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K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 KBS

 
지상파 방송 3사의 연말 시상식은 한때 국내 대중문화의 동향과 성과를 결산하는 성대한 축제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케이블과 종편, 유튜브, OTT 등 다원화된 미디어 채널의 영향으로 지상파의 우위는 이미 이미 무너진 오래다. 여기에 몇 년째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환경의 악화와, 인재들의 연이은 외부 유출이라는 악재 속에 하락한 지상파의 위상을 반영하듯, 연말 시상식도 더 이상 예전 같은 화려한 축제 분위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3사의 예능/방송 관련 시상식은 모두 각 방송사들을 대표하는 '장수 예능'들이 석권했다. 가장 먼저 열린 'SBS 연예대상'에서 <미운 우리 새끼> 출연자들이 단체로 수상했고, 'KBS 연예대상'에는 < 1박2일 >과 <갓파더>에 출연했던 문세윤이 첫 수상을, MBC는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유재석에게 2년 연속 대상을 수여했다.
 
MBC는 <놀면 뭐하니>가 환불원정대, MSG워너비 등 복고와 음악 코드를 접목한 기획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부캐 유니버스-패밀리십 등의 예능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꾸준한 화제를 모았다. <놀면 뭐하니>의 중심으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던 국민 MC 유재석은 올해는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이 이미 수상이 예상된 상태였다.
 
KBS의 문세윤 대상 수상은 3사 예능 시상식 중 가장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KBS는 올해 < 1박2일 >과 <슈퍼맨이 돌아왔다> <개는 훌륭하다> <옥탑방의 문제아들>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지만 모두 개인보다는 팀워크 위주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고 SBS처럼 < 1박2일 > 팀에 공동 수상을 주자니 불미스럽게 하차한 출연자 김선호의 문제도 걸려있다는 게 애매했다.
 
나쁘게 보면 확실하게 줄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세윤의 수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지난 2020년 김숙(KBS)이나 김종국(SBS)의 사례처럼 KBS는 자사의 간판 프로그램에 꾸준하고 묵묵하게 공헌한 예능인들의 가치를 평가한 수상이라고 할수 있다.

SBS 연예대상은 지상파의 올해 모든 연말 시상식을 통틀어 가장 말이 많았다. SBS는 <런닝맨>의 지석진과 <미우새>의 이상민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뜬금없이 <미우새> 출연진 전원에게 '공동 대상'이라는 선택을 내렸다. 방송사 대상이라 권위를 노골적인 '나눠먹기'로 전락시킨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상민의 "트로피는 다같이 주는거냐?"는 씁쓸한 질문과 신동엽의 "(대상은) 그냥 한 새끼(미운우리새끼)만 주지"라는 뼈 있는 촌철살인이 대상 수상발표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했다.
 
더 큰 참사는 시상식 직후 발생한 <골때리는 그녀들>의 조작 논란이었다. 여자축구를 소재로 한 <골때녀>는 올해 새롭게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화제와 호평을 불러일으켰고, 최근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인기몰이 중이었다. 그러나 최근 방송에서 경기 내용을 조작한 것이 탄로나면서 프로그램의 신뢰도와 진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SBS은 공식사과와 함께 조작에 관여한 <골때녀> 제작진을 교체하고 징계를 예고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불과 며칠 전 시상식에서 <골때녀>에게 최다인 8관왕을 몰아줬던 연예대상은 이래저래 민망해졌다.

방송3사의 예능 시상식을 더욱 초라하게 했던 것은, 프로그램이나 수상자들이 참신한 새 얼굴이 부족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현실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야외나 해외 촬영, 많은 출연자들이 함께 대면하며 등장하는 버라이어티 장르가 크게 위축되면서 새로운 소재와 인재 발굴에 어려움이 커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종편 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예능 장르의 성공은 이런 핑계마저 무색하게 했다. 2021년 최고의 화제 예능으로 꼽히는 Mnet <스트릿 우먼파이터>를 비롯하여 TV조선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시리즈, <내일은 국민가수>, JTBC <싱어게인>, <풍류대장> 등은 오디션 서바이벌 장르의 인기를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와 MBN <돌싱글즈> 등 연애 데이팅 프로그램들도 뜨거운 각광을 받았고, 채널A <강철부대>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 tvN은 <유 퀴즈 온 더 블럭> <슬기로운 산촌생활> <윤스테이> <대탈출> 시리즈 등을 선보였고, 채널A 낚시예능 <도시어부>가 어느덧 시즌3에 이르며, '코로나 19 비대면 시대의 버라이어티쇼와 관찰예능의 방향성'을 탐색했다.
 
