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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된 과일을 정리하고 있는 죽도시장 박두인-이방숙 부부.
 진열된 과일을 정리하고 있는 죽도시장 박두인-이방숙 부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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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5일간 새벽에 문을 열어 해가 지고서야 가게를 닫았다. 예외는 없었다. 그 기간 동안 쉬었던 날은 겨우 38일. 1년 중 설과 추석 당일에만 피곤한 몸을 뜨끈한 방바닥에 종일 누일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삶이었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탓에 남들처럼 살뜰하게 살피지 못했음에도 두 아들은 바르고 건강하게 자랐다. 올해 스물여덟인 장남은 육군 대위, 작은 아들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한다. 주위 사람들은 인물 좋고, 인사성 밝은 아들들 칭찬에 입이 마른다.

"이제 자식들도 자리를 잡았고, 당신들 나이도 적지 않으니 이번에는 함께 며칠간 휴가라도 다녀옵시다."

지인들이 간곡하게 청했지만, 지난해 여름에도 예년처럼 부부는 휴가를 가지 않았다. 지루한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매일같이 '삶의 현장'을 꿋꿋이 지켰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19년째 옥천만물상회를 함께 운영하는 박두인(60)·이방숙(57) 부부 이야기다.

갖가지 과일과 함께 두 사람의 청춘이 활짝 폈다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쓸쓸하거나 서럽지 않다. 아니, 그런 감정을 느낄 틈이 없다. 박 대표는 웃으며 말한다.

"어릴 때 잘 보살피지 못했음에도 아이 둘 모두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 자식들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성장하는 걸 볼 때면 나와 아내의 고생이 가치 없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부부 건강도 나쁘지 않다. 앞으로 20년은 너끈히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으니 새로운 활로 찾아야

부부가 일하는 가게를 찾았을 때 박 대표는 바쁘게 과일 박스를 배달한 후, 팥죽과 쇠고기무국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덩치는 크지 않은데 몸을 쓰는 육체노동을 해서인지 식사량이 상당했다.

단골손님이 끓여온 따끈한 팥죽과 아내가 준비한 국으로 달게 식사를 하는 박 대표 옆에 앉아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물었다. 나와 남편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아내 이방숙씨도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이 많이 위축됐을 듯하다.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하는 상인들이 많다. 모두가 어렵다고 한다. 장사를 수십 년 해 와서 단골이 많은 분들, 자기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좀 덜하다. 반면 임대료 내기가 벅차다고 하는 상인도 있다. 다행히 우리 건물주는 좋은 사람이라 가장 힘들었던 시기 3개월 동안 임대료를 절반으로 낮춰줘 작지 않은 도움이 됐다."

-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으니 생활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내가 투 잡(Two job)을 뛰고 있다. 밤에는 오토바이로 퀵 서비스를 한다. 죽을 맛이다.(웃음)"

- 여러 업종 중 과일가게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20대 중후반 젊을 때 장사를 시작했다. 가진 돈이 별로 없었기에 트럭을 구해 봄과 여름엔 과일을 팔고, 겨울엔 붕어빵을 팔았다. 과일 장사는 진입장벽이 낮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우리 부부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걸 찾다보니 과일을 팔게 됐다. 과일 장사는 부지런히 한다면 먹고사는 건 어렵지 않은 직업이다."
 
겨울이지만 계절과 무관하게 다양한 과일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지만 계절과 무관하게 다양한 과일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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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인 귤과 딸기, 맛있는 걸 고르는 비법은...

하루 종일 가게와 집에서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없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내 이방숙씨가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다. 과일가게란 게 힘을 써야 할 경우가 많다. 시시때때로 무거운 물건이 옮겨야 하니까.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시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박 대표가 능청스런 말투로 이렇게 받았다.

"여전히 24시간 보고 있어도 좋다. 그리고, 과일은 주부들이 많이 사러오는데 나처럼 미남이 있으면 판매에 도움이 된다."

우스개를 던지는 남편의 얼굴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내.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왁자한 웃음 끝에 이야기가 계속됐다.

- 지금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과일은 뭔가? 그리고, 실패하지 않는 과일 고르기 비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겨울엔 귤과 딸기가 맛있다. 딸기는 처음 나오는 이즈음이 가장 달콤하다. 참외도 한여름보다 4~5월 처음 나올 때가 맛있듯. 빛깔이 선명하고 진한 딸기와 귤을 고르면 된다. 귤의 경우엔 윗부분이 매끄럽지 않고 조금 까칠한 게 당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좋다."

- 오랜 시간 장사를 해왔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
"오늘처럼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는 15년 이상 된 단골들이 여러 명이다. 서로가 정을 나누는 관계가 됐으니 이젠 장사꾼과 손님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남을 이어간다. 매일 새벽 6시 이전에 시작해 저녁 7시 30분까지 하루 13시간 넘게 일하는 피로를 그런 관계 속에서 풀고 있다."

- 어려움이나 힘겨웠던 시간도 있었을 텐데.
"남편이 과일을 배달하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3번이나 났다. 너무 놀라고 걱정했다. 다행히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우리는 다쳐도 입원을 하기가 어렵다. 배달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고, 언제 가게로 손님이 찾아올지 모르니 아파도 참고 일을 하게 된다."

- 아들 둘도 과일을 좋아하는가.
"별로 안 좋아하더라. 왜 중국집 아이들은 자장면을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어릴 때부터 매일 봐온 과일이 지겹기도 할 것이다.(웃음)"

- 짤막한 질문이다. 두 분에게 죽도시장이란.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더 멋있게 말하자면 인생 그 자체다. 우리 삶의 1/3을 보낸 곳이 죽도시장 아닌가."
 
나라 살림이 펴지고, 서민들 삶도 나아지길 바라며 환하게 웃는 박두인-이방숙 부부.
 나라 살림이 펴지고, 서민들 삶도 나아지길 바라며 환하게 웃는 박두인-이방숙 부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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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새해 꿈은 모두가 비슷하지 않을까

최근 부쩍 오른 물가 탓에 장바구니를 든 이들의 물건 사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박 대표 부부의 이야기다.

예전엔 처음 들른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몇 달 전부턴 귤 3천원어치, 딸기 5천원어치를 사면서도 대여섯 군데 과일가게를 방문해 꼼꼼하게 가격과 양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기화 된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이 서민이다. 재래시장은 높은 물가에 대처하는 그들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박두인·이방숙 부부의 2022년 꿈도 지극히 서민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되고, 나라 살림의 주름이 펴져서 국민 모두가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 환경을 가지게 되는 것. 박 대표가 덧붙였다.

"그게 어디 나와 아내의 꿈이기만 하겠어요. 한국의 서민 모두가 비슷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할 겁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더는 덧붙일 말이 없었다. 이처럼 소박하고 성실한 서민들이 흘리는 땀이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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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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