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2021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 SBS

 
드라마에서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빌런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만인의 축하를 받는 해피엔딩의 히로인으로 거듭났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광기어린 악역 천서진 역할을 열연했던 김소연이 '2021 SBS 연기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31일 서울 상암 프리즘 센터에서 MC 신동엽과 김유정의 사회로 '2021 SBS 연기대상'이 진행됐다. 유난히 화제작이 많았던 올해 SBS 드라마에서 김소연은 이제훈(모범택시), 송혜교(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이하늬(원더우먼)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대상 후보에 올랐으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영광을 거머쥐었다.
 
김소연은 시상대에 오르면서 벌써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소연은 "28년 전에 보조출연자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 작품이 SBS 드라마였는데 오늘 이렇게 엄청나게 큰 상을 주셔서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제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건지 너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을 드러냈다.
 
김소연은 <펜트하우스> 김순옥 작가와 동료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가족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영광을 돌렸다. 특히 "이 작품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옆에서 긍정적인 멘토가 되어준 이상우 씨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남편을 향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이어 김소연은 "앞으로도 한 신 한 신 소중히 여기는, 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MC 신동엽은 무대를 내려가려던 김소연을 갑자기 다급하게 불러세웠다. 신동엽은 그녀의 쇄골에 마치 미리 설정해놓은 듯 두 개의 꽃가루가 완벽한 대칭으로 달려있는 묘한 장면이 나온 것을 두고 "김소연은 하늘이 내려준 대상 수상자가 틀림없다"는 농담으로 폭소를 자아내며 김소연의 수상을 익살스럽게 축하했다.

신동엽은 "혹시 깜빡해서 못한 이야기가 있으시면 말씀하셔도 좋다"며 김소연이 수상의 여운을 좀더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결 긴장이 풀린 김소연은 "28년 동안 활동하면서 정말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항상 큰 힘이 되어준 팬여러분 감사하다. 이런 저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팬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SBS는 올해 국내 드라마 시장의 최대 승자로 꼽힌다.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가 분석한 2021년 주요 채널 드라마의 수도권 가구 평균 시청률 결과에 따르면, SBS가 11.6%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록했던 10.6%를 뛰어넘는 수치이자 2위인 tvN이 6.1%를 두 배 가까이 앞서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광고 관계자들의 핵심 지표이자 화제성과 채널 경쟁력을 담보하는 2049 평균 시청률도 4.9%로 역시 가장 높았다. <펜트하우스> <모범택시> <원더우먼> 등 화제작을 앞세운 SBS 드라마는 평균 가구 시청률 TOP 10에 5개, TOP 20에 7개의 드라마를 순위에 올릴 만큼 강세를 보였다.
 
특히 2020년부터 방송된 <펜트하우스>는 세 시즌 순으로 나란히 2021년 시청률 톱 1, 2, 3위를 모두 석권할 만큼 선풍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펜트하우스>는 상위 1%만 입주가 가능한 헤라팰리스와 명문 예술고등학교 청아예고를 배경으로 '가진 자'들의 그릇된 욕망과 허영을 그려낸 서스펜스 복수극을 표방하며 매 회 반전과 충격을 거듭하는 파격적인 전개로 화제가 됐다.
 
비록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개연성 없는 전개와 방송사고 등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청률도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영 때까지 동시간대 1위를 놓치지 않았고, 특히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큰 호평을 받았다. 중국과 일본 등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강렬한 캐릭터들이 넘쳐났던 <펜트하우스>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캐릭터라면 역시 김소연이 연기한 천서진이 첫 손으로 꼽힌다. 천서진은 가진 자들의 그릇된 욕망과 허영, 그리고 민낯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예술제 트로피, 명문대 합격, 재단 이사장, 연인과 딸에 대한 집착 등 시즌을 거듭할수록 커져가는 욕망 속에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천서진의 광기와 삐뚤어진 정당성은, 김소연이라는 배우를 통하여 생생한 생명력을 얻었다.
 
