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렀던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이 방송을 재개하며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고 새 출발을 약속했다. 지난 1월 5일 방송된 <골때녀>는 시작부터 자막을 통하여 '시청자 여러분에게 득점 순서 편집으로 실망은 안긴 점 깊이 사과한다. 앞으로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예능 프로그램답게 출연진 열정과 성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뒤이어 <골때녀> 진행자인 이수근과 배성재가 등장하여 제작진의 입장과 앞으로의 프로그램 방향성에 대하여 설명했다. "금일 본방송에 앞서서 시청자 여러분에게 이것만은 꼭 약속하고자 한다. 지난 연말 시청자 여러분의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잘 새겨듣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일 발판삼아 조금 더 발전하는 계기를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골때녀>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전후반 진영교체', '중앙점수판 설치', '경기감독과 입회', '경기 주요 기록 홈페이지 공개' 등을 약속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경기진행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새로운 변화는 향후 촬영분부터 방영되며 이미 촬영을 끝낸 기존 경기들은 조작이나 왜곡없이 현장의 흐름에 맞게 충실하게 전달할 것을 약속했다.
 
배성재와 이수근은 "시청자 여러분이, 특히 축구 팬들이 요구하는 개선사항을 꾸준히 귀담아 듣고 반영할 예정이다. 믿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진행자들도 경기를 지켜 보는 또 하나의 시청자로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방송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방송 폐지 여론까지... 달라진 편집
 
<골때녀>는 지난해 12월 22일 방송된 FC 구척장신과 FC 원더우먼 경기에서 편집 조작이 발생했다. 당시 3대 0에서 3대 2, 4대 3을 오가는 치열한 추격전 끝에 6대 3으로 구척장신이 승리한 것으로 방송됐다. 결과는 같았지만 실제 경기 내용은 구척장신이 5대 0으로 앞서가다가 후반에 세 골을 허용하고 다시 한 골을 추가하여 6대 3으로 경기를 마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경기 흐름과 화면이 부자연스럽다며 편집을 통한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제작진은 '방송의 재미를 위하여 편집에서 골장면의 순서를 일부 뒤바꾼 사실'을 시인했다. 시청자들은 예능적 재미라는 명목으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멋대로 왜곡한 제작진에 분노했다. 조작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동참한 일부 출연진 역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설상가상 기존에 방송된 또다른 회차에서도 편집 조작 의혹이 제기되며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결국 방송 폐지 여론까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SBS는 재차 공식 사과와 함께 물의를 일으킨 제작진(책임총괄 프로듀서 및 연출자)을 교체하고 징계 절차를 밟기에 이르렀다. 지난 12월 29일 방송을 결방하며 재정비 기간을 거쳤다. 지난 한 해 여자축구의 매력을 보여주며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골때녀>에 찾아온 최대의 위기였다.

이어진 방송에서는 FC 액셔니스타와 원더우먼의 풀리그 4차전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는 조작 논란이 터지기 전에 촬영된 기존 방송분(구척장신 VS 원더우먼전 3일 후 촬영)이었다. 이번에는 득점이 터졌을 때 골을 넣은 선수 옆에 득점한 시간까지 표시됐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축구인들의 해설을 통하여 경기흐름의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늘어나는 등 지난 경기의 논란을 의식한 듯한 편집의 변화가 느껴졌다.
 
액셔니스타와 원더우먼 양팀 모두 첫 경기에서 나란히 1패씩을 안은 상황이라 첫 승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액셔니스타는 지난 시즌1까지 포함하면 승리없이 3전 전패만 당했고, 원더우먼은 평가전에서의 승승장구와 달리 구척장신에게 충격적인 대패를 당하며 모두 독기를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천수 원더우먼 감독은 지난 경기 패배 이후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을 격려하며 적극적인 몸싸움과 자기 의사표현 등을 주문했다. 1차전에서 6실점을 하며 흔들린 박슬기 대신 요니P가 새로운 수문장으로 낙점됐다. 원더우먼은 국가대표 출신 김형일 등을 스페셜 코치로 초빙하며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다.
 
액셔니스타 이영표 감독은 이혜정-최여진 등 장신 선수들을 활용한 헤딩 플레이를 집중 연습했다. 액셔니스타의 골키퍼 장진희는 지난 경기(액셔니스타 VS 개벤져스) 패배 이후 악플의 고충을 토로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너만 나가면 액셔니스타는 우승한다', ' 골키퍼만 실력발전이 안됐다' 등의 악플이 SNS를 통하여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고.
 
