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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야식을 먹고 있는데 티비에서 갑자기 10초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어어' 하며 허둥지둥 소파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내 인생은 2022년을 맞이했다. 내 마음의 준비도 없이.
 
2022년에는 집에서 그냥 그러고 지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무시 마시라.
 2022년에는 집에서 그냥 그러고 지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무시 마시라.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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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아침 인터넷에 올라온 새로운 기사들과 블로그 글들을 읽고 있는데 역시나 연초라서 그런지 아니면 올해는 설날이 1월 1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설날 잔소리를 대비하는 글들을 적기 시작했다.

사실 독일에 살고 있는 나도, 30살이 넘은 나도, 바로 전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었다. 아빠와 한 통화가 화근이있다.

"새해니까 사람들하고 전화 통화하면서 인사 나누는데 딸은 독일에서 취업도 안 하고 뭐 하냐 묻더라."

가시가 촘촘히 박힌 아빠의 뼈있는 말을 나는 바로 캐치했다. 눈치가 없는 편인데도 가시가 겨울옷을 뚫고 들어와 찔렀다. 모른 척하려고 했더니 가시가 다시 움직이며 깊게 파고든다.

"그래서 딸내미 이제 곧 석사 할 거라고 얘기했다."

내가 외동딸만 아니었으면 난 당연하게 다른 자매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석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석사가 무슨 점심 식사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진지해 보이는 아빠는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아빠에게 '석사나 한번 해볼까'라고 넌지시 얘기를 꺼낸 기억이 있다. 학문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다. 정말 아무런 뜻도 없이, 무게감 하나 없이 먼지처럼 가볍게 그냥 흘려본 말이었다. 그리고 난 정작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다.

하지만 아빠는 그 말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우리 딸이 공부에 재미를 붙였구나. 어릴 땐 그렇게 공부 안 해서 엄마, 아빠 속을 썩이더니 이제 드디어 정신 차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구나. 뭐 그런 식으로, 대충 아빠의 바람을 섞어서 이해한 듯싶었다.

내가 석사생이 될 거라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아빠의 말에 난 가볍게 웃고 전화 통화를 빠르게 정리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을 금방 잊었다. 석사 얘기를 아빠에게 꺼냈던 그 순간처럼.

그리고 다시, 난 설날 잔소리를 걱정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보며 '왜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할까' 하고 문득 궁금해졌다. 

백수야?
 
아빠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아빠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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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도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국어로 의미를 번역해서 직업이 뭐냐는 말이지, 사실 말 그대로 번역하자면 '뭐 하고 사니'라는 뜻이다. 그럼 나는 그냥 대답한다. "응, 뭐 운동도 하고 필사도 하고 산책도 하고 독일어 공부도 좀 하고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집안일도 하고 그래!"라고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독일 사람들도 사람인지라 '저 인간은 일도 안 하고 백수구만?' 하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 이상의 질문은 받아본 적 없다. 혹여 '왜 취직 안 해?' 라던가 '그럼 일은 안 하는 거야? 백수야?' 등등... 뭐 하고 사냐고 물어봐서 진짜 뭘 하고 사는지 대답을 해 준 것뿐이고 그 이상은 개인적인 문제라서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절대 다르다. '어머머, 그럼 취직은 안 하는 거야? 집에만 있어? 애도 없는데? 아이고 너무 아깝다, 아직 젊은데, 뭐라도 해야지, 해외까지 나와서.'

끝이 없는 잔소리가 때아닌 비처럼 쏟아진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는 멍하니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화장실을 가는 척 도망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 그 정도의 용기는 없다. 그저 비가 빨리 멎길 바라는 수밖에.

회사에 다니며 승진을 하고 후배를 여럿 둔 친구들도 있다. 볼 때마다 감탄스럽고 내 친구가 맞나 낯설기까지 하다. 그래도 약속 장소에서 만나면 '꺄아악' 하면서 멀리서부터 불편한 신발로 뒤뚱거리며 뛰어와서는 '뭐부터 먹을까'라고 묻는 중학교 때 그 친구가 맞긴 맞다.

"넌 일하는 게 재밌어? 뭘 배우는 게 있어?" 하고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묻는다. "일하는 게 재밌는 사람 몇이나 있겠냐, 돈 벌려고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인간이니까"라고 친구들은 항상 대답한다.

한번은 한 친구가 말했다. "다음 생에는 산꼭대기에 있는 깨끗한 공기로 태어나서 둥둥 떠다니고 싶다." 그래서 난 대답했다. "태어나자마자 그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등산객 콧속으로 바로 들어가게 될 걸?" 하고 말이다. 친구는 소름이 듣는다며 팔을 쓸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말도 했다. 맑은 공기보다는 회사원의 삶도 나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때때로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발전되는 모습이 기분 좋다는 대답도 종종 듣는다.

나도, 하루치의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멋진 친구들을 보며 참 자랑스럽다. 열심히 사는구나 너희들. 어릴 때랑 다르게 책임감도 있고 다들 멋지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추운 내일, 아침 늦게까지 침대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삶에 다시 한번 최상의 만족도를 느낀다. 

일하며 성취감을 얻는 내 친구 같은 사람들은, 나를 평생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집에서 글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그걸로 성취감을 얻는다고?"라고 오히려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집순이는 매일 하는 홈트에서 하루치의 성취감을 얻는다. 그리고 난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책을 하면 하루가 보람차다. '내일도 운동을 하고 책을 읽어야지, 휴대전화는 30분만 봐야지'라는 소소한 목표도 세운다. 

보람, 긍정적인 기분, 성취감, 거기다 (인생의) 목표까지. 도대체 하루 삶에서 어떤 기분이 더 필요한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욕심이 없다. 그러니 2022년에는 집에서 그냥 그러고 지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무시 마시라.

그 사람들도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하루에 필요한 성취감을 얻고, 크고 작은 개인의 목표를 이뤄나가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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