 써내시는군요, 하고요. 하고 싶은 말도 어찌나 많으시던지, 저는 2페이지만 써 오시라 부탁했는데 3페이지, 4페이지를 채워 주실 때도 많고요. 본인 경험과 사유가 숙성되다 못해 발효된 상태라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와 아이 엄마가 된 자기 생각으로 보내셨겠어요.

뿐만 아니라 어떤 장면을 떠올릴 수 없다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숙성되거나 경험이 차오르거나, 둘 중 하나라도 채워지지 않으면 쓰기 힘들다는 거죠. 역시나 반대로 말하면 떠오르는 장면을 쓰면 된다는 말입니다.

어릴 적 엄마 아빠와 놀이동산에 갔던 일, 그날 처음 먹었던 솜사탕, 범퍼카 타고 울었던 일, 그저 떠오르는 것부터 써보는 거예요. 쓰다보면 느낄 테고요. '우리 엄마 아빠 나를 참 많이 사랑해주었네. 잊고 있었네.' 떠오르는 것을 쓰고, 쓰다보면 찾아지는 깨달음이나 감정을 또 쓰면 한 편의 글 완성입니다.

모자람 없이 사유하고, 두려움을 넘어서자 

셋째는 표현의 미숙과 드러낼 용기 부족입니다. 결국 드러내기에 관한 일입니다. 우선 미숙함은 훈련함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고, 다만 누군가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익숙해서일 뿐이니까요. 순전히 한껏 무르익은 농염한 덕입니다.

가끔 이렇게 묻는 분이 계십니다.

"선생님, 글이 안 나가요. 제가 어떻게 보일까 싶어 쓰면서도 계속 의식하는 저를 스스로 느껴요. 내 글을 써야 되는데 자꾸 타인 시선이 먼저 떠올라서 한 줄 채우기가 벅차네요. 어떡하면 좋죠."

제가 아는 이분은 말 한마디에도 따뜻한 사려가 스며있는 분입니다. 본인 그대로 쓰셔도 글은 충분히 따스할 거라는 말이죠. 저는 알겠는데, 본인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셨어요. 날것의 나를 드러내기 겁내 하시는 거예요.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요. 저보다 훨씬 우아하고 웅장한 언어로 표현해 주신 장석주 작가님 말로 대신합니다.
 
"결국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실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쓰고야 말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글을 쓴다." <글쓰기 스타일> 중

솔직한 나조차 글이 됨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기에 소홀함이 없습니다. 하물며 그런 나로부터 위로와 공감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더욱이요. 뼛속까지 진실한 나는 꼭 그럴만한 삶의 이유가 됩니다.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우리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쓸수록 더 '내'가 될지 몰라요. 쓰며 표현하는 과정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일이니 말입니다. 글쓰기 하나에 자기를 둘러싼 가림막을 한 겹씩 벗게 되는 거죠(그러려면 우선 뭐라도 쓰기 시작해야겠지요?).

숨 한 번 크게 고르고 가장 편안한 상태의 나를 만나세요. 몸은 이완시키고 마음을 활짝 열어 보세요.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 하나를 적어 옮겨 보세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으로 쓰세요. 콕 집어 말하자면 여러분 손가락으로요. 여러분 손과 팔이 움직이는 동안 펄떡이는 심장으로 머리라는 공장을 가동시키세요. 이내 쓸 만한 것이 계속해 여러분을 찾아올 거예요.

기꺼이 여겨 줄기차게 쓰세요. 흘러가는 대로 두세요. 우리 목표는 손으로 쓰는 것이며, 그뿐. 일필휘지란 것은 그런 거니까요. 고칠까 말까는 나중 문제요, 우선 떠오르는 그것을 멈추지 않고 휘갈겨 쓰는 것.

써 봅시다. 어떻게? 손으로요(엉덩이는 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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