극 중 수많은 악행 중에서도 천서진이 아버지를 죽이고 광기에 물들어 피아노로 마제파'(Mazeppa)를 연주하는 모습은 단연 역대 악역 연기에서도 손에 꼽을 명장면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피아노도 칠 줄 모르던 김소연이 천서진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우하여 악보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연기에 몰입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악행을 저지를 때는 끝없이 잔혹하고 집요해지는 천서진이지만, 시즌 2의 감방 노래 신이나 시즌3의 샹들리에 장면, 심수련과의 대치 장면처럼 정작 당할 때는 한없이 망가지는 굴욕도 자주 겪었다. 분명 비열한 악역임에도 이처럼 코믹한 모습과 허당스러운 모습이 교차하며 은근히 연민을 자아내기도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연기력에 기댄 바가 컸다. 그야말로 천서진에 빙의했다고 할만한 놀라운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 김소연이 아니었다면 다른 천서진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김소연이라는 배우에게 이번 연기대상 수상이 더욱 남다른 것은, 천서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인생의 '트라우마와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전화위복을 이뤄냈다는 데 있다. 김소연은 10대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일찍부터 하이틴 스타로서 주목받았지만, 아역 출신 연기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성인 연기자로의 이미지 변신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침을 겪어야 했다.
 
 2021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2021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 SBS

 
20년 전 2000년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으로 주목받았던 김소연은 공교롭게도 20대 초반에 출연했던 이 작품에서도 김소연은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 연기를 얄밉게 소화해내어 호평을 받았다. 당시 김소연이 연기했던 아나운서 허영미는 지금보면 마치 천서진의 20년 전을 연상하게 할만큼, 성공을 향한 삐뚤어진 욕망이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함에서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이브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악역 연기가 너무 뛰어났던 탓에 김소연은 오히려 하이틴 시절부터 이어온 차갑고 도회적인 비호감 극중 이미지가 지나치게 굳어지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후 김소연은 여러 작품에 도전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2000년대 후반 <식객> <아이리스> 등에서 조연으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대표작들이 주로 강렬한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오해받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김소연이 연기한 작품 중 진정한 악역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이브의 모든 것>과 <펜트하우스> 정도다. 김소연은 남편이 된 이상우와 출연한 가족드라마 <가화만사성> 등 수많은 작품에 선한 역을 더 많이 맡았고, 한동안 이미지 변신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악역 섭외를 피한 시절도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천서진 역할은 사실상 <이브> 이후 김소연의 약 20년 만에 도전한 악역이었다. 다양한 연기와 인생의 경험을 거치며 김소연은 향이 깊어진 와인처럼 성숙한 중견 여배우로 진화해있었고, <펜트하우스>에서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연기 내공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20년이 흐른 지금은 오히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거침없는 악역에 공감하는 시대가 되었고, 천서진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김소연의 연기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극중에서의 거침없는 악역 이미지와 달리 예능에 출연했을 때 상냥하면서도 유쾌한 4차원 매력 모습으로 묘한 반전매력을 보여준 것도 호감 요소로 작용했다. 한때 그녀에게 큰 상처와 트라우마 줬던 악역 이미지가 이제는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열어주는 전환점이 되었으니 인생사는 새옹지마라고 할만하다.
 
SBS 연기대상 역사에서 온전히 악역 캐릭터로 대상을 수상한 것은 김소연이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해에도 대상 후보에 올랐으나 <스토브리그>의 남궁민에 밀려 최우수성에 만족해야했던 김소연은 1년 만에 두 번째 도전에서 대상의 영예를 누렸다. 또한 2014년 전지현(별에서 온 그대)에 이어 여배우 단독으로는 김소연이 약 7년 만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이틴스타 출신으로 조연과 서브급 주연을 넘나들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왔지만 상복도 많지는 않은 편이었던 김소연의 수상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모든 '대기만성형' 배우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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