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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의 새해 소망'입니다. [편집자말]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나의 반려견 은이는 사람 나이로는 몇 살이 된 걸까? 나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반려동물 건강수첩의 맨 뒷장에 있는 '사람과 반려동물의 나이비교 표'를 찾아보았다. 만 9살 6개월에 접어드는 은이는 이미 50대였다. 내 나이를 뛰어넘은 나의 개. 은이의 시간이 나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자, 2022년이라는 숫자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 녀석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을까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으로 지낸 6년 6개월의 시간 속에서 은이가 가장 편안하고 당당하며 활기찼던 시기는 바로 2017년~2019년 캐나다 밴쿠버에 머무를 때였다.

은이는 그곳에서 유독 심했던 다른 개들에 대한 경계를 풀었고, '사회성 없는 개'라는 오명을 벗었다. 사람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며 공동체의 시설들을 함께 이용했고, 도시의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돌아보면 그때 은이는 엄연한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새해 소망으로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명확한 등록 체계와 관리

2017년 여름. 캐나다 밴쿠버로 이사를 한 뒤 인터넷이 연결되자마자 나는 밴쿠버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부터 반려견을 시에 등록하라는 안내를 받았고, 나는 서둘러 인터넷으로 은이의 '전입신고'를 했다.

45달러(CAD, 원화로는 4만원 내외)를 내고 등록을 하자, 은이에게 고유번호가 주어졌고, 일주일 후쯤 '밴쿠버 거주 개'임을 증명하는 도그태그가 집으로 배송됐다. 마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도 동물등록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밴쿠버에서 동물 등록은 한국보다 훨씬 철저했다. 소유자 변경, 이사, 사망 등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단 한 번, 수수료만 내고 동물등록이 마무리되는 한국과 달리 밴쿠버에서는 매년 재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후 1년이 되어갈 때쯤으면 재등록을 알리는 메일이 오고, 기간 내 등록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가된다. 1년 후 재등록을 하자 은이에겐 새로운 번호가 부여됐다. 물론 또 다시 45달러를 납부해야 했다. 

한국의 등록수수료(내장형 1만원, 외장형 3천원)에 비하면 비싸고, 매년 납부해야 하지만, 밴쿠버의 반려인들은 이 제도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려인으로서 납부하는 비용이 건전한 반려문화 조성에 사용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밴쿠버시의 무료 반려견 공원. 빨간 색 표시가 공공 반려견 공원이다. 매년 45달러를 등록비로 납부해야 하지만, 이런 시설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덕분에 이 곳의 개들은 사회성을 충분히 기를 수 있고 개물림 사고 같은 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밴쿠버시의 무료 반려견 공원. 빨간 색 표시가 공공 반려견 공원이다. 매년 45달러를 등록비로 납부해야 하지만, 이런 시설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덕분에 이 곳의 개들은 사회성을 충분히 기를 수 있고 개물림 사고 같은 건 잘 일어나지 않는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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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시 홈페이지에는 매년 납부하는 등록비를 반려동물 관련 시설을 확충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과 유기동물 보호 등에 사용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이런 혜택을 누렸다. 

밴쿠버 시내에는 무료 공공 반려견 공원이 20곳 가까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엔  물, 배변 봉투, 배설물 전용 수거함 등이 마련되어 있다. 또 동네마다 있는 커뮤니티 센터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반려견 사회화 훈련 강좌를 개설한다. 이런 공공 서비스 덕분인지 밴쿠버의 개들은 대체로 온화했고, 개물림 사고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비반려인들도 이런 공공서비스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반려견을 함께 사는 존재로 대우해줬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는 등록비를 통한 철저한 관리와 교육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나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이 날 은이는 목줄을 한 채로 캐나다 구스를 쫓았고, 한 밴쿠버 시민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밴쿠버에서는 반려동물이 야생동물을 해쳐서는 안된다.
 이 날 은이는 목줄을 한 채로 캐나다 구스를 쫓았고, 한 밴쿠버 시민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밴쿠버에서는 반려동물이 야생동물을 해쳐서는 안된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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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등록된 반려견이라 해도 모든 것이 허용되지는 않았다. 은행, 관공서, 대부분의 상점엔 반려견과 함께 드나들 수 있었지만, 공공시설과 자연보호구역에서는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밴쿠버의 공원, 해변가, 놀이터 등에는 어디든 반려견 정책이 적힌 푯말이 있다. 출입이 가능한지, 목줄을 해야 하는지, 목줄을 풀러도 되는지 명확하게 표시된 이 푯말들은 '어길 시 벌금 얼마'라고도 함께 적혀 있었다. 대체로 어린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놀이터나 생태를 보전해야 하는 해변가 등은 반려견 출입이 금지된다.

