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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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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비춘 화려한 무대 아래엔 '아픈 댄서'들이 있다. 격한 배틀에서 관절이 빠지거나 연습을 하다 발목이 꺾인 참가자들이다. 우승팀 홀리뱅이 상금을 촬영 중 다친 크루의 무릎 수술비에 쓴 일화는 유명하다. 팀 리더 허니제이도 과거 공기 질이 열악한 공간에서 장시간 춤추며 촬영하다 천식을 얻은 환자였다.

격렬히 춤추는 이들에게 수개월 동안 치열한 경쟁을 시키면 누군가 몸을 혹사하거나 다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해보험의 혜택을 받는 댄서는 없다. 프리랜서라 산재보험에 가입한 이들도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다칠 위험을 안고 일하지만 비용은 온전히 자신이 감당했다.

댄서는 대부분 프리랜서다. 일거리 대부분은 방송사와 연예기획사에서 나온다. 곡을 발매한 가수의 안무를 짜주고 백업 댄서로 무대를 서거나, 안무가 필요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러나 방송사·기획사는 인력관리 책임을 프리랜서인 선임 안무가에게 맡겨 버리고 댄서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다. 간단한 구두계약이 만연해 댄서 권리를 명시한 계약서도 찾기 힘들다.

"상해보험? 산재보험? 계약서? 최저시급?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7년차 20대 여성 댄서 A씨)

A씨는 7년 동안 춤을 췄지만 상해보험은 말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들어본 적 없는 단어라고 했다. 다치면 치료받을 권리, 최저생계를 보장받을 권리, 안정적으로 소득을 벌 권리 모두 생소한 개념이라고 했다.

댄서들은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방영된 스우파 메가 크루 미션(20명 이상 다인원 퍼포먼스)에 참가한 20대 여성 스트릿 댄서 3명을 만나 그들의 일상을 들었다. 

"누구도 '안전하게 춤추는 법' 가르쳐주지 않아"
 
스트릿 우먼 파이터 관련 유튜브 콘텐츠 갈무리.(위는 채널 '샾잉 #ing' 갈무리, 아래는 채널 'tvN D ENT' 갈무리 사진)
 스트릿 우먼 파이터 관련 유튜브 콘텐츠 갈무리.(위는 채널 "샾잉 #ing" 갈무리, 아래는 채널 "tvN D ENT" 갈무리 사진)
ⓒ 유튜브 채널 샾잉 #ing 및 tvN D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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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 싶어요."

10년 전 팝핀으로 춤을 시작한 B씨는 수년 전 몸을 크게 다치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한 동안 하이힐을 신고 추는 힐 댄스에 빠져들어 무리하게 연습하다 발목 인대가 심각하게 파열됐다. 이후 1년 넘게 재활 치료를 했다. 불과 20대 초반, 댄서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막 심기일전한 때였다.

그제야 댄서의 환경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B씨는 "누구라도 아프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단언했다. 10대 때부터 춤을 배웠지만 누구도 몸의 변형이나 부상 방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아가 정글처럼 생존이 쉽지 않은 구조에서 부상을 당해도 춤을 그만두기 어려웠다. "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선 '잊혀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누구나 갖고 있다"고 했다. 자잘한 부상은 참고 넘기는 게 다반사며 그러는 사이 척추 모양이 서서히 달라지는 것도 모른 채 춤만 추는 댄서들이 생긴다.

일상적인 밤샘과 소득 불안정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대부분 댄서들이 부업을 갖고 있어 안무를 짜거나 연습을 하려면 밤밖엔 시간이 없었다. 이런 댄서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하기 때문에 심야·새벽이 주요한 업무 시간이었다.

"낮엔 대부분 알바나 댄스 강사를 한다. 학생이면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한다. 나도 심할 경우 일주일 넘게 2~3시간밖에 못 잘 때도 있었다. 밤낮이 아예 바뀐 댄서들도 있다. 잠을 못 자면 근육이 계속 굳어지는데 연습은 격렬하게 한다. 그렇게 긴장된 상태로 또 아침이 된다.

