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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떤 양형의 이유>
 책 <어떤 양형의 이유>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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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은 온갖 정보와 판단과 그 결과만이 있을 뿐 사람도 인생도 눈물도 기쁨도 없는 곳으로 보인다. 사람과 사람 간의 수많은 다툼 속에서 반드시 어떤 결론을 제시해야 하는 재판 현장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인간미가 '양형 이유'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양형 이유'는 양형 이유를 말해줄 뿐 아니라 재판의 결론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며 무엇보다 '억울한' 인생에 '더 억울한 낙인'을 찍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좋은' 판사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길이 되기도 한다.

판사가 아닌 일반인들은 '양형 이유'에서 재판이라는 제도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재판이라는 제도가 사회에 주는 유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어떤 양형 이유>는 판결문에서는 알아낼 길이 없는 판사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는 동시에 재판 제도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찾게 해준다. 이 책을 열어볼만한 독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그저 별 볼 일 없는 시골판사 정도로 소개하는 지은이 박주영은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법률적 판단 결과만 제시하는 판결문과 달리 그나마 판사의 인간적 감정과 판결 사유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양형 이유'라는 제도라고 말하면서 이를 통해 "법적 평가로 소실돼버린 구체적 인간과 그들의 고통 일부를 복원해낼 수 있었다"(6쪽)고 말한다.

현직 판사 박주영은 인간미가 전혀 없는, 오로지 법률적 판단 결과만이 휑하니 담긴 판결문을 쓰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을 늘 못내 아쉬워하면서 오만가지 인간사가 모인 재판정에서 누구도 쉽사리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문을 내놓아야하는 판사의 인간적 고뇌를 내비쳤다. 한편으론 수많은 형사재판 피해자의 고뇌에 찬 호소에 그 역시 감정을 가진 인간인 판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재판에 임하는지를 '최종심' 같은 국민 앞에 호소한다.

지은이는 위독한 시어머니의 고통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여 지역에 '패륜며느리'로 낙인찍히고 평생 누군가의 가해자로 남을 뻔했던 한 여성이 피해자의 손녀들이자 피고인의 딸들의 줄기찬 증언과 무료 변론에 가까운 헌신을 보여준 변호사의 노력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고단한 개인사와 그에 얽힌 피고인의 고통과 살인 의도를 찾기 힘든 피해자의 사망 요인을 두루 담은 판결 이유를 들려준다.

지은이는 이를 통해 피해자 시어머니를 도저히 모시기 힘든 상황과 자기 몸도 불편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최선을 다해 피해자 시어머니를 모셨던 정황들을 자세히 기록한다.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죄다 지우려는 것은 부당하며 일부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식의 판단은 더더욱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수많은 판결 사례들을 소개하며 글을 이어가는 판사 박주영은 이렇듯 '양형 이유', 그러니까 판결의 이유를 담은 판사의 목소리를 종종 내비치며 인간은 빠진채 오로지 판결만이 있을 것 같은 법정에도 사람과 세상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판결 결과만을 제시하는 것 외에 어떤 인간사도 들어갈 틈이 없을 것 같은 법정에도 사람 사는 냄새는 분명 있다는 말을 하고픈 지은이는 피고와 원고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욕을 먹는 판사의 억울함과, 그보다 더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 그리고 원고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함께 들려준다.

재판정의 피고와 원고 어느 한 쪽 누구에게도 더 우호적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판사는 오로지 사실관계 파악을 시작으로 유무죄 판단과 그에 따른 판결 결과 외에는 유죄의 정도나 무죄의 정도에 대해서도 참 말하기 힘든 직업을 가졌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고뇌에 찬 판결문을 읽는 이가 판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심 '최종심' 국민들에게 호소하고팠던 지은이는 이 세상의 수많은 억울한 고통과 피해를 겪는 자들에게 법으로는 결코 만족스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법 이상의 그 무엇을 통해 판사는 물론 '최종심' 국민 모두가 함께 조금이라도 더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해보기도 한다. 
 
연대와 동조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공감과 동조, 연대와 실천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그나마 탐욕에 맞설 수 있는 근사치의 답이 아닐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경쟁자를 공감과 협력으로 물리친 자랑스러운 DNA가 있지 않은가. 공감이 법으로 구현되고 언제나 가장 늦게 공감하는 법률가의 양심에까지 스며든다면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59쪽)

지은이는 판결문은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짜내고 짜낸 메마른 문장이다"(269쪽)라고 말하면서도 판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런 메마른 글의 형식에 판사의 인간적 요소를 죄다 내어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법은 기계처럼 보이지만 법을 다루고 이를 통해 누군가에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은 피고든 원고든 억울한 누군가의 상황을 알아주는 궁극적 목적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법을 정해진 길로만 가는 기계처럼 사용하는 판사는 법으로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한없이 메말라 보이는 법을 다루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은이가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오늘도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를 변호하거나 의심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그 가운데서 나름의 적절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빼고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도 있을 것이다.

판결은 사실관계 파악에서 출발하고 판단 외에는 감정은 뺀 결론만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재판 제도의 메마름 속에서도 결코 메마른 것일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상황과 감정과 사정을 그 어딘가에는 담아내어 알아주어야 한다.

지은이는 판사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판결문에 아니 양형 이유에 사람을 담고 인간을 향한 사랑도 담아내길 원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수많은 판사가 아닌 일반인들은 판사의 판결문에서 아니 양형 이유에서라도 소외당하는 목소리들이 하나라도 더 제 목소리를 찾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지음. 경기 파주: 김영사, 2019.


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은이), 김영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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