집을 구할 때 이용하는 부동산 사이트들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거주가 가능한지 아닌지가 명시되어 있다. 동물의 종류와 마릿수까지 상세하게 명시해 두는데, 규정을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또한 집을 임대할 경우엔 '펫 보증금'이 따로 붙는다. 반려동물이 집을 훼손했을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게다가 반려견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도 있었다. 바로 사람이나 반려동물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야생동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었다. 한 번은 은이가 목줄을 한 채로 캐나다 구스 떼를 쫓아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한 밴쿠버 시민으로부터 반려견이 야생동물을 해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산책할 때마다 은이가 야생동물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고, 은이는 곧 매너를 몸에 익혔다.

이런 규칙들이 처음엔 낯설고 까다롭게 여겨졌지만, 나는 점차 알게 됐다. 이렇게 규정을 정한 것 자체가 반려견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방법임을 말이다. 규정을 잘 지키기만 하면 반려인이 비난을 받거나 눈치를 볼 일도 비반려인이 반려견 때문에 불편할 일도 없었다.

연결되는 병원 시스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병원 시스템이었다. 밴쿠버에서 은이가 처음 동물병원에 갔던 날 수의사는 내게 한국에서 다니던 병원의 연락처를 물었다. 신규환자이니 지난 진료기록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한국의 은이 단골 병원에서는 조금 당황해 하면서도 흔쾌히 요청에 응해줬었다.

이후 나는 밴쿠버에서 병원을 한 차례 옮겼다. 새로운 병원에 전화로 예약을 했는데 그 병원서도 전에 다니던 병원이 어딘지를 물었다. 예약한 날짜에 새 병원에 갔을 때, 이미 그곳에선 이전 병원은 물론 한국에서의 진료기록까지 모두 받아두고 있었다. 은이가 그동안 어디가 아팠는지, 어떤 검사들을 했는지 모두 공유되었기에 중복되는 검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약 역시 보다 안전하게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응급의료 역시 체계적이었다. 한 번은 은이가 배탈이 심하게 나 새벽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나는 한국의 24시 동물병원과 유사할 거라 예상하고 엄청난 진료비를 각오했지만, 그곳은 그야말로 '응급의료센터'였다. 필요한 조치들을 해준 후 의료진은 내게 "급한 상황은 넘겼으니 일단 안정을 취한 후 내일 아침에 원래 다니던 병원을 방문하라"고 안내해줬다. 덕분에 과다한 진료비를 내지 않아도 됐고, 늘 다니던 병원에서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밴쿠버도 동물병원의 진료비는 비싸고 병원마다 약간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진료기록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적어도 중복되는 검사와 진료는 피할 수 있었다. 시스템 안에 있다는 느낌은 아플 때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많은 반려인들이 느끼는 동물병원에 대한 불안감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무작정 예뻐해주고, 모든 것을 허용해 달라는 게 아니다. 반려동물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여 규정들을 만들고 함께 지키며 살아가는 것. 그래서 반려동물과 반려인, 비반려인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길 아닐까.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3년이 지난 요즘, 은이는 캐나다에서보다 주변을 훨씬 더 경계한다. 아마도 이는 한국 사회에서 불안한 반려견의 위치를 은이 스스로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은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함께 사는 존재'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밴쿠버에서처럼 경계를 낮추고 안정감 있게 지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어느 책에선가 '개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도록 진화된 존재'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반려동물을 위한 규정들을 꼼꼼히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이 진화의 방향에 맞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이런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2022년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태그:#반려견, #반려인, #정책, #밴쿠버, #동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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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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