수입이 부족한 기간엔 택시도 버거워 매일 첫차를 기다렸다가 귀가한다. 몽롱한 상태로 일상생활을 하고 또 격렬하게 연습을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패턴이 좋아야 체력도, 집중력도 좋아지고, 자기 몸도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B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효율성을 위해 새벽에 촬영을 시작해 그 다음날 새벽에 마칠 때가 적지 않다. 위험한 무대에 서더라도 댄서 스스로 자기 안전을 챙겨야 한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댄서 3명 모두 "제작사가 먼저 상해보험 같은 걸 제시한다거나, 안전을 위해 교육이나 보호 장비를 안내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가령 무대 바닥이 물로 뒤덮였거나 뾰족한 이물질들이 쌓여 있을 때다. 특히 LED 조명이 깔린 무대는 미끄럽다. 미끄러우면 넘어지기 쉽고, 바닥에 무릎이나 손을 짚어야 할 안무가 많으면 그 뾰족한 이물질 때문에 다치기도 한다. 근데 여기서 힐을 신고 백업 댄스를 춰야 할 때가 있다. 눈 가리개나 망사를 얼굴에 쓰고 춤출 때도 있다. 악조건일 땐 매우 긴장된다. 이런 환경에서 다치면 댄서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지 않나. 그럼 어떤 책임을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B씨)

아파도 충분히 쉬지 못한다. 댄서 C씨는 "잊힐까봐, 고립될까봐 휴식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을 말했다.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방법은 인맥과 입소문인데, 이건 거듭된 자기 증명으로 업계 종사자들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이다. C씨는 SNS에 부단히 자기 자료를 게시하고, 각종 안무 시연, 공연, 강의 등으로 쉼없이 이력을 드러내야 소득 활동의 선순환을 만드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시간 연습, 이틀 리허설 해도 수입 쥐꼬리
 
MBC '나혼자 산다' 방영분 갈무리
 MBC "나혼자 산다" 방영분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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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씨는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해지는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댄스로 돈을 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며 "특히 일을 막 시작한 이들은 댄스를 배우면서 일을 병행해 오히려 적자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소득 활동은 크게 두 축이다. 강의와 무대·안무다. 고정 소득은 보통 강의다. 강의료는 1시간에 한 명당 보통 3만5000원 정도다. 일부 학원은 유명하지 않은 강사에겐 학생 수와 상관없이 '1회'에 5만원 정도 책정한다. 한 주에 1회 수업한다면 한 달 20만원이 고정수입이다. 방송, 안무, 광고 등의 일은 예측 불가능하다. 방송 무대는 한 번 오르면 8~10만원 정도 받았다. 안무 시안 영상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10만원 정도를 받곤 했다." (C씨)

"연습 시간도 따로 있고 리허설 대기 시간도 길었지만 공연 페이만 받았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경력 한 줄'이 되기 때문이다. 초년생 경우 페이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경력 쌓는 게 더 중요해서다." (A씨)

안무 시안, 무대 공연 모두 연습시간을 포함해서 계산하면 법정 최저시급에 미달한다. 안무 시안은 연예기획사가 맡긴 신곡 안무를 짜서 영상으로 보내주는 작업이다. 짧으면 5~6시간, 길면 20시간 가량도 소요된다. 개인 연습부터 댄서들끼리 합을 맞추고, 가수와 함께 안무를 맞추는 시간이 포함된다.

과거 KBS <뮤직뱅크>는 오전 9시 드라이리허설, 낮 12시 카메라리허설 등이 잡혀 있어 4분 가량 무대를 위해 하루 종일 방송국에 진을 쳐야 할 때도 있었다. 연말행사 같은 큰 무대는 리허설이 이틀 동안 진행되곤 했다. B·C씨는 "'코로나가 우리를 도왔다'는 농담도 있다"며 "대기 시간을 최소화한 타임테이블이 생기니 시간도 절약하고 일정도 예측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분장·헤어는 소득을 잡아먹는 또 다른 요인이다. C씨는 "좋은 기획사는 지원해주지만 보통 댄서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기획사가 컬러와 스타일을 주문하면 그에 맞춰서 해가고 때때로 의상을 직접 구해야 할 때도 있다"며 "너무 급할 땐 샵에서 10만 원을 주고 머리를 하는데, 그럼 적자다. 댄서들을 잘 보면 메이크업 도구와 의상만 한보따리씩 챙겨 다닌다"고 말했다.

