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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식량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내세우며, 자신이 직접 닭을 키워서 닭볶음탕을 해 먹는다는 '엽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했고, 다행스럽게도 <식량일기>는 시청률이 낮아서 자연스럽게 폐지됐다.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사회 문화적 변화를 읽지 못했다. 사람들의 생명감수성이 높아져서, 동물을 먹을지언정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도, '죽음'을 '오락'으로 여기는 행위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육식을 한다고 내가 도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남이 도살한다고 해도 그것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의 생명감수성도 인권감수성과 더불어 조금씩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하고 또 시행착오를 할 것 같은 프로그램 소식이 들린다. <공생의 법칙>이라는 SBS 프로그램이다. 예고편을 보니 이번에는 남성 연예인 세 명이 나와서 물리적 힘을 과시하며 생태계 교란종을 '무자비하게 죽여주겠다'고 한다.

생태계의 질서를 회복하겠다며 팔 걷어붙인 그들의 모습에서 마초의 냄새와 물리적 폭력의 냄새가 아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피해 의식일까? 아무리 봐도 힘센 남자 세 명이 생태교란종을 찾아다니며 죽인다고 생태계의 질서가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 

살처분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오락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그 자체로서 혐오스러울 뿐만 아니라 생명감수성을 파괴할 수 있으며, 자칫 폭력 문화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처분과 웃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리고 어울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살처분을 결코 예능프로그램에서 보고 싶지 않다.  

정말 생태계의 질서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리고 동물과 공생하고 싶다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의 원인 제공자인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도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동식물의 밀수, 반입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고, 이와 관련된 법 적용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생태교란종의 퇴치 역시 전문가들의 자문을 토대로 살처분의 정당성 및 효과, 방법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사냥한 동물 위에서 총 들고 서 있는 인간을 보면서 멋있다고 하는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건만 왜 아직도 그런 흉내를 내려고 하는가? 멋있지도 재밌지도 않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에도 글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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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사회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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