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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코로나19

고(故)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 보면 한 시골 양반이 매를 맞는 이야기가 나온다. 맞기 전에는 "반가에 태어나서, 어엿한 의관의 집 자손으로…."로 하며 양반 행색을 하다, 매를 맞으면 죄를 고백하고 그러다 형틀에서 풀려나면 "반가에 태어나서, 어엿한 의관의 집 자손으로…."라고 다시 양반 행색을 하려 한다.

현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시민들도 이 시골 양반과 비슷한 심리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시민들의 경우는 이 시골 양반의 정신분열 상태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면 여행을 갈까 싶다가도 상황이 악화되면 아니지 하고 고민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코로나 발생 초기에 <오마이뉴스> 2020년 4월 13일자 기사에 여행 부추기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글을 실은 적 있다(관련기사 : 코로나바이러스와 여행 http://omn.kr/1na9m).

그런데도 필자가 백신을 맞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백신 증명서를 영어로 받아두고 인터넷으로 백신 여권을 받아두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여행업계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행 광고를 다시 시작하고 있고 국내 지자체도 국내 여행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해외여행에 대해 강렬한 유혹을 느낌과 동시에 다소의 죄의식을 느낀다. 김누리 교수는 한 매체에서 플뤼그스캄(flygskam), 즉 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일부 유럽인들이 비행기가 자동차, 기차보다 탄소를 많이 소비한다고 비행기보다는 자동차, 기차 여행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많이 안 해 봤다는 필자조차도 해외여행을 가야 여행 갔다는 생각이 들지 국내 여행은 왠지 여행 같지 않은 느낌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산맥과 물을 건너야 여행 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탄소 배출 문제뿐 아니라 비행기 여행은 코로나19가 퍼지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 엄격한 거리 두기 정책을 펴고 있고 이로 인해 국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사실 정확히 따져 생각해보면 국내에서 아무리 전파를 통제한들 그것이 한계가 있는 것은 최초 코로나19와 그 변종들 모두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고 유입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옛날에 전염병이 육로나 해상의 경로로 인류에게 전파되었다면 분명 코로나19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건너온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론 세계 어느 정부도 공항을 완전 폐쇄할 수 없다. 이미 국내 경제는 물론 세계 어느 국가의 경제도 해외와의 교역 없이는 유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인류의 편익을 위해 만든 글로벌 네트워크를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비행기 덕분에 해외에서 주문한 상품을 단 며칠 만에 집에서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 한탄스럽게도 비행기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해외직구 못지않게 빨리, 간편하게 우리 앞에 와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현대산업사회에서 모빌리티(mobility), 이동성은 크나큰 장점 중의 하나였는데 이 이동성이 우리를 조이는 족쇄가 된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이동성에 대한 안정화
 
2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트로피컬 파크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소 앞에 차량이 줄지어 늘어선 채 대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첫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관련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이날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주 미국 내 신규확진자 중 73%가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21.12.21
 2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트로피컬 파크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소 앞에 차량이 줄지어 늘어선 채 대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첫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관련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이날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주 미국 내 신규확진자 중 73%가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21.12.2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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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산업사회는 이동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콜럼버스가 원거리 항해를 떠나지 않았다면 현대산업사회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을 발명하지 않고,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중화시키지 않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현대 산업사회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엽 중국인 수필가 린위탕(林語堂)은 일찌감치 동서 문화 차이론을 제기하였다. 서양인은 동(動)적이고 동양인은 정(靜)적이라는 것이다. 서양인은 히말라야 등반을 즐기나 중국인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히말라야 등반은 스포츠의 일부로 낮선 일이 아니지만, 조선 시대에는 명분도 없이 멀리 천축국에 있는 높은 산을 오르겠다고 하면 구설수에 휩싸일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대략 한 세기가 지난 2022년에 와서 새삼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제 서구인들보다 더 역동적이고 이동성을 열망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은 옛말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코로나19가 창궐하고 탄소 배출의 절제를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린위탕의 동서 문화 차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대 산업사회가 내거는 이동성의 성공신화에 최면이 걸려 있는 면이 있다. 그것은 현대 산업사회가 이동성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동성으로 산업사회를 구축한 서구는 20세기 초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을 누비고 다니면서 부를 끌어모았다. 이에 전 세계 산업화 후발 주자를 자처하는 국가들이 이 이동성의 증대를 통한 국가 발전에 열을 올렸다. 우리나라도 이 이동성의 증대를 통해 산업화 후발 국가 중에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우리가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이동성에 대한 본능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업화를 학습하면서 서구로부터 배워온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커피가 맛있기도 하지만 문화적 학습의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이라고 휴가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바캉스에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관습은 서구문화에서 배운 것이다. 현대산업사회의 이동성에 재미를 본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움직여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고가 깊이 입력되어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정체되어있다고 생각하고 바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과잉행동 장애(ADHD)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서구인들의 이동성에 반하는 동양인의 일종의 정체주의(staticity) 내지 관조주의에 대한 린위탕의 고찰은 코로나19 3년 차의 인류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탄소 과다 배출, 미세먼지 증가, 코로나19의 세계적 전파 모두 인류의 이동성 추구와 연관이 있다. 이런 면에서 린위탕이 대략 한 세기 전에 동양인의 정(靜)적인 추구를 후진성으로 치부하지 않고 삶의 또 다른 일면으로 바라본 것은 일리 있다.

서구 사회의 이동성은 현대 산업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동(動)과 정(靜)의 두 축에 의해서 움직인다. 인간인 이상 안 움직이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계속 움직이고 살 수도 없다. 정(靜)의 추구는 나쁜 의미의 정체성, 수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빈대로 동(動)의 추구는 때로는 공격성,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명제도 언제나 진리일 수 없다. 월드컵 4강 이후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우리 국민이 감동하고 즐겨 사용하는 명언이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찐 사람이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고 말한다든지 수십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 "아직 나는 배고프다"라고 말한다면 이제 우리는 그 말에 갈채를 보낼지 고민이 된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는 서구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을 잘 보여주는 명제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정말 필요한 명언이다. 그러나 국내 및 세계 정치, 경제를 논하면서 이 명언을 적용하는 것은 코로나19 3년 차 시대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배고파하는 대기업들 때문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힘들고 끊임없이 배고파하는 강대국 때문에 약소국들이 힘들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고파하는 인간들 때문에 생태계와 지구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는 무한 발전론에서 지속 가능 발전론으로 국가 정책 프레임을 바꾸고 있다. 일부 환경 극단론자는 발전은 무슨 발전이냐 현상 유지도 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발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전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더 무한 발전론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 환경과 이웃을 돌아 보아야 한다는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받고 있다. 많은 환경학자, 현대 산업 문명 비판자들이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부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서구 근대과학의 편협함을 비판하며 <반(反)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주장하고 아르헨티나 출신 월터 미뇰로(Walter Mignolo)는 안데스 원주민 사상에 근간을 둔 빠차꾸띠(pachacuti: 께추아어로 세상의 뒤집힘)를 내세운다. 필자는 동양전통 사상에 기반해서 현대 산업 문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라 하면 "동(動)에서 정(靜)으로의 전환" 내지 "이동성에서 안정성"으로의 전환"을 첫 번째로 제안할 것이다.

애주가들은 술 마시는 것을 달린다고 한다. 인류도 현대 산업 문명을 겪으며 굉장히 빨리 달려왔다. 인류는 이제 주마간산(走馬看山)식 달리기를 그만두고 서서히 주변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알 때가 되었다. 이동성에서 안정성으로 우리의 사고를 리세팅할 때가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경제법률신문및 페루 일간지에도 실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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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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