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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데서 마음이 젊어진 느낌이다. 달리다 발견한 아침의 달이 곱다.
▲ 아침달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데서 마음이 젊어진 느낌이다. 달리다 발견한 아침의 달이 곱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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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채 살게 되었는데 올해엔 꼼꼼하게 나이를 따졌다. 인생에서 한 고비를 돌아선 것 같았다. 

그동안 나이를 헤아리지 않고 살았던 건 나이 드는 게 싫어 그걸 무시하고 싶어서였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믿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은 않다는 걸, 한 해 한 해 시간이 더해질수록 알게 되었다. 인간은 육체라는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집은 시간이 가면서 낡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집을 낡아가게 하는 시계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영혼이라는 게 또 있다. 그건 집안의 분위기와 온도 같은 것인데 이것만은 시계와 무관하게 저만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나이가 많아도 젊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린데도 노인 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 있으니까.

수전 손택은 롤랑 바르트를 추억하며 '나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는데(<바르트를 추억하며>) 어떤 이들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적 내적 상태를 평생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집의 시간을 따질 게 아니라 영혼의 시간을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똑딱똑딱 시계 방향으로 수를 더하는 게 아니라 반시계 방향으로 수를 빼는 방식으로 살겠다고.

올해의 나이를 꼼꼼하게 따져본 후 거기서 한 살을 뺐다. 그러므로 올해, 작년과 같은 영혼의 나이로 한 해를 더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또 한 살이 줄고 그다음 해가 되면 한 살이 더 줄어들 것이다. 몸이라는 집은 낡더라도 영혼만은 더 젊어지는 삶을 살겠다고.

그래서 언젠가 딸과 나의 나이가 같아지는 해에 우리는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영혼만은 지금까지 축적한 나이를 잃어가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생을 얻은 듯 홀가분하다. 그렇지, 우리는 결국 어린아이가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내 마음은 더 유연해지기를 

지난 12월 말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몸이라는 집이 얼마나 노후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마음과 달리 몸은 매 순간 노심초사했다. 발목을 접질리진 않을까, 무릎에 충격이 가진 않을까, 근육통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희미한 두려움 때문에 달리는 내내 몸에 힘을 주지 않으려 조심하니까.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도는 트랙의 마지막 부분은 내리막길이다. 달리기의 리듬에 흠뻑 취해 가속을 붙여 내리막을 신나게 달려볼까 상상하다가 그 앞에 멈춰 서고 말았다. 잠깐의 흥취보다 낡아가는 무릎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하는 스트레칭은 노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리를 뻗고 앉아 허리를 굽혀보면 누군가 뒤에서 붙잡고 있는 듯 단단하게 버티는 허리. 뻣뻣한 목과 어깨, 등. 이쪽저쪽으로 천천히 숙이고 기울여보다 보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 몸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몸이 마른 장작 같다.

부드럽게 늘어나고 접힐 수 있게 여유 공간을 품고 있던 관절들이 바짝 쪼그라들어 붙어버린 느낌. 거기에 있던 완충 공간이 사라졌거나 그 공간을 채워야 할 윤활유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어떤 동작을 하든 준비 없이도 조심스레 움직이게 되는 건 마음은 이미 몸의 낡음을 인지하고 있어서일까. 정작 주인인 나만 그걸 모른 채 여전히 젊고 예전처럼 다 할 수 있다고 몸을 과신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몸의 변화에 의기소침해진다. 예전의 힘과 유연성은 되찾을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건 조금 슬프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라서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툭툭 털어낸다. 몇 년간 변화를 일상 속에서 마주하며 낙담하기도 했고 걱정하고 조바심치기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늙어감에 익숙해지려 애써 왔던 것도 같다. 차마 정면에서 바라보지는 못해 간신히 곁눈질하는 정도였지만. 그렇게 한 눈으로만 보는 사이 피해 갈 수 없는 자각과 발견의 시점에 다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게 제약만 의미하진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과 시행착오로 내게 잘 맞는 것과 즐기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불필요한 시도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줄고 그래서 수월하게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삶을 꾸려갈 가능성이 생기기도 했다.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어디서든 단번에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고 불필요한 잔가지를 쳐낼 수 있게 되었으니. 나이가 들수록 삶의 복잡성보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내가 반갑기도 하니까. 

'나이에 걸맞은'이라는 기준에 지나치게 몰두할 필요도 없고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나이 듦을 받아들이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그런데도 삶과 예술, 배움과 사랑에 있어서만은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고 다른 건 몰라도 마음만은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을 쏟아야 할 부분은 몸의 젊음이 아니라 마음의 젊음을 챙기는 일이다.

달리기와 스트레칭이 굳어가는 몸에 기름칠을 해줄 수 있다면 익숙하고 안정된 삶과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보려는 시도가 마음과 정신에 유연이라는 기름칠을 해주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나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새해를 칭찬하고 싶고.

몸은 나이를 얻더라도 마음과 정신은 나이를 잃어가면 좋겠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마음은 쉽게 몸을 따라갈 것 같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마음과 정신, 즉 영혼의 나이를 거꾸로 돌려 보기로 한다. 이제부터 해가 갈수록 영혼의 나이는 한 살씩 줄어들 거라고,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그러니 예순이 되면 서른이 되고 예순다섯에는 스물다섯 살이 된다고. 나이가 들수록 내 영혼은 젊음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빨리 예순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너와 내가 나이가 같아지는 해,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어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고 딸아이와 손뼉 치며 좋아했다. 아이 좋아라, 해를 넘어서며 올해처럼 좋았던 적이 언제였나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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