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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희님 보호자 분."

병실 스피커로 들리는 내 이름이다. 나는 남편 무릎수술 보호자다. 

코로나 여파로 보호자 존재감이 더 확실해졌다. 환자 보호자 1인에 한하여 보호자 등록이 있었다. 입원 삼일 안에 실시한 코로나 검사 결과지와 '코로나 19 선별문진표'를 작성한 후 QR출입증이 발부되었다. 환자의 입원 수속 시에도 보호자 확인 등 철저함이 있었다. 집에서 나와 기차와 셔틀버스로 이동, 입실하는 데까지 다섯 시간. '이제 퇴원할 때까지는 병간호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랬다.

웬걸.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또 불렀다. 보호자 문진표 작성을 안 했다는 거다. 너무나 확실하게 했음을 알기에 당당했다. 간호사는 나 같은 사람을 많이 겪었음직한 친절한 태도로 매일 오전과 오후 두 번씩 문자 보내고 있으니 꼭 확인하여 작성해 달라고 했다. 하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라니.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단다. 환자 관리보다 더 철저한 보호자관리였다. 환자의 최전방을 지키는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보호자의 외박은 물론 외출도 금지였다. 병원 안에서만 동선이 허락되었다. 남편 무릎수술 보호자로 자청하고 겁 없이 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잠자리는 병원 옆에 사는 딸집으로 생각했다. 잠만 편히 자도 그게 어디야. 힘들다는 병원생활이지만 덤으로 손주까지 만날 수 있다는 당찬 희망이 있었다.

예외 없는 법이 어디 있을까. 간호사에게 요리조리 경우의 수를 들이대며 틈새를 살폈지만 여지가 없었다. 만일의 경우도 코로나 검사를 전제로 허락된다는 조건이었다. 이런! 잠을 자기 위해 코를 내줘야 하는 고역을 매번 치루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병원 수칙을 어기면서 해야 할 절박함은 없었다. 손주를 못 보는 아쉬움을 접고 코고는 남편 옆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는 편을 택했다.

결국 24시간 대기 간병인이 되었다.

"정형외과는 전문 간병인이 따로 있대." 딸은 암수술 4년차인 엄마의 건강을 염려했다. 간병인을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에 덧붙인 말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기도 하고 배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입원과 수술 날에는 보호자가 있어야 되는 상황이니 봐가며 결정하자고 했다.

남편은 보호자로 따라나서겠다는 아내를 말리지 않았다. 잘해야 이삼일 버티다 내려갈 저질 체력을 감안했다. 나도 그렇게 계획했다. 입원에서 퇴원까지 8박9일. 수술만 잘 되면 재활이야 혼자서 충분하겠거니 대수롭지 않았다.

수술 후, 누워 있는 남편에겐 피 주머니, 소변 통, 무통주사통, 수액 외 알 수도 없는 주머니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한마디로 줄 없이 못 사는 인생이었다. 수술한 왼쪽다리가 허벅지를 두 개 합한 것 마냥 부어있었다. 지혈을 위해 허벅지를 묶어 놓아서 그렇다고 했다. 아픔을 나눌 수는 없지만 뭐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밤 10시 40분. 죽이 허락되었다. 꼬박 24시간 만에 먹는 곡기였다. 머리가 멍하다는 그를 위해 나는 어느새 죽을 떠 먹여주고 있었다. 이런! '과보호자'가 있나. 상반신은 멀쩡한 환자임을 명심하자.

수술 후 이틀째 재활 시작이었다. 피 주머니와 소변 줄이 사라지고 붕대를 풀었다. 보호자의 역할이 점점 많아졌다. 소변량 기록, 재활기구 작동법 숙지하기, 환자 따라다니기 등이 추가 되었다. 식사보조나 간식 챙기기 정도의 포지션에 얼음찜질 정도로 생각했던 역할이 과소평가였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딸이 전해 준 말을 이해했다.

병실마다 무릎수술 환자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재활 도구들을 함께 쓸 수 있도록 배치한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잡아 둘 때는 그 이유가 있다는 걸 다른 환자들을 보며 저절로 알게 되었다. 보호자가 없어도 되겠다는 판단을 보류하고 입원 기간을 함께 있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도 내려가라는 말을 아꼈다.

그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식은 땀을 뚝뚝 흘리며 재활에 전념했다. 인공관절이 몸에 들어와 잘 안착되기 위해 초기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고 수없이 들어온 터였다. 말로만 듣던 아픔과 몸으로 겪어내는 차이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심하게 굽은 무릎을 펴야할 땐 눈가가 젖었다.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난단다.
 
재활은 치료의 시작입니다.
▲ 재활시작 재활은 치료의 시작입니다.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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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엔 내가 수술을 했고 남편이 보호자였다. 보호자 품앗이를 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부부만큼 편한 보호자가 또 있을까. 가끔 재활의 강도를 높여야 된다는 말을 아내의 잔소리로 폄하하려는 때가 있긴 하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단련된 사이 아니겠는가.

"고마워. 잘 버텨줘서."

남편이 보호자에게 한 말이다. 기초체력이 미달인 아내가 6일째 곁에 있으니 대견하다는 뜻 일게다.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주는 노년이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와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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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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