장진희는 "솔직히 속상하다"면서도 "저는 1주일에 9번, 10번씩 연습한다. 코치님이 쉬라고 할 정도지만 쉴 수가 없다. 진짜 잘하고 싶다. 포기 못하겠다. 이제야 열심히한 게 보인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포기할 수가 없다"고 다짐했다. 비록 조작 논란에 가려졌지만, 방송이 높은 화제성과 몰입도를 보이면서 일부 출연자들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악플은 <골때녀>의 또다른 심각한 문제가 됐다. 액셔니스타의 또다른 출연자인 배우 김재화도 악플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프로그램 하차를 고민했던 이야기를 고백한 바 있다.

정혜인 VS 송소희 에이스 대결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액셔니스타와 원더우먼의 경기는 사실상 정혜인 VS 송소희의 에이스 대결이 돋보였다. 원더우먼은 적극적인 몸싸움-이천수의 세트피스 전술을 앞세워 지난 경기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송소희가 탁월한 개인기를 보이며 전반 몇차례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액셔니스타는 전담 키커 정혜인의 킥인과 돌파에 이어 최여진-이혜정의 장신투톱이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하며 원더우먼의 골문을 위협했다. 양팀은 치열한 공방 끝에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후반들어 팽팽한 균형이 깨졌다. 3분 만에 액셔니스타의 코너킥 상황에서 정혜인이 살짝 밀어준 공을 최여진이 측면에서 빠르게 논스톱 슈팅을 시도한 것이 골키퍼 요니P를 맞고 그대로 골안으로 떨어지며 마침내 첫 골이 터졌다. 이어 6분에는 정혜인의 킥인을 요니P가 잡아내지 못하고 흘렸고 공을 잡아낸 최여진이 중앙에서 침착하게 연결해준 패스를 다시 정혜인의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추가골을 뽑아냈다.
 
이후 경기흐름은 급격히 액셔니스타 쪽으로 기울었다. 불과 1분 뒤 정혜인이 김희정의 킥인을 커트한 후 단독 돌파에 이은 역습으로 추가골을 뽑아냈다.

액셔니스타는 송소희-황소윤으로 이어지는 원더우먼의 공격루트를 모두 간파하고 패스를 족족 끊어내며 역습으로 전환했다. 설상가상 원더우먼은 치타에 이어 교체투입된 박슬기마저 잇달아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겹쳤다. 경기종료 직전 원더우먼은 송소희가 문전에서 핸들링 파울까지 저질렀고, 키커로 나선 정혜인이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헤트트릭을 작성했다.
 
액셔니스타는 결국 4-0으로 완승을 거두며 창단 첫 승-첫 무실점-최다골-최다점수차 승리 등 각종 기록들을 경신하면서 그간의 한을 풀어냈다. 이영표와 액셔니스타 멤버들은 서로 둥글게 얼싸안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눈시울을 글썽이며 오래 기다린 첫 승의 감격을 마음껏 누렸다.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이영표는 "승리했을 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선수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이 첫 승이 앞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승리의 주역인 정혜인은 "제게 축구는 어렸을 때 못다한 꿈을 이루는 과정이다. 배우도 좋지만 운동선수에 대한 꿈이 있었다. 익스트림한 스포츠들은 많이 해봤지만 취미에서 끝났다면, 골때녀는 제가 한 단계씩 성장하는 모습을 증명할 수 있는 곳"이라며 축구선수가 된 기분에 큰 성취감을 드러냈다.
 
최여진은 "말로는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1승을 거둔게 기쁘기도 하지만 꿈같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마음고생이 많았던 그간의 속내를 밝혔다.

한편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던 신생팀 원더우먼은 충격의 2연패에 할말을 잃었다. 김희정은 눈물까지 흘렸다. 평가전에서 무려 10골을 넣었던 돌풍을 일으켰던 원더우먼은 리그전 2경기만에 무려 10실점을 허용하며 꼴찌로 추락했다. 이천수는 "미안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다시 한번 분발을 다짐했다.
 
이어 다음주에는 나란히 1승씩을 거둔 개벤져스와 탑걸의 대결이 예고됐다. 환골탈태를 약속한 SBS의 다짐과 축구를 향한 출연자들의 진정성이, 조작 논란에 실망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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