"다른 팀 댄서에게 전해 들은 얘기다. 스우파 메가 크루 미션이 20~35명 댄서를 부르는 무대인데도 샘(출연 크루)들이 200만 원밖에 못받았다는 거다. 연습은 한 달 간 했다. 샘들이 자기들이 받는 것도 모자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댄서들을 챙겨서 5만원씩 받았다고 했다. 중요한 무대라 샵에서 헤어랑 메이크업을 받은 댄서가 있다면, 돈을 내고 무대에 나간 거다." (C씨)

"내 페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기획사 맘대로"
 
안무를 맞추는 댄서들. (자료사진으로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안무를 맞추는 댄서들. (자료사진으로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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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댄서들은 자유로운 형태의 활동에 만족하지만, 기본 체계가 없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계약서가 대표적인 예다. 대부분 일이 구두계약으로만 이뤄진다. C씨는 "중소 기획사의 백업 댄서를 뛴 적이 있는데 이후 회사가 폐업해 40만원 정도를 못 받았다"며 "구두 계약만 했으니 증빙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회상했다.

대금은 언제 입금될지 모른다. 구두로 리허설 날짜, 행사 당일 일정, 최종 금액 정도만 듣고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C씨는 "길게는 3달까지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며 "누구나 알만한 한 유명 아이돌의 기획사마저 3~4개월씩 늦게 비용을 주는 걸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가수와의 연습이 길어져 새벽 1~2시에 일정이 마쳐도 택시비를 청구하기 어려운 건 덤이다.

B씨는 또 다른 고충으로 "방송일은 보통 가수 스케줄에 맞춰서 갑자기 들어올 때가 많아 당장 2주 뒤의 내 삶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는 안무가 샘이 '이번 주말에 새벽 연습 가능하니?'하면 일을 나가는 식이고 기획사는 관련 전체 일정을 미리, 체계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며 "장기적인 삶의 계획을 짜기가 어렵다. 그래서 댄서들은 짬이 난다 싶으면 확 쉬고, 일이 계속 들어오면 쉬지 않는다. 사는 패턴이 이렇게 바뀐다"고 말했다.

"그래서 반대로 고정된 페이에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생활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그렇게 춤을 춘다면 스트레스가 덜할까요?" (B씨)

"방송사·기획사가 직접 계약하게 끌고 나와야"

안전망 공백을 해결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주우 방송연기자노조 사무국장은 "일단 종사자들이 계약서부터 써야 한다"면서 "방송계 악습인 '턴키계약'이 가장 문제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과거 배우, 무술연기자부터 지금은 각종 기술 스태프들이 겪는 문제로 감독급 프리랜서에게 대금을 한꺼번에 주면서 관련 업무도 모두 일임하는 방식"이라며 "방송사, 제작사가 지휘감독하는 일인데 인력에 대한 책임은 프리랜서에게 전가해 빠져 나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주 사무국장은 "실제 책임이 있는 기획사, 방송사가 개별 계약해야 한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노동자성 판단을 받았던 방송스태프 현장도 개별계약 권고를 받았다"며 "연기자들은 노조와 방송사 측의 단체협약으로 상해보험을 제공받는다. CJ ENM도 수년 전 드라마 촬영 현장에 재해 사고가 서너 건 연달아 터지자 노조와 협상으로 모든 출연 연기자에 상해보험을 가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는 "예술인 복지 재단의 '예술인 활동 증명'을 통해 예술인 등록을 하면 고용보험, 산재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직접 가입해야 하고 보험비도 온전히 다 부담해 가입률이 낮은 현행 예술인 산재 보험의 개선을 두고 정부 부처와 논의 중"이라며 "기본적으로는 계약서를 쓰는 관행부터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스우파, #스트릿 댄서, #댄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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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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