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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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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이 환 했다. 밤새 눈이 듬뿍 내렸고, 또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내가 사는 밴쿠버에서 원래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이곳은 원래 밤새 눈이 와도 아침에 비로 바뀌어 오후에 다 사라지는 날씨인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종일 눈이 왔다. 마치 하늘에서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크리스마스는 평화롭게 지나갔다.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아름답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준비하면서 종종거렸던 시간도, 당일의 느긋함과 넉넉함도 연말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아마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시즌이 이때가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준비하고 보내는 것은, 사실 한국에 살 때는 쉽게 생략하는 일이었다. "그냥 마음만 전하면 되지"라든가,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수 있어" 같은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나도 선물을 받고 나면 뭔가 다시 보답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움을 갖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살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기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준비하는 즐거움이 눈에 보여 부러웠나 보다. 

별다른 선물은 아니었다. 고급 물건도 아니고, 비싸게 구매한 물건도 아니다. 그저 집에서 만든 이것저것을 담아서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를 담아 보내는 기분으로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선물은 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준비되고, 그다음은 친구와 이웃이었다. 남편은 혼자 사시는 누님과 형수께 준비를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모이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해서 바구니를 준비했다. 이번엔 꼭 모여서 즐거운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이 바구니는 꼭 필요했다. 그리고 또한 이웃집을 위한 바구니도 만들었다.
 
이웃집에 보내진 바구니
 이웃집에 보내진 바구니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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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안에는 집에서 만든 각종 음식들이 들어갔다. 쇠간 파테, 올리브 절임, 피클, 와인, 식초, 크리스마스 빵들, 기타 과자 등이 들어가자 금방 가득 찼다. 

집에서 만든 먹거리도 선물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한국의 가족들에게 선물을 담았다. 엄마도 동생도 선물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셨기에 다른 선물은 생략하고 먹는 것들만 담았다. 집에서 만든 와인도 보내고 싶었는데, 받는 사람이 세금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그 외에 누구에게 보낼까를 생각하다 보니,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이들에게 보내고 싶었다. 감사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리스트를 써보니 정말 많았다. 그래서 추리고 또 추렸다. 

한국으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그리고 캐나다 안으로 보내는 소포를 모두 추려서 부치고 나니 배송비가 물건값보다 더 나왔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별거 아닌 과자 같은 것들을 보내면서 이런 비용을 들이는 내가 실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요새는 밖에 나가면 좋은 것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뭘 보내겠다고 이리 부산을 떨었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숍 기프트카드를 담은 봉지들, 우체부에게 받은 감사 쪽지
 커피숍 기프트카드를 담은 봉지들, 우체부에게 받은 감사 쪽지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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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준비한 또 한 가지의 선물은 바로 동네를 위해 일하는 분들을 위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어머니도, 청소차 아저씨나 우체부 아저씨께 명절이면 떡값을 드리곤 했었다.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가끔 경비아저씨들께 명절의 과일 등을 나누기도 하였으니, 이런 마음 나누기는 한국이나 캐나다나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캐나다의 가장 대표적인 커피숍 체인의 기프트 카드를 구입해서, 우체부와 쓰레기 치우러 오는 분들을 위해 준비를 하고 미리 붙여두어서 그분들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은 재활용품, 일반 쓰레기, 음식쓰레기를 각각 다른 분들이 가지러 오시기에 다 따로 준비했다.

무사히 가져가는지 보려고 남편은 수시로 창 밖을 내다보았는데, 청소차가 쓰레기통을 비우고는 경적을 두 번 울리고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도 상냥한 우체부 아주머니는 다음날 고맙다는 쪽지를 우편물과 함께 남겨주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해주길 바란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이웃이고, 그분들을 존중하고 감사한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게 해주고 싶었다. 인간적인 교류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서 가꾼 꽃차와 식초, 과자 등
 집에서 가꾼 꽃차와 식초, 과자 등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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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보낸 선물들은 다 늦지 않게 배달되었고, 기뻐하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보낸 소포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나 이제 들어가기 시작을 해서 하나둘 소식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보내기 전에 사진 한 장도 못 찍었는데, 받은 분들이 알아서 인증샷을 보내준 덕에 내가 뭘 보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 다르지만, 대부분 집에서 만든 식초와 간식, 꽃차 등이었다.

동생네는, 식구들 선물을 따로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든 과자에 고양이 선물만 하나 사서 보냈더니 고양이 인증샷이 왔다!
 
동생네 고양이
 동생네 고양이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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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표현 중 하나

나도 생각지 못한 분들에게 선물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기분 좋은 순간을 맞이했다. 선물을 받으면서,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지?" 하고 내가 고민하길 바라고 보낸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넙죽 받았다.

선물을 줄 때, 상대가 그것을 내게 어떻게 되돌려줄까를 기대한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고 뇌물일 것이다. 그런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면, 준비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리라. 기쁘게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 이미 선물인 셈이고, 또한 거기에 덤으로, 상대가 받아서 기쁘다면 그것이 더욱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작은 선물을 받은 분들은 모쪼록 기쁘게 사용하고, 그걸 쓰는 때마다 즐거운 마음이 되면 좋겠다. 이걸 어떻게 갚을까 제발 고민하지 마시길...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선물이리라.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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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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