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21년 12월 끝자락, 신한은행 월계동 지점 폐쇄를 주민들의 행동으로 막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은 동네의 주민들이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기자말]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노원구 월계동지점 통폐합 방침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노원구 월계동지점 통폐합 방침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신한은행이 내년 2월에 문을 닫는데요. 저기 있는 국민은행도 12월에 문 닫는다는데, 이렇게 많은 세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은행 하나 없는 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지난 늦가을, 동네 주민들이 34년 동안 이용하던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은행 앞에서 마주치는 주민마다 저를 붙잡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저 불편하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걱정과 한탄 섞인 말씀들을 하시는 걸 보며 '얼마나 절박하시면 우리처럼 힘없는 작은 당에게 힘 좀 써달라고 말하실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결정된 걸 어떻게 바꾸냐'는 사람도 있었고, 기성 정치인들조차 안될 일이라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주민의 힘을 모으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주민들과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주민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과정을 전하고자 합니다.

노원구 월계3동은 주거 형태의 98%가 아파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미성·미륭·삼호아파트는 3930세대로 가장 큰 아파트에 속합니다. 어느 날 이 아파트 단지 안의 은행 지점이 두 개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까지 합하면 거의 1만 세대, 약 3만 명이 이용하는 은행이었습니다. 이 곳 주민들은 60대부터 90대까지 노년층이 대다수입니다. 어르신들은 '은행이 없어지면 앞으로 돈 찾고 보낼 때 어디를 가야 하냐', '다리도 아프고 몸도 힘든데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은행을 다닐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은행은 디지털라운지로 전환하는 것이니 폐점이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디지털창구가 기존의 창구업무를 거의 모두 대체 할 수 있다면서요. 이제는 디지털로 바뀌는 게 추세이니 노인들도 배워서 편하게 이용하시라, 어려움이 없으시도록 디지털 창구 옆에 직원도 한 명 두고 최대한 배려하겠다 말했습니다. "이게 대세인데 어쩌겠냐"는 그들의 말 앞에 어르신들은 작아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소외감은 이윽고 불안감으로, 불안감은 곧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
"디지털인지 키오스크인지, 지금 있는 ATM기계도 사용하기가 어려운데 새로운 기계는 어떻게 쓰겠냐."
오늘 배운 거 내일 잊어버리는 나이인데, 아무리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못 할 일이다."
창구가 있어야 은행이지 디지털로 바뀌면 우리에겐 은행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동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은행이 수익만 좇아 나가는 것에도 배신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면 창구 몇 개, 직원 몇 명이라도 남겨달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수십 년 그 은행을 이용한 고객으로 너무나 정당한 요구였습니다.

뭐라도 해보자... 폐점 반대 행동에 나선 주민들
 
지난 14일 열린 '신항은행 폐점 반대 주민 행동의 날' 행사에 참여한 월계동 주민들.
 지난 14일 열린 "신항은행 폐점 반대 주민 행동의 날" 행사에 참여한 월계동 주민들.
ⓒ 강미경

관련사진보기

  
수익만을 쫒는 은행을 상대로 우리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몇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주민들과 상의하고 주민들의 힘을 모아야만 뭐라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한 건 '회의'였습니다. 신한은행 폐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여 주민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폐점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정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볼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여기서 돈 벌 거 다 벌고 이제 와서 돈 안 되니 나간다고 하는 은행이 너무 얄밉다"는 겁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주민 서명을 받고 지역구 정치인들에게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기로 결정하고 지속적으로 대응할 주민대책위를 결성했습니다. 마을의 주인이자 은행 성장의 동반자로서 내세우는 정당한 권리의식 앞에 '우리가 나선다고 막을 수 있을까'라는 주저함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명운동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경비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습니다. 각 동마다 서명용지를 비치해 주민의 참여를 이끌었고, 상가번영회에서도 동참해 가게마다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젊은 주민들이 발벗고 나서 거리 캠페인을 펼치고, 어느 주민은 가가호호 이웃집을 방문해 서명을 받아오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2주 만에 2231명의 주민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온 동네가 한마음으로 나선 결과였습니다.

올해는 유독 겨울이 일찍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매서운 칼바람도 주민들의 목소리를 얼어붙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여든 넘은 어르신들이 매주 기자회견과 주민행동의 날에 동참하셨습니다. 주민들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신한은행 본사, 금융감독원 등 기꺼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주민행동이 시작된 이래로 언론의 관심도 쏟아졌습니다. 어르신들은 은행이 사라지면 무엇이 어려운지 몸소 보여 달라는 여러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지점 폐점을 막기 위한 마음으로 80 평생 한 번도 서보지 않은 카메라 앞에서 당신들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민들이 이토록 애쓰니 지역구 국회의원도 주민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은행을 압박하게 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많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모두의 노력이 모여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은행은 공공성을 버리지 말라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노원구 월계동지점 통폐합 방침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2230명의 주민 서명을 받은 진정서를 금감원에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노원구 월계동지점 통폐합 방침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2230명의 주민 서명을 받은 진정서를 금감원에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시작은 월계동 지점 폐점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일을 진행하다보니 이것은 전국적 은행 지점 폐점의 문제였고, 디지털 전환으로 피해를 보는 수많은 금융소외 계층의 문제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전국적으로 1000개 가까운 지점이 문을 닫았고, 앞으로도 지점 폐쇄 후 기계로 대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사기업인 은행이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5000만 국민 중에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현금을 집에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공과금이나 세금을 낼 때도, 이번 달 받은 노령연금을 찾을 때도, 사랑하는 손주에게 용돈을 보내줄 때도 주민들은 은행을 이용합니다. 금융서비스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존재인 만큼, 은행의 공공성은 꼭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게다가 국가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왔을 때 은행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이 얼마였습니까. 어려울 때는 공공성을 내세우고 잘 될 때는 사기업임을 내세우는 은행들. 지금껏 자신들을 먹여살려왔던 고객들을 이처럼 매몰차게 버린다면 국민들도 은행을 곱게 볼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은행의 공공성을 지키고 강제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몫입니다. 주민들이 금감원에 진정서를 제출 할 때도, 부자동네에는 지점이 넘쳐나고 서민동네에는 지점을 아예 없애 버리는 금융정책은 공공성을 포기한 몰지각한 행태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금융소비자법에 보장된 국민의 금융 기본권을 은행재벌이 침해하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물론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월에 발표된 은행폐점 규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을 폐점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영향 평가를 실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자체로 실시한 사전영향 평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금감원이 직접 조사하고 기준에 맞게 강제하는 내용은 빠져 있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팽배합니다. 이번 신한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월계동의 기적 같은 승리, 금융 공공성 강화 첫걸음 되길
  
지난 29일 주민대책위의 승리 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29일 주민대책위의 승리 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 강미경

관련사진보기

 
주민행동의 결과 신한은행 월계동 지점은 창구 2개와 상주 직원이 남되, 디지털라운지와 주민 휴게공간을 운영하는 디지털 출장소로 전환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노원구 월계동, 이 작은 동네에서 주민들의 힘이 모여 기적같은 승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힘 없는 사람들도 똘똘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진리를 너무나 멋진 우리 주민들이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계동 지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월계동과 같은 피해가 더 이상 없도록 금융당국은 금융공공성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월계동 주민들의 오늘의 이 행동이 어느 누구도 금융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주민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진보당 노원구위원회 부위원장입니다.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동했습니다.


댓글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