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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공판 장면(동아일보, 1920.7.13)
 민족대표 공판 장면(동아일보, 1920.7.13)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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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완이 3ㆍ1혁명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그의 의지가 어떠하였는지 다음의 신문조서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먼저 1919년 5월 2일에 열린 경성지방법원 예심부의 일부 기록이다.

문 : 피고가 최초 박희도에게 희망을 말한 것은 박희도가 이승훈과 같이 조선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참가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답 : 그런 것이 아니고 나는 박희도가 그런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문 : 그런 것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나 돌연히 그러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그런 일을 듣고 그런 것이 아닌가. 
답 : 나는 신문지상에서 윌슨 이가 민족자결을 주창함을 알고 본년 1월 상순경 조선도 민족자결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박희도를 만나서 그 의사를 말하였다.

문 : 어떤 신문에서 민족자결을 주창한 것을 보았는가.
답 : 본년 1월 상순경 대한매일신문을 보고 알았다. (주석 4)
3.1 혁명에 참여한 어린 소년을 붙잡는 일본 헌병경찰
 3.1 혁명에 참여한 어린 소년을 붙잡는 일본 헌병경찰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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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7월 26일 서대문감옥에서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일본인 영도웅장(永島雄藏)에 의해 행해진 신문(訊問)에서 박동완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문 : 3월 1일 선언서를 발표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는가.
답 : 폭동이 일어날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군중이 모이면 자연 소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었다.

문 : 피고 등이 독립선언을 했기 때문에 황해도ㆍ평안도ㆍ함경도ㆍ경기도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예상하고 한 것이 아닌가. 
답 : 그런 예상은 하지 않았었다.

문 : 각 지방으로 선언서를 보내어 발표하게 한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자연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답 : 서울에서는 선언서를 낭독 발표한다는 것이었으므로 소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으나, 각 지방에서는 다만 선언서를 보낸다는 것뿐이어서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주석 5)


주석
4> 이병헌, 앞의 책, 467쪽.
5>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민족 독립운동자료집(12) 3ㆍ1운동1>, 186~18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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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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