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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과 코딩으로부터 삶의 팁을 얻습니다. 머리를 쥐어뜯던 개발자의 뜯긴 머리카락 정도의 깨달음과 코딩에 대한 종이 한 장 만큼의 지식을 담았습니다.[기자말]
막말이 대세다. 포털사이트에 '막말'로 검색하면 막말로 인한 사연들이 화면을 빼곡히 장식한다. 한 방송인이 일면식도 없는 유명인의 SNS에 막말을 남겼다는 뉴스, 부모의 막말에 견디지 못해 독립하려 한다는 젊은이의 다짐, 아이의 막말을 고치고 싶다는 부모의 고민까지. 숱한 막말의 공격과 상처 그리고 걱정이 넘쳐났다.

주거니 받거니, 받거니 주거니. 이러면 보통은 정이란 게 쌓이기 마련인데 이 막말만은 정이 아닌 화를 쌓게 만든다. 잠깐만 돌이켜봐도 그간 남발했던 실수와 받았던 상처가 즐비한 것은 나 역시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막말이냐 아니냐는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된다. 그러다 보니 진의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담은 덕담이라도 상대의 귀를 통과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실리는 순간 막말로 승천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치 않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난다.

쉽지 않겠지만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말을 아낌으로써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아무래도 내게로 날아드는 막말은 피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인간 사회에 머물면서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한 번 열불을 내며 항변하고 나면 나아질까? 경험상(?) 그냥 민감한 사람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막말러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매 순간 탄생할 수 있음으로 그때마다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말로 상처받았던 사람도 막말러가 되기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태생적 한계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울어 버릴까? 잘은 몰라도 이건 아니지 싶다. 아픈 것도 나고 슬픈 것도 나이면 좀 많이 억울하다.

아무래도 감정에 휘둘린 이런 초딩적 대처보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대처법이 필요할 듯하다. 여러 해답이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코딩의 세계에서 매일같이 접하고 있는 실로 단순하고 명쾌한 컴퓨터의 대처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컴파일과 컴파일러  
약속된 말을 0과 1의 기계어로 바꿔주지요.
▲ 컴파일러와 컴파일 약속된 말을 0과 1의 기계어로 바꿔주지요.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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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정말로,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서 코딩은 컴퓨터에게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행위라고 했다.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선 전달 매체가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이 코딩 언어다. 다른 세계에서 서로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둘 사이를 잇는 일종의 공용어쯤 되겠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Python, C, C++, JAVA 등이 그것이다.

사람이 이 공용어를 작성하면 컴퓨터는 '컴파일러'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한다. 일종의 번역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컴파일러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문자, 숫자, 기호 등을 0과 1의 조합인 기계어로 바꿔주며, 이 과정을 '컴파일'이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 컴파일러는 감정이 없다. 전달받은 말에 문제가 있으면 무미건조하게 오류(Error)를 짚어주고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사소한 것이라도 담담히 경고(Warning)한다. 그리고 이게 정말 무시무시한 건데... 컴퓨터는 자신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당연하게 무시'한다.

언어는 약속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은 컴퓨터에 가 닿을 수 없다. 제법 까다롭긴 하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알아듣고 프로그램을 구동시키다간 실행오류(Run Time Error)라는 고치기 쉽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컴파일 과정에서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를 검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무시'해버리는 것이 컴파일의 목적이며 컴파일러의 역할이기도 하다. 무시당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고 가끔 분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업자득이다. 약속을 어기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 사람이 답답해지는, 자업자득이 잘 지켜지는 곳이 바로 코딩의 세계인 탓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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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코딩적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 '컴파일러'스러운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상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의 언변이 감정을 건드리거나 오해를 쌓게 만든다면, 이를 내비치고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내적 편안함을 위해선 컴퓨터 같은 냉철한 반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능청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어필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더라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은 한두 번이면 족하다. 사람의 아량은 무한히 넓은 우주가 아니다. 크기가 제각각인 저수지다. 먹구름을 드리우고 자꾸 부정적인 감정의 비를 채우기만 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둑이 터지거나 감정의 홍수를 일으키게 된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집 밖에서 꾹꾹 누르던 울화가 집 안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경험. 별것 아닌 일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할 때면 묵은 걱정이나 억눌렀던 화가 쌓여 있을 때가 많았다. 코딩으로 치면 실행오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아지기 전에 방지하고 조금씩 흘려보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컴퓨터에게는 "얌마!"가 통하지 않는다. 분명 문제를 알려주거나 무반응으로 응수할 테다. 그래서 상대가 사회인으로 성숙하지 못한 입방아를 시전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회적 약속을 무개념 위에 각인 시켜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컴퓨터처럼 모든 상황에서 상대의 잘못을 담담하게 지적할 순 없다. 그게 쉽다면 그렇게 마음 아플 일도 없을 테다. 그런 이유로 그나마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코딩적 대처가 필요해진다. 바로 '당연한 무시'다. 무시한다는 행위가 다소 악의적인 행위로 여겨지겠지만 막말을 하는 미성숙한 상대에겐 아주 품위 있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결국 참으라는 말이냐"라고 한다면 인내와 무시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서 어울려 산다는 건 함께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모든 게임엔 규칙이 있다. 그래서 개념 없는 저급한 발언은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슬쩍 금을 밟는 반칙행위와 다름없다. 게임에선 금을 밟으면 죽.. 아니 무효 처리된다. 그래서 그 말은 무효다. 그러니 반응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무효 처리된 자는 실격이다. 이번 게임만이면 다행이겠지만, 자꾸 그러면 아마 탈락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탈락 예정자와 되도록 옥신각신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 말고도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할 사람은 차고 넘치니까.
 
선을 넘어 아쉽게도 그 말은 무효네요. 그리고 또 그러면 실격입니다~ 품격 있는 사회인으로서...
 선을 넘어 아쉽게도 그 말은 무효네요. 그리고 또 그러면 실격입니다~ 품격 있는 사회인으로서...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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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게임에서 반칙은 용인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이 실수든 의도되었든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 부디 이 존중이라는 규칙이 센스있는 지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잘 지켜져서, 막말이 '막하는 말'이 아닌 품격 있고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말'로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언젠가 웃으며 "지금 선 넘고 계신데요~" 하면, "앗, 제가 미처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허허"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비록 막말의 종말은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할 수 있는, 실수는 있지만 뻔뻔함은 없는 그런 예의 있는 사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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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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