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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조용하게 저물어가고 있다... 이렇게 써놓고 한 해가 훌쩍 넘어가 버렸다. 달력의 끝장에 와서야 지나간 세월에 대해 비감해지고, 새 달력 앞에서는 덤덤해지는 것이 흐르는 세월이다.

그렇게 97년의 시간을 살면서 매년 한 해의 끝자락이 되면 지역의 면사무소를 찾는 어르신이 있다. 기역자로 굽은 노구에 백발의 할머니가 부여군 충화면 면사무소에 들어섰다. 면직원에게 봉투를 내놓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돌아서는 할머니를 면직원이 막아섰다.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말어. 여기서는 다 알어. 거기까지만 혀."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곧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된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부여군 충화면 사무소에서는 연말마다 작은 정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황영순 할머니와 이런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해마다 한 번씩 펼쳐진다.

"할머니. 이거 우산인데 하나 가져가세요."

면직원은 황영순 할머니에게 우산 한 개를 쥐어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황영순 할머니가 면사무소를 다녀갔다는 소식에 만지리로 달려갔다.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사랑굴에는 97세의 황영순 할머니가 살고 있다. 황영순 할머니에게 나는 얼굴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되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천자문과 명심보감 매일 필사하는 어르신

몇 년 전 나는 홀몸 어르신 생활지원사로 지역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사이버대에 편입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이 충천했을 때였다.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민인 듯 아닌 듯 지역민으로 살던 나한테 사회복지 현장의 일은 재미있었다. 심신이 나약해지고 외로운 노인들의 안부를 살피고 정서에 공감해주고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 하는 일이었다.

대개 시골 노인들의 하루는 텃밭을 가꾸고 의료기관에 다니고 그 외의 시간은 마을 회관에서 보낸다. 황영순 할머니에게는 이런 일상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붓펜으로 화선지에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하루에 두어 시간은 반드시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쓰고 소리내 읽으며 그 뜻을 되새기는 루틴을 즐기는 분이었다(지금도 하신다고).

두 권의 책은 얼마나 오랜 세월 할머니의 곁에 머물렀는지 종이의 재질은 변색되고 표지는 닳아서 제목이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연세가 90세, 공자님의 나이 구분법으로는 졸수(卒壽)의 나이에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줄줄이 읽고 쓰는 할머니였다. 지금도 할머니의 공책에는 두 권의 책을 암기하며 써내려간 한자들이 암호처럼 빽빽하게 써 있었다.
 
매일 공책에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필사하신다. 1급 한자급수 시험을 봐도 통과할 실력의 97세 할머니
▲ 황영순 할머니. 매일 공책에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필사하신다. 1급 한자급수 시험을 봐도 통과할 실력의 97세 할머니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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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한자 실력으로 할머니의 필사에 공감을 해주며 우리는 교감이 깊어졌다. 할머니는 천자문을 읽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고 명심보감을 쓰며 형성된 가치관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게 된 것 같았다. 90세의 연세에도 노욕이라고는 없이 청정하고 꼿꼿하게 삶과 마주하는 모습으로 내 삶까지 물들였던 분이었다.

4년 정도 전에 생활지원사 일을 그만두고 의용소방대 활동으로 그 마을에 들렀다가 할머니의 안부도 묻고 인사를 드릴 겸 방문했더니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할머니의 기억은 메모리의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새로운 정보는 저장이 되지 않는 구형 저장 장치처럼 낡아버린 것 같았다.

청각 장애 초기 증상이었던 할머니는 청력이 악화되어 거의 소리 없는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저장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인지 기능 장애가 아니라 나를 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아서 잊은 것 같았다. 안심을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할머니가 의용소방대 제복에 새겨진 이름표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반갑고 또렷하게 내 이름 석 자를 부르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매일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읽고 쓰는 루틴을 즐기는 97세의 할머니
▲ 색이 누렇게 바랜 명심보감과 황영순 할머니 매일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읽고 쓰는 루틴을 즐기는 97세의 할머니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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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끔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 가면 바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종이에 이름을 써서 보여주면 격하게 반가워 해주시곤 한다. 나는 할머니에게 얼굴보다 이름으로 저장이 된 지인이 되었다. 그 후로는 1년에 1, 2회 정도 찾아뵙고 있다. 

"우리 집 양반이 생전에,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편하게 댕기라고 대나무로 빗자루를 매서 매일같이 마을길을 쓸었어. 비가 오면 땅이 패이쟎여. 냇가에 가서 자갈을 지게로 져다가 메꿔(메워)주고 눈이 내리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눈길을 터주고 그랬어. 나중에는 지게를 지고 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내가 장에 가서 구르마(손수레)를 사다줬지."

오래 전 포장이 안 된 신작로를 걸어서 부여군 충화면에서 임천면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동네 아이들을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빗자루로 미리 길을 쓸어주었던 이야기는 동네에서는 이미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내용이 새겨진 비석이 동네 입구에 서 있기도 하다.

"임천국민핵교 5학년 학생들 11명이 우리집에 감사 편지를 보내왔어. 담임 선생님이 시켰겠지. 그래서 내가 그 11명에게 일일이 답장을 써서 우체국에 가서 우표 붙여서 부쳐줬어."
 
고 신채선 님은 생전에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을 손수 빗자루로 쓸어주고 학교에 대빗자루도 만들어 기증하는 등의 재능기부를 일치감치 실천하신 분이다.
▲ 황영순 할머니의 부군인 고 신채선 님의 선행비 고 신채선 님은 생전에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을 손수 빗자루로 쓸어주고 학교에 대빗자루도 만들어 기증하는 등의 재능기부를 일치감치 실천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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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임천면에 있는 학교마다 대빗자루를 묶어서 가져다주는 재능기부를 90년대에 미리 실천하기도 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도 남편이 생전에 해오던 일을 할머니가 15년 동안 이어서 하고 있는 일이다. 신작로가 포장이 되고 더 이상 대빗자루가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대신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면에 기탁하기 시작했다.

명심보감 천명 편에는 선행을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고 근학 편에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배워야 할 것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 노부부는 생활 속에서 명심보감을 실천하며 살았다.

할머니의 인생 철학, 오래 들었으면

할머니는 5남1녀의 자녀를 뒀다. 시골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반복해서 읽고 쓰던 어머니와 공공을 위한 일에 앞장섰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5명의 아들들 중 3명이 공직에 입문했다.

우체국장으로 퇴직한 큰 아들을 비롯해서 종로구 부구청장과 현직 고교 교장까지 한 집안에서 공직자를 3명씩이나 배출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두 5급까지 오르기도 드문 일이다. 이 아들들은 내가 가끔 할머니를 뵙고 온 날이면 반드시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해온다. 덕분에 할머니의 자녀들한테도 나는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다.

명심보감 훈자 편에는 금전보다는 자녀교육이 더 중요하며 교육의 방법은 가장 엄격하면서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명심보감이 스며든 황영순 할머니의 교육 철학은 자녀들을 반듯하게 키워낸 밑거름이 된 것 같았다. 

황영순 할머니는 시대의 어머니 상이며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온 분이다. 어릴 적부터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읽고 쓰다 보니 거기에 나온 가르침 그대로 살게 되었다. 할머니를 뵙고 온 날이면 큰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온 것처럼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올해 호랑이 띠를 새로 맞이한 97세 황영순 할머니의 인생 철학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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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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