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다 못해 고리타분한 표현이 됐지만 '다사다난'했던 2021년도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각 분야에서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스포츠에서도 올 한 해 많은 일이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반면에 축구와 쌍벽을 이루는 인기스포츠인 야구는 2020도쿄올림픽 노메달과 일부 선수들이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야구가 여러 악재에 시달리는 동안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었던 종목은 단연 여자배구였다. 야구가 6개 참가국 중 3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와중에 여자배구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일본, 터키 같은 배구 강국들을 차례로 꺾고 올림픽 4강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지난 7월 31일에는 지상파 3사가 모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여자배구 한일전 대신 3-6으로 완패한 남자축구 8강을 생중계하며 스포츠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4강으로 여자배구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자배구가 2021년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초 쌍둥이 자매의 학원폭력 폭로 사건과 11월 조송화의 무단이탈로 시작된 BK기업은행 알토스의 내홍 등 배구팬들을 실망시킨 씁쓸한 사건들도 적지 않았다. 과연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하고 열광시키기도 했던 2021년 여자배구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학원폭력' 쌍둥이 자매의 몰락과 그리스 진출
 
 이다영(왼쪽)은 PAOK에서 현대건설 시절의 옛 동료 마야와 재회했다.

이다영(왼쪽)은 PAOK에서 현대건설 시절의 옛 동료 마야와 재회했다. ⓒ PAOK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배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열리는 종목이기 때문에 축구나 농구와 달리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 스파이크가 상대선수의 얼굴을 강타했을 때는 코트를 넘어가 상대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배구는 폭력과 거리가 먼 종목이라 여기는 배구팬들이 대다수였기에 지난 2월에 터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쌍둥이 자매 학원폭력 폭로사건은 배구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2월에 올라온 폭로글에 따르면 쌍둥이 자매는 동급생 및 후배선수들을 상대로 폭언,집단얼차려는 물론이고 흉기를 들고 협박까지 하는 믿기 힘든 일들을 저질렀다. 쌍둥이 자매는 곧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까지 올렸지만 추가폭로가 계속 올라오자 대한배구협회는 쌍둥이 자매에게 국가대표 자격 무기한 박탈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소속팀 흥국생명 역시 2021-2022 시즌 이재영과 이다영의 선수 등록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국내에서 현역생활을 이어갈 길이 막힌 쌍둥이 자매는 해외리그 진출을 타진했다. 물론 대한배구협회는 논란을 일으킨 선수의 해외이적을 허용할 수 없다며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쌍둥이 자매는 대한배구협회가 아닌 국제배구연맹을 통해 이적동의서를 발급 받았다. 아무리 협회와 배구팬들이 반대해도 개인의 해외리그 이적까지 막을 길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쌍둥이 자매는 지난 10월 나란히 그리스리그의 PAOK 테살로니카로 이적했다. 이다영은 개막하자마자 곧바로 PAOK의 주전세터 자리를 차지했고 이재영은 지난 10월 24일 그리스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11월 무릎수술을 위해 귀국했다. 이재영은 수술 후 회복까지 6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는데 PAOK구단은 이재영이 복귀할 때까지 이재영의 계약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악의 상황에서 '원팀'으로 뭉친 라바리니호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올림픽 4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올림픽 4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었다. ⓒ 국재배구연맹

 
쌍둥이자매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이 무기한 박탈된 사건은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던 라바리니호에게도 큰 악재였다. 이재영과 이다영은 대표팀 내에서 주전 윙스파이커와 주전 세터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수의 배구팬들이 쌍둥이 자매가 이탈하면서 한국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졌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을 마지막 국제대회로 여겼던 김연경(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을 비롯한 12명의 선수들은 쌍둥이 자매 이탈 후 더욱 결집했다. 이재영의 자리는 '클러치 박' 박정아(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메웠고 세터 포지션은 각자 다른 장점을 가진 염혜선(KGC인삼공사)과 안혜진(GS칼텍스 KIXX)이 짐을 나눴다. 그 결과 라바리니호는 맏언니 김연경부터 막내 정지윤(현대건설 힐스테이트)까지 하나로 뭉친 '원 팀'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중남미의 강호 도미니카 공화국과 내심 금메달까지 기대하던 개최국 일본을 꺾은 데 이어 8강에서는 세계 4위였던 유럽의 강호 터키를 제압했다. 비록 4강과 3·4위전에서는 각각 브라질과 세르비아에게 패하며 메달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여자배구 대표팀이 보여준 투지와 근성은 가볍게 올림픽을 시청하던 사람들을 여자배구 팬으로 유입시키기 충분했다.

실제로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여자배구에 대한 인기와 관심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살제로 김연경은 중국 출국 전까지 방송과 CF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김연경이 아끼는 후배로 방송에 몇 차례 소개된 김희진(기업은행) 역시 지난 26일 발표된 올스타전 투표에서 남녀부 모두 합쳐 유일하게 10만 표를 돌파하며 최다득표 1위에 올랐다. 이제 여자배구는 한국의 인기스포츠 중 하나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조송화 사태로 시작된 기업은행의 내홍
 
 기업은행의 새 외국인 선수 산타나는 3경기에서 단 10득점에 그치며 기업은행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기업은행의 새 외국인 선수 산타나는 3경기에서 단 10득점에 그치며 기업은행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시즌 3위에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를 3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이번 시즌 개막 후 7연패로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기업은행은 11월 16일 페퍼저축은행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드디어 시즌 첫 승을 올렸는데 이날 기업은행에는 주전세터 조송화가 출전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부상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곧 조송화가 12일 인삼공사전 이후 팀을 무단이탈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송화는 페퍼저축은행전을 앞두고 구단의 설득에 팀에 복귀했지만 페퍼전이 끝난 후 다시 팀을 이탈했고 구단은 조송화의 임의해지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조송화의 동의서를 받지 못했다. 그 사이 기업은행은 서남원 감독을 경질하고 김사니 감독대행을 선임하면서 팀의 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오히려 파장은 더욱 커졌다. 결국 나머지 6개 팀 감독들이 김사니 대행과의 경기 전후 악수를 거부하기로 하면서 김사니 대행 또한 3경기 만에 자진사퇴했다.

'감독대행의 대행'이라는 고육지책으로 팀을 이끌어가던 기업은행은 지난 8일 김호철 감독을 선임했다. 기업은행 팬들은 기업은행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정철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을 능가하는 맹장이 왔음에 만족하며 김호철 감독이 선수단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호철 감독은 부임 후 2경기에 나섰지만 아직 여자 팀이 낯선 탓인지 남자 팀을 지도했을 때의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조송화 사태도 해결되고 있고 김호철 감독 부임 후 팀도 조금씩 정비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은행에게는 고민이 남아 있다. 바로 레베카 라셈 대신 합류한 새 외국인 선수 달리 산타나다. 올해 푸에르토리코 자국리그에서 잠시 활약했을 뿐 최근 소속팀이 없었던 산타나는 훈련 부족 탓인지 타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행 합류 후 3경기에서 29.41%의 성공률로 단 10득점에 그치고 있는 산타나는 김호철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배구 연말결산 쌍둥이 자매 2020도쿄 올림픽 기업은행 사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