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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佐渡) 광산. 일본 니가타현(新潟県) 사도시(佐渡市)에 있는 금광이다. 1601년 금맥이 발견된 이래 에도시대 내내 막부의 중요한 재정원으로 자리한, 그야말로 '금싸라기' 산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일본이 군함도(端島)에 이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소식 때문이다(관련 기사: "일본의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반대 확산").

사도광산은 태평양전쟁 당시 철·구리·아연 등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운영되던 광산이기도 했다. 무려 1140~2000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 노동자들 역시 동원되어 이곳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했다.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찝찝할 수밖에 없다.
 
2018년 1월 촬영한 일본 군함도 사진.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여길 "지옥도"라고 했다.
 2018년 1월 촬영한 일본 군함도 사진.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여길 "지옥도"라고 했다.
ⓒ 손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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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이 사도광산에 깃든 강제동원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이를 기리겠다고 한다면 굳이 반대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더 많은 이들이 찾는다면,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참상과 함께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일본에게 뒷통수를 얻어맞은 전례가 있다. 2015년 일본은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설을 설치하겠노라 약속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일본은 지난해 3월에야 비로소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열었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연 센터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은커녕 강제동원 및 민족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증언 및 자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반발이 안 일어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앞서 일본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천을 위한 후보로 선정했고, 한국 정부는 28일 이에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누카다니를 아시나요 

사도광산 논란을 지켜보며 4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2017년 여름, 나는 독립기념관 대학생 탐방단 소속으로 일본 가나자와(金澤)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답사 일정 중에는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누카다니 채석장(額谷石切場跡)도 포함되어 있었다. (관련 기사 : 또 다른 군함도, 누카다니 동굴)

본래 인근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위한 채석장으로 활용되던 누카다니 채석장은 1945년 4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무렵, 일본군에 의해 군수공장 부지로 낙점됐다. 울창한 삼림 속에 자리하고 있어 연합군의 공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외장하드를 꺼내 4년 전에 촬영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누카다니 채석장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산길이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절벽 아래 군데군데 자리 잡은 동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십 명은 족히 수용 가능할 정도로 넓고 튼튼해 보였다. 바로 이 동굴들 안에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것이다.
 
누카다니 채석장 일대의 강제동원 흔적들 (2017년 6월 29일 촬영)
 누카다니 채석장 일대의 강제동원 흔적들 (2017년 6월 29일 촬영)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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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카다니 동굴을 둘러보는 독립기념관 대학생 탐방단원들 (2017년 6월 29일 촬영)
 누카다니 동굴을 둘러보는 독립기념관 대학생 탐방단원들 (2017년 6월 29일 촬영)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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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군으로부터 누카다니 군수공장 운영을 위탁받은 기업이 바로 미쓰비시 중공업이었다(군함도와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기업도 미쓰비시였다). 미쓰비시는 이곳에 50여개의 동굴을 뚫어 비행기 엔진공장을 세우고자 했다. 작업은 강제동원된 조선인 및 일본인들의 몫이었다. 이곳에는 약 600여명의 조선인들이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 지워버린 '조선인 강제동원' 문구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중, 멈칫하고 말았다. 누카다니 동굴 앞에 세워진 안내판 사진 때문이었다. 안내판의 일부 문구들이 훼손되어 있었다.

촬영 당시에는 현장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어 찍어놓고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해당 안내판은 1998년 가나자와시 교육위원회에서 세운 것이었다. 일어를 옮기자면 이렇다.
 
훼손된 누카다니 채석장 안내판 (2017년 6월 29일 촬영), 알고보니 '강제적으로(强制的に)', '조선(朝鮮)'라는 단어를 누군가 훼손한 것으로 추정됐다.
 훼손된 누카다니 채석장 안내판 (2017년 6월 29일 촬영), 알고보니 "강제적으로(强制的に)", "조선(朝鮮)"라는 단어를 누군가 훼손한 것으로 추정됐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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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또 이 동굴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직전에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의 항공기 엔진 부문의 소개처(疎開先:피난처)로서 OOOO 끌려왔거나(連れて来られたり)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해 모집된 OO인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에 의해 돌관작업(突貫作業: 쉬지 않고 강행하는 공사)으로 지하 군수공장으로 개조되어 기계 설치도 이뤄졌지만 종전을 맞아 가동에는 이르지 못했다. (…후략…)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훼손된 부분은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내용일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송신애 선생의 도움으로 훼손되기 이전 안내판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훼손된 부분에는 원래 '강제적으로(强制的に)', '조선(朝鮮)'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누군가 인위적인 훼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훼손되기 전에 촬영된 누카다니 채석장 안내판 (2009년 촬영). '강제적으로', '조선인'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훼손되기 전에 촬영된 누카다니 채석장 안내판 (2009년 촬영). "강제적으로", "조선인"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 fl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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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해당 안내판은 원상복구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간이 지난 2021년 4월 누카다니를 방문한 한 일본인 블로거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 문제의 안내판은 원래 문구를 되살린 새 안내판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 이후의 근황은 알지 못한다.) '안내판 훼손사건'은, 여전히 식민지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의 반동 세력이 일본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군함도·사도광산·누카다니를 운영했던 전범 기업 미쓰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은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판결에 불복, 오히려 역소송을 제기하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 2명의 원고가 세상을 떠났다.

[관련 기사] 
끝내 무덤에서야 '승소' 듣게 된 일제 강제동원 조선인 http://omn.kr/1btsq 
74년 만에 들은 5초짜리 판결에... 일본인도 통탄 http://omn.kr/1e0ps 

자국의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일본 정부와 배상 책임을 외면하는 미쓰비시.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일본의 태도는 뻔뻔함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에도시대의 역사만을 부각시켰다고 한다.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는 제외하려는 꼼수인 셈이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원한다면 6년 전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먼저다. 또 사도광산 역시 강제동원의 현장이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치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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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수료(독립운동사 전공) / 형의권·팔괘장·활쏘기(국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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