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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출연이 취소되었다. 이재명 후보는 다가오는 1월 6일, '대선후보에게 킹받은 사람들 모임'이라는 콘텐츠 촬영에 나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눌 계획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이미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당시 같은 채널의 '이불속인터뷰 : 대선후보가 우리집에 놀러왔다'라는 컨텐츠에 출연했던 바 있다.

이 후보의 출연을 알리는 씨리얼 측 공지에는 "요즘 청년은 여사친이랑 경쟁해야 된다? 여사친은 청년 유권자가 아닌 걸까?",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해서 다했죠? 라니...", "전두환 비판했다가 칭찬했다가, 왜 말을 이랬다 저랬다 바꾸는 걸까?" 등 다소 민감한 질문이 예고되어 있었다.

해당 채널 출연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후보의 지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에서 출연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씨리얼이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의 매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재명 선대위 온라인소통단장을 맡고 있는 김남국 의원은 이재명 갤러리로 향했다. 

김 의원은 "여러분께서 주신 의견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누락 없이 일정 담당하시는 선배님께 꼭 전달하겠다", "모르는 것을 가장 빠르게 가르쳐주시고, 생생한 민심을 전달해주시고 계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28일 오후, 후보의 출연 취소(보류)가 결정되었다. 지난 15일에도 비슷한 이유로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출연이 취소된 바 있다. 닷페이스는 2년에 걸쳐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를 기획했고, 여성과 소수자, 청년 등의 인권 의제를 다뤄온 채널이다.

씨리얼은 어떤 채널일까? 씨리얼이 업로드한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들을 살펴보자. 학교폭력 피해자,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증언, 자살자의 유가족, 신천지 취재기, 기후 변화 등이다. 그 외에도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 대학원생 처우, 우울증, 장애인 인권 , 빈곤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코로나19 의료진의 고통 등 동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사회문화적 주제가 대부분을 이룬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두 여군 용사들의 인터뷰 역시 인상적이다. 

김 의원이 지지자들에 머리를 숙이기에 앞서, 후보가 출연을 예정했던 채널에 대해 살펴보았는지는 의문이다. 김남국 의원은 충분한 고려와 검증 없이, 특정 커뮤니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 댓글창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만 허용되어 있어 반대자들이 댓글을 달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만든 '필터 버블'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국회의원은 민의의 대변자다. 유권자들의 의견을 겸허히 듣되, 자신의 강한 소신으로 의제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은 국회의원이 할 일이 아니다. 

'페미'와 '안티 페미', '이대남'과 '이대녀' 사이에서

지난 6월 국민일보와 글로벌리서치가 18~39세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남성의 86%가 '남성 혐오 현상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여성의 64%가 '여성 혐오 현상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이대남'의 상당수가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상수다. 20대 여성의 상당수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의 괴리가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확인하고, 조정할 방법을 찾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페미가 묻으면 안 된다', 'PC(정치적 올바름)가 묻으면 안 된다'는 말 아래, 모든 접촉을 차단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 노동과 불평등 문제가 젠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더욱 아쉽다.

선거 시즌에 후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사하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보아 온 일이다. 에프엠 코리아와 디시인사이드 등 남초 커뮤니티에 후보가 직접 글을 올릴 수 있다면, 그와 다른 성향의 채널에 출연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경청과 영합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얼마 전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 출연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지자들의 반응 역시 '유능한 경제통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 유익했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또 다른 유튜브 채널에 대한 온도는 사뭇 다르다.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채널이라는 비난,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주를 이룬다. 해당 채널이 지금까지 기록하고 소개한, 우리 사회의 그림자는 이야깃거리에서 밀려난다. 

이재명 후보가 예정대로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페미니즘과 엮였다'라는 이유로 지지율이 급락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레거시 미디어가 조명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유력 대선 주자의 철학을 엿볼 기회가 되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가능성은 '후보에게 페미가 묻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경청한 이들에 의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태그:#씨리얼, #김남국, #이재명, #닷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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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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