 S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S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 SBS

 
이처럼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2021년 폭발적인 화제와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들이 대부분 지상파 밖에서 등장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매체들이 대자본을 등에 업고 오리지널 시리즈를 론칭하면서 시장 구도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 지상파 출신의 걸출한 방송인력들이 외부 유출도 가속화되는 가운데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 PD 김태호 역시 MBC를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지상파 방송으로서는 2022년에는 더욱 험난한 시청률-아이템 경쟁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한편 2021년 지상파 3사의 연기대상은 남궁민(MBC, 검은 태양) 김소연(SBS, 펜트하우스) 지현우(KBS, 신사와 아가씨)가 각각 차지하며 젊은 배우들이 강세를 보였다. MBC와 SBS는 받을만한 사람들이 받았다는 평가다.
 
남궁민은 지난해 <스토브리그>로 SBS 연기대상을 거머쥔데 이어 2년 연속 지상파 방송사 대상을 수상하는 진기록도 함께 세웠다. 한국형 첩보액션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한 <검은 태양>에서 남궁민은 기억을 잃은 채 동료들을 잃은 과거 사건을 추적하는 국정원 최고 현장요원 한지혁으로 분했다. 배역 몰입을 위하여 체중을 14kg나 늘리는가 하면 고난도 액션과 복잡한 감정연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열연으로 찬사를 자아냈다.
 
김소연은 올해 모든 연말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 중 유일한 홍일점으로 우먼파워를 증명했다. 올해 드라마 부문 최고 시청률(일일-주말극 제외)을 기록한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김소연은 욕망의 화신 천서진 역을 맡아 희대의 악녀 연기를 선보였다. 여러 명의 배우들이 공동 주연이었던 <펜트하우스>에서 순수한 악역으로 연기대상까지 수상한 것은 김소연이 역대 최초이기도 했다. 남궁민과 함께 오랜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서브주연이나 조연급 이미지가 강했고 상복도 없었던 김소연이 모두 꾸준한 노력과 성장 끝에 40대에 대기만성의 신화를 이뤄낸 것은,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귀감이 될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현우의 KBS 연기대상 수상은 좋게 보면 파격이었고 나쁘게 보면 무리수였다. 배우 본인조차 이름이 호명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을 정도였다. <신사와 아가씨>는 지난 12월 26일 방송으로 자체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하며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와 기억상실같은 진부한 설정으로 완성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못하고 있다. 지현우 역시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연기력이나 캐릭터의 매력은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KBS에는 <연모> <오케이 광자매> 등 연기력과 시청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과 배우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럼에도 지현우의 대상 수상은 현재 방송 중인 인기작에 대한 프리미엄이자, 연기와 작품적 완성도보다는 그저 성적(시청률)만 기준으로 삼았음을 드러낸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상대에 선 지현우도 "'신사와 아가씨' 대표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수상의 기쁨보다 겸손하게 몸을 낮췄다.
 
2021년 지상파 드라마의 승자는 SBS였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 리서치가 조사한 수도권 가구 기준으로 <펜트하우스> 시즌 1, 2, 3가 최고시청률 톱3을 독식한 것을 비롯하여 <원더우먼> <모범택시> <홍천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까지 톱 20 중에 가장 많은 7개의 작품이 이름을 올렸다. 전체 드라마 수도권 가구 평균 시청률도 SBS가 11.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철인왕후> <슬기로운 의사생활2>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지리산> <마인> 등을 배출한 tvN이 6.1%로 그 뒤를 이었다.
 
일일-주말-단막극을 제외하면 MBC는 <검은 태양>과 <옷소매 붉은 끝동>, KBS는 <연모> <암행어사-조선비밀수수단> <달이 뜨는 강> 등이 2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하는데 그쳤다. 150억 대작을 들인 첩보액션인 <검은 태양>을 제외하면 모두 사극이었다는게 눈에 띈다.
 
2021년 국내 드라마 시장의 주도권은 지상파가 아니라 OTT와 케이블로 넘어가는 추세다.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기록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을 비롯하여 <지옥> < D.P > <마이 네임> 등 한국적인 정서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덧입힌 장르물들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전형적인 멜로나 청춘물들은 더이상 주목을 받지못한 반면, 암울한 시대를 응징하며 대리만족의 쾌감을 제시하는 '다크 히어로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시대상과 여성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퓨전사극'들이 높은 각광을 받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2022년에는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진부한 소재, 흥행 공식에 의존하며 트렌드에 뒤처진 지상파 드라마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연말시상식 지현우 남궁민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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