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고, 타고난 천성과 육아 스타일 탓에 나의 어린 시절은 방목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려려니 했던 것들이 결혼하고 정성을 다해 남편을 키우신 시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도 비교됐더랬다. 그래도 나에겐 할머니가 계셨다. 울고 싶을 때는 할머니 품에서 울었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할머니한테 제일 먼저 이야기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젊은 할머니셨던 나의 할머니는 올해 아흔이 되셨다. 일하며 아이 키우며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다 간혹 뵐 때 할머니의 노쇠함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다.

어느 해 할머니의 생신날 앙금 꽃이 예쁘게 올라간 떡 케이크에 '할머니 사랑해요'를 새겨 주문해서 가지고 갔다.  
 
할머니 생신에 예쁜 케이크를 주문 제작했으나 할머니께서는 보지 못하셨다.
▲ 할머니 생신에 준비해 드린 앙금 떡 케이크 할머니 생신에 예쁜 케이크를 주문 제작했으나 할머니께서는 보지 못하셨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할머니께 케이크가 예쁘지 않냐고 했더니,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냥 덜어드리는 떡을 드시기만 했다. 할머니의 이름까지 새긴 예쁜 떡이었지만, 할머니께는 그저 시각을 제외한 미각으로만 알 수 있는 떡일 뿐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눈이 점점 안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백내장 수술을 결심하셨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은 할머니는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도 아무에게도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으셨다. 코로나 상황이라 보호자로 병원에 들어가려면 입원할 때 들어간 보호자가 퇴원할 때까지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일정대로라면 꼬박 3박 4일을 온전히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식들, 손주들 모두 일하랴, 본인의 자식들 키우랴 바쁜 상황을 알기에 선뜻 수술을 위해 동행해달라고 말씀을 못 하신 것이다. 일생을 바쳐 자식들, 손주들의 보호자로 사시다 당신의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에 왜 미안한 감정이 앞선 것일까.

나에게는 올해 열 살, 여덟 살 된 아이들이 있지만, 남편이 육아에 꽤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보다 반드시 엄마가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 내 상황이 제일 나았다. 직장도 1월은 조금 여유 있게 휴가를 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입원 전 할머니와 보호자로 가는 내가 코로나 검사를 미리 받아야 했다. 허리와 다리가 안 좋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생활하시는데, 요즘 같이 검사 받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 바깥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찾아갔다. 검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찾아갔는데도 많은 차가 줄을 서 있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 히터를 튼 자동차 안에서 기다릴 수 있어서 좋았다.

병원에서 입원 절차를 밟는데 보호자에 관한 확인이 철저했다. 결과를 받은 후 48시간 유효한 음성확인서를 접수처에서 확인하고, 입원실 앞 간호사도 확인했다. 

우리가 있었던 입원 병동은 보호자가 없는 병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8명, 조무사 1명 당 환자 30명을 담당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다만, 의료진이 허락하는 경우의 한에 보호자의 상주를 허가했는데 이 경우 '보호자 상주 동의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를 통해 외부인의 출입을 최소화한다.
▲ 보호자 없는 병동 운영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를 통해 외부인의 출입을 최소화한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환자 1명당 1명의 보호자라고 지정된 사람에게는 '보호자출입증'이라고 적힌 팔찌를 발급했는데 팔찌가 훼손되면 재발급은 어렵고 중간에 외출한 경우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도 병원에 들어올 수 없었다.
   
보호자출입증이 훼손되거나 없으면 병원 출입이 불가능하다.
▲ 보호자출입증 보호자출입증이 훼손되거나 없으면 병원 출입이 불가능하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보호자 출입증이 없는 경우 출입이 불가합니다.
▲ 보호자 출입증 보호자 출입증이 없는 경우 출입이 불가합니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 병원 로비에는 팔찌를 다른 보호자에게 건네 면회를 하는 것도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입원 환자들을 코로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원하는 순간 환자인 할머니의 코로나 검사를 또 한 번 했다. 손 씻기 시간이라고 방송을 하기도 했으며, 개인 침대와 병실 입구에 손 소독제를 두고 쓰게 했다.

층마다 있는 휴게실은 폐쇄되었으나 휴게실에 있는 정수기는 쓸 수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을 때, 물통에서 입을 덴 부분을 정수기에 대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할머니의 수술이 잘 되어 좀 더 선명한 세상을 선물 받으시길 바란다. 또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방역과 의료로 애쓰시는 의료진께도 감사를 드린다.

태그:#일반환자, #병원의 방역, #입원,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