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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두 달여에 걸쳐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말]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개 사과' '아들 사과' '배우자 사과' 등 다양한 형태의 '사과'가 나왔다. 하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지지율을 염두에 둔 사과라는 이유도 댄다. '사과'가 연이어 나온 정국을 보면서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하던 1960년대, 그의 진심 어린 사과는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훗날 그의 사과를 두고 세간은 이런 평가를 내놨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으나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독일을 일으킨 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정책

1970년 12월 7일, 당시 서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의 희생자 기념탑 앞에 꽃을 헌화하고는 갑자기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30초간 세계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빌리 브란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였기에 나치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빚을 지지도 않았다. 엄밀히 말해 그는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서독의 수상으로서 역사적 책임감을 안고 무릎을 꿇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 등 2차대전 때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한 장면이다. 동방정책의 주창자인 브란트는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일과 주변국 간 화해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 등 2차대전 때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한 장면이다. 동방정책의 주창자인 브란트는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일과 주변국 간 화해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연합뉴스=D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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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사과의 진정성은 단순히 무릎을 꿇었던 것을 넘어섰다. 동서냉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펼쳤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그 진정성이 증명됐다. 그리고 이 정책은 지금의 독일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어떻게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세계 평화를 논하며 국제사회의 규범(International Norm)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잊어야 하는 과거사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와 이에 기반한 정책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청산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빌리 브란트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대선을 약 두 달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역사적 책임감을 머리로 알고, 이를 국민들에게 가슴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미래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은 무작정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를 바로 잡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바로잡아야 하는 잘못된 역사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간첩조작'이다. 1970, 1980년대 독재정부는 수없이 많은 자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선출되지 않은, 즉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부는 국가기관의 공권력을 국민의 재산과 목숨을 보호하는 데 사용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 오히려 무고한 국민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1970, 1980년대 국민을 향해 저지른 국가기관의 고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고문피해자인 국민에게 사과도 없었다.

2021년 10월 기준,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간첩조작 피해자는 총 449명이다. 아직 재심을 진행 중이거나 재심 신청조차 하지 못한 사례를 제외한 수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449명'이라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2005년 함주명씨 재심 무죄를 시작으로 2021년 449명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449명을 고문했던 국가기관을 살펴보면 국정원이 214명으로 47.6%, 경찰청이 120명으로 26.7%, 국방부가 75명으로 16.7%를 차지한다.
 
<도표-1> 무고한 국민을 향해 불법 구금과 고문을 가한 국기기관 (출처: 인권의학연구소)
 <도표-1> 무고한 국민을 향해 불법 구금과 고문을 가한 국기기관 (출처: 인권의학연구소)
ⓒ 박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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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고문가해자의 편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먼저, 지난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지난 2018년 행정안전부가 1980년대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의 서훈을 취소하면서 시작됐다.

행정안전부는 고작 53명의 고문가해자 명단만을 보도자료로 발표하면서 가해자의 이름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된 고문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하는 촌극을 보였다.

이에 대해 (사)인권의학연구소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11월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3년여에 걸친 소송 과정에서 고문피해자 A씨는 '다시 한 번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다'는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둘째, 위 도표의 고문가해기관인 세 기관(국정원, 경찰청, 국방부)의 무례한 사과 태도다. 2021년 들어 세 기관은 조용히 고문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일을 벌였다. 

1982년 보안사에 의한 고문수사로 '조작간첩'이 돼 8년 6개월동안 감옥살이를 했던 고문피해자 B씨는 11월 24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아래 안지사) 직원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하루종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날 안지사 직원은 오전 이른 시각에 사전 연락 없이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과거 보안사의 잘못에 대해 현재 안지사가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지난날 억울한 감옥살이와 출소 후에도 이어진 보안관찰 생활로 평생 지우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B씨에게 안지사의 '기계적인 사과 처리'는 트라우마를 되살아나게 했다(관련 기사 : 날 고문했던 그들이 39년만에 우리집 초인종 눌렀다).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근 이 두 사건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빌리 브란트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그의 동방정책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2022년 3월 9일 당선될 대통령은 과거사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빌리 브란트와 같은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 1970, 1980년대 국가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 한국사회에서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삶을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 고문피해자들은 자신이 간첩이라는 뉴스가 전국으로 퍼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버림을 당했다.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은 이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 고문피해자 앞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버림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보인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란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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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정책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현행법상 고문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적 체계는 전무하다.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 또한 공소시효로 인해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대, 21대 국회에서 고문피해자 지원과 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이 법사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공동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전히 계류중이다.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은 고문피해자를 지원하고 고문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적 제도를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공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노인이 돼버린 간첩조작 고문피해자들. 나는 새 대통령과 새 정부가 고문가해자의 편에 서지 말고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그에 걸맞은 법적 제도화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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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정경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이슈를 분석하고 가능하면 쉽고 재밌게 전달하는 게 목표입니다. 저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기사를 근간으로 한 유투브 채널(POLITIPS)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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