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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편집자말]
사용자와 노동자 간 근로계약관계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제도 중, 근래 들어 급격하게 논의가 진전되기 시작한 '병가'가 있다. 노동이 아닌 '근로'를 장려해 왔던 과거에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가 있지 않는 한, 병가는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제도였다. 애초에 병가 제도가 없는 회사가 태반이었고, 있다 하더라도 주위의 눈치 때문에라도 사소한 질병 가지고는 쓸 생각조차 못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이 발생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병가에 대한 모두의 인식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특히 전염병의 특성상, 개별 확진 노동자들의 노동만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사업장 전체를 폐쇄할 수 있어, 많은 기업들이 병가 제도를 정비했다. 또 전염병의 특성상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확진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남녀고용평등법상 가족돌봄휴직 및 가족돌봄휴가 등 이미 법제화되었으나 상대적으로 외면당해 왔던 제도들의 사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은 정작 그 일차적 대상이 되어야 할 노동자 본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도 않을뿐더러, 원칙적으로 무급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 본인의 건강이 보전돼야 결과적으로 사업장 전체의 생산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병가는 단순히 개인의 복리후생적 차원의 제도가 아니라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분명히 보장할 필요가 있는 모두를 위한 제도다.

그러나 접근 가능한 최신 자료로, 2020년 9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사 결과는 여전히 전체 사업장 중 38%만이 유급휴가제도를 갖춰 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제도적으로 정비되어 있다는 것뿐이지 그 시행 방식이나 소위 '눈치'로 인하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와는 별개이므로, 결과적으로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병가를 쓸 수 있는 노동자들은 그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소위 '유급병가' 내지 '상병수당'과 같은 해외의 법제에 대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본인의 건강이 보전돼야 결과적으로 사업장 전체의 생산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병가는 단순히 개인의 복리후생적 차원의 제도가 아니라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분명히 보장할 필요가 있는 모두를 위한 제도다.
 노동자 본인의 건강이 보전돼야 결과적으로 사업장 전체의 생산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병가는 단순히 개인의 복리후생적 차원의 제도가 아니라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분명히 보장할 필요가 있는 모두를 위한 제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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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 ① 유급병가제도의 법제화

근로계약관계에서 노동자가 '아프다'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불행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몸이든 마음이든 온전한 것을 전제로 정상적인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육체나 정신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근로계약을 통해 당사자 쌍방이 얻고자 했던 '노동력의 활용'이나 '임금 수령'이라는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더하여 질병이 길어질 경우 노동자가 질병으로 인하여 자진 퇴사하거나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할 수 없음을 이유로 해고를 하여 고용이 단절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유급병가제도는 위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기업이 병가제도를 설정함으로써 고용의 불안이라는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하고, 그 기간을 유급으로 함으로써 생계유지라는 다음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노동이 건강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고, 불건강이 소득과 일자리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원리(Scheil-adlung and Sandner, 2009)에도 부합한다.

물론 이 방법은 직관적인 만큼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제도 자체가 사실상 사용자의 전적인 부담을 전제로 하므로, 국가에서 유급병가를 의무화하는 법제를 신설하기엔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다. 특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장이 아닌 이상 '진짜로 돈이 없어서' 시행하고 싶어도 시행할 수 없고, "노동 친화적인 정책"에 불만이 많은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규모가 큰 사업장이라도 무제한적인 병가제도를 설정할 수도 없기에, 그 기간과 금액에 있어 어느 정도의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노무사 업무를 하다가 만난 소위 '복지 좋은 사업장'에서도 유급병가일수는 2~3개월 사이로 정하며 기본급 전액을 지급하는 경우보다는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에 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기간이 지났음에도 병이 낫지 않는다면? 냉정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방법 ② 상병수당의 법제화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기업에 부담을 전적으로 지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기업은 근로계약관계가 존속 중인 노동자의 복리후생이라는 차원에서 일정 한도 내에서의 유급병가제도를 고려할 수 있을 뿐이므로, 노동자이기 이전에 국민이라는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로서의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노동인권을 규율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및 권고를 살펴보면, 이미 한참 전인 1952년에 '사회보장의 최저수준에 관한 협약(Social Security (Minimum Standards) Convention 1952 (No.102))'을 통해 질병으로 인해 소득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상병수당(Sickness Benefits)을 두도록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ILO 8대 핵심협약조차 모두 비준하지 못한 '노동 후진국'인 우리나라는, 이 협약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사회보장 관련 협약에 비준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손잡고, 참여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월 임시국회 회기 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와 노조법 재개정을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손잡고, 참여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월 임시국회 회기 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와 노조법 재개정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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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협약 비준과 별개로 우리나라는 상병수당에 대해 법에서 최소한의 준비는 해 두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서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등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령이 오랜 기간 논의만 되고 있을 뿐이며, 다른 법에서도 국민연금법상 장애연금 등 질병을 초과하는 별개의 결과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 법제는 감염병의 경우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법(산업안전보건법 제138조)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소외당하지 않게 보호해야 할 질병자를 무급으로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공적 상병수당을 갖추지 않은 나라는 한국 외에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 정도밖에 없다(김수진, 김기태, 2019). 저 세 나라는 사실상 다른 방법으로 최소한의 유급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생계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을 법제화해야 한다. 특히 그 방법이 국가가 추구하는 '보편적 복지'와 같은 방향이라는 점에서, 최근 상병수당이 대선후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상병수당에 거부감을 느끼는 당신에게

보통 이런 '보편적 복지'라를 이야기하게 되면 꼭 따라오는 게 있다. "돈은 누가 내나? 결국 우리 세금이 아닌가?"라는 사람들의 불평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광의의 상병수당을 이미 시행중이다. 당장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확진자 및 밀접 접촉자의 격리 기간에 주어지는 '유급휴가비용 지원제도'는 격리자의 병가를 유급으로 처리해 준 사업주에게 일 최대 13만원의 급여를 사후적으로 보전해준다. 만일 사업장에서 유급병가를 주지 않는 경우라도, '생활지원비 신청'을 통해 입원·격리 기간에 비례하여 최소한의 비용을 지급하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는 상병수당과 다를 바가 없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전국보건의료노조 부산본부,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등 노동단체가 16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백신유급휴가 제도적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전국보건의료노조 부산본부,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등 노동단체가 16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백신유급휴가 제도적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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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도로는 유·사산휴가에 대한 급여지원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74조 제2항에 따라 임신한 노동자가 유산 또는 사산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임신 주수에 비례하여 최소한의 유·사산휴가급여를 지원한다.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는 신체 상태임을 전제하여 그 생계를 보전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상황에 한정되는 선에서 이미 상병수당은 법제화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서까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그 범위를 보다 넓히는 것 또한 사회적 합의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어차피 언제까지고 스스로의 건강을 자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이며 노동자인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안전장치를 설정하도록 여론을 모아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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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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