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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생활기록부(아래 생기부) 시즌이 찾아왔다. 이맘때 생기부를 써야 하는 전국의 모든 교사들 마음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힘들고 어렵고 고민스럽다. 담임이 써야 할 것은 자율활동, 진로활동, 동아리 활동 외에도 교과 세특(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개인 세특(개인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등 생기부에 빈칸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적어 내려가야 한다. 그것도 요구하는 양의 최대치에 근접하게 써야 능력 있는 담임으로 인정 받는다.

특히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행발)은 학생에 대해 모든 것을 종합한 의견이라 더욱 중요하다. 한 학급 32명에 대한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술술 나오면 좋겠지만,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학기 중 학생 파악을 위해 수시로 상담을 진행하지만, 그럼에도 때론 쥐어짜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다.

피할 수 없는 일, 생기부 작성

고민도 있다. 자칫 솔직하게 쓰다가는 민원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는다. 최대한 순화시켜서 써야 한다. 이른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이 된다. 생기부 작성 지침에도 부정적인 면은 가능한 적지 말고 적더라도 최소한으로 하고 다른 장점들과 함께 적도록 권고한다. 긍정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보이도록 적어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성격에 따른 순화된 표현을 미리 정리해 보고 적합한 표현을 찾는 노력을 한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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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만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다. 그러나 또래 집단으로 묶여 있을 때 아이들은 행동과 발언은 놀랍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친구를 거침없이 비난하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거친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너무도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찰진 욕설은 화살처럼 날아와 귀에 꽂히고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좋은 면만 보고 좋은 말만 적어야 한다는 것이 교사들의 딜레마다. 나쁜 말에는 귀를 닫거나 빨리 잊어야 마음이 편하지만, 학기말이 되어 행발을 열고 아이를 떠올릴 때면 학급 친구를 향한 욕설과 비난의 장면이 여지없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럼에도 자판을 두드리는 손은 '마음을 연 친구들과는 깊은 교우관계를 유지하며, 표현은 투박하지만 마음은 순수한…' 등으로 내가 보고 들은 장면을 애써 지운다.

수능 결과가 나온 며칠 뒤, 생기부 때문에 고민하는 내게 딸은 자신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는 최근 일을 시작하며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전문가로부터 제대로 진단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찾은 병원의 의사는 꼼꼼한 진단 끝에 ADHD 판정을 내렸다고 했다.

이 의사는 ADHD 판정을 간단하게 내릴 수 없다며 많은 상담과 검증 과정을 진행했다고 했다. 단순히 집중이 어렵다는 말로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했단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도 초‧중‧고교의 생기부를 모두 떼 오라고 주문했고, 생기부의 어느 한 부분에라도 현재의 본인이 느끼는 증상에 대한 언급이나 징후가 적혀 있으면 현재의 상태를 ADHD로 결론을 내리겠다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기부 한 곳에서 성격이 산만하고 주의 집중을 못한다는 내용이 한 줄 적혀 있었고, 그 한 줄을 확인한 의사는 ADHD 진단을 결정지었다고 했다. 현재의 상태와 본인에게 나타나는 행동에 합당한 이유를 찾고 싶었던 친구는 진단을 통해 자신에게 나타났던 불편한 증상과 결과를 납득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단다.

미국에서도 성인의 4%가량이 ADHD를 앓고 있다고 집계된 바 있다. 최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성인의 ADHD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출처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 100명 중 4명은 ADHD라는 뜻이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진단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여아들에게서는 '공격성이나 과잉행동보다는 부주의 증상이 많고, 불안과 우울 등 정서 문제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 진단이 어렵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하며 딸은 엄마가 고민하는 생기부 기록은 그러한 이유로라도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다소 섭섭하게 느낄 수 있더라도 본인의 상태를 정확히 알게 하는 것이 생기부의 원래 목적이 아니냐며.

나의 학창 시절에는 ADHD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고 용어도 낯설었다. 그러나 교단에 서며 수많은 ADHD 학생들을 마주쳤다. 그 아이들은 수업 중 늘어져 있거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위험한 행동도 했다. 학급에 서넛은 있었던 그런 아이들에게도 감정 조절이 어렵다거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등의 내용을 생기부에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적는 생기부는 대학 수시 지원을 위한 기초공사쯤에 해당한다. 이르면 중학교부터 생활기록부를 관리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은 생기부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생기부에 빠진 내용을 지난 활동을 근거로 채워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물론 부정적 내용에 대해서는 삭제를 요구하기도 하고).

그러나 대다수 아이들은 어수선하고 혼란한 가운데 고등학교 1년을 보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생기부를 살펴볼 만한 때가 되면 이미 2학년의 생기부는 완료된 상태고 수시를 코앞에 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도 교사의 기록은 중요하고 신중해야 한다.

꿈을 향해 일목요연하게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부분의 진학 컨설팅에서는 강조한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 곁에서 발전과정을 최대한 꼼꼼하게 살피고 1년의 기록을 되도록 잘 정리하고 싶은 것이 생기부를 마주한 교사들의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는 생기부를 입학사정관을 설득하는 목적으로 작성하는 글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기록은 간단하지 않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일

딸 친구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최대한 표현을 순화하고 발전 가능성을 고민해서 희망적으로 적는 것이 최선일까, 성인이 되어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경우를 생각해 보이는 그대로를 적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기록은 과연 제대로 된 기록일까 의심한다.

나름 오래 이 일을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학기말의 이 일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15년 교사의 짬밥은 아이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기여했겠지만, 섣부른 단정은 마지막까지 금물이다. 또 장인 정신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때문에 매 해 이 세상에 오로지 한 사람뿐인 아이를 위한 글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장인 정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때론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바라본다. 유능한 교사는 생기부를 그럴듯하게 잘 포장하는 교사가 아니고 현재를 냉정하게 기록하는 교사도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이나 짧은 대화를 통해서 좋은 인성을 발견하고 부정적 심리를 포착하며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현재를 안정적으로 무사히 살아낼 수 있도록 마음으로 공감하며 함께 헤쳐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며 교사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
 
교사는 성직자일까, 전문직일까, 노동자일까?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셋 모두이기도 하고, 모두 아니기도 하다. 교사에게 아무 대가 없이 무한한 헌신을 요구할 때 교직은 '성스러운 일'이 되고, 어떤 보상을 바라서도 안 되는 일이 된다. 교사를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는 무능하고 나태한 집단으로 몰아세워 비난할 때는 '전문직' 관점이 나선다. 그러나 막상 정부가 교사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보면 교사는 다만 '노동자'일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 교사란, 성직자 같은 헌신과 전문직 같은 자기 계발을 요구받으면서 일반 노동자의 보상을 받는 존재라 할 수 있다. - 권재원, <직업으로서의 교사> 서문 중

권재원은 "우리 교육에 부족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성찰"이라고 말한다. 나는 성직자로서의 교사도 아니고 전문직이라고 하기에 빈약하다. 그저 노동자에 가까울 뿐인 교사지만,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처음 교직에 나섰을 때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겠다고 생각을 일단 정리한다. 생기부에 대한 고민과 의심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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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도 이전처럼 힘 있게 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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