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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 해 동안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힘쓴 모든 분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이번 글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건설안전특별법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을 적었습니다. - 기자 말

#1. 2021년 9월 28일, 국회의사당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실

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 진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국민의힘 K 위원은 자신의 질의시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는 이 법은 딱 한 조항만 제대로 되면 된다면서, "적정한 비용과 기간을 제공하여야 된다"는 조항이 중요하다고 했다(제8조).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국가계약법의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하고 최소한도 실비 플러스 적정 이윤으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비용을 가지고 하도급이나 하수급인이나 재하수급인한테 적정 비용을 안 줬을 때 처벌을 해야 되는 겁니다"라고 지적하였다.

또, 두 번째로 하청업체가 "직접 시공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기술도 없고 자재도 없고 장비도 없고 또 재하도급을 주는 거예요. 국토교통부 국장님, 이래놓고 하청사가 재하청을 주면 불법으로 단속하고 있지요? 건설산업법의 이 모순을 해결 안 하면 백약이 무효예요"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렇게 열변을 토하고 조금 있다가 회의장을 나갔다.

공청회를 준비하면서 국토교통위 위원들의 면면을 보았을 때, K위원이 가장 날카로운 질의를 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므로 이런저런 준비를 했었다. 사실 그가 한 말 중에서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적정한 기간이 주어져야 안전을 신경 쓰면서 공사할 수 있다. 또 적정 이윤이 보장되어야 하청도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시공능력도 늘어난다.

그러나 K위원의 말에 모두 동의하면서도(전적으로 동의하는 취지에서 국회속기록을 보고 그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요한 거면 진작 좀 하지...' K위원은 국토부 고위 관료까지 지낸 재선 국회의원이다. 진작에 그렇게 하면 될 일을, 그 조건이 선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2. 2021년 12월 어느날, 공사 현장
 
 바퀴가 달린 지브형 고소작업대에서 용접하는 노동자
  바퀴가 달린 지브형 고소작업대에서 용접하는 노동자
ⓒ 손익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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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이 수임한 산재사건의 조사를 위해서 한 공사 현장에 왔다. 제조업 현장은 많이 가봤지만, 공사 현장은 처음이었다. 여기저기서 용접 불꽃이 튀고, 크레인과 지게차가 오갔다. 협력업체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장조사가 끝나고 노조 간부에게 물었다. "산안법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곧 시행된다고 하던데 현장에서 바뀐 게 좀 있습니까?" 노조 간부가 답하기를 "회사에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은 예전이랑 똑같으니까 그걸 다 지키면서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역시 적정한 공사기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3. 2021년 O월, 서초동 어느 곳

친한 건설법 전문변호사를 만난 김에 물어보았다. "건설공사 기간을 늘리는 것은 왜 어려운가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 늘어나면, 인건비나 장비사용료가 더 든다. 그런데 그것만 문제가 아니다. 자기 돈을 때려 박아서 공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금융권에서 조달한다. 그러니까 이자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발주자의 선의에 기대서 적정 공사기간이 담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가며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 제8조는 "발주자는 설계자 등이 건설현장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설계‧시공‧감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정한 기간과 비용을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정한다. 이 법의 규정이 선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이것과 결부된 최저가 입찰제 폐지가 있어야 하고, 시간을 두고 불법 하도급에 관한 실질적인 단속까지 함께 가야한다. 말하자면 법 하나의 제정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갖춘 큰 계획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감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용균재단, #건설안전특별법,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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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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