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두 달여에 걸쳐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말]
2020년 8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있는 세계 최대 고무장갑 제조업체인 탑 글러브 공장에서 노동자가 일회용 장갑을 검사하고 있다.
 2020년 8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있는 세계 최대 고무장갑 제조업체인 탑 글러브 공장에서 노동자가 일회용 장갑을 검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주 인권 정책은 표를 먹고 산다는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분야는 아니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자칫하다가는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는 민감함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저임금과 52시간제에 대해 합리적 개선을 밝힌 야당 대선 후보나 노동 존중을 이야기하며 노동계와 소통을 강조하는 여당 대선 후보나 이주인권 관련해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진영을 뛰어넘어 지지층 확장에 도움이 될 이주 인권 정책이 없는 건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고무장갑 수출국이다. 코로나19 이후 의료용 고무장갑 등의 막대한 수요는 말레이시아 경제에 엄청난 호재다. 현재 생산량 한계로 인한 장갑 부족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재사용 장갑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다. 말레이시아 고무위원회에 따르면 고무 제품의 수출은 2020년 370억 링깃(한화 10조 5천억)에서 2021년 10월까지 632억 링깃(한화 18조)으로 70.7% 증가하면서 말레이시아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말레이시아산 고무장갑의 압류나 수입 중단이 최근 2년간 계속되고 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세계 최대 장갑 제조사인 탑 글러브를 필두로 슈퍼 맥스, 브라이트웨이 홀딩스, 라 글러브, 바이오 프로 등 주요 고무장갑회사 제품에 대해 강제노동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억류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명령은 이주노동자 채용과정의 비윤리성, 채무를 빌미로 한 속박, 과도한 초과 근무, 신분증 압류, 기숙사의 적절성, 언어·신체적 또는 정신적 학대와 보호 장비 미착용 등과 같은 노동생활환경을 살핀 결과이다. CBP 억류 명령이 반복되면서 말레이시아 장갑 제조사들의 주가 역시 코로나19 이후 급등락을 반복했다. 톱 글로브는 작년 10월 강제노동 피해 이주노동자 약 1만 2천 명에게 배상금 4000만 달러(470억 원) 지급을 결정했다. 

미국은 2016년부터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을 통해 생산된 모든 제품에 대해 수입 금지를 하고 있다. 이런 조치가 단순히 강제노동 지표 하나만 갖고 취해진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공급 부족으로 불량 장갑이 유통되는 상황에서 고무장갑을 특정해 수입 금지할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보기 어렵다. CBP 조치는 해당 기업들이 고무장갑 제조 과정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취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CBP는 이들 업체 조사 과정에서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지표에 따라 점검했다고 밝히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지난 12월 2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합헌 결정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
 지난 12월 2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합헌 결정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
ⓒ 고용허가제헌법소원추진모임

관련사진보기


이주인권 정책을 논하며 말레이시아 고무산업을 언급한 이유는 국내 이주노동자 노동환경이 말레이시아와 일정 부분 닮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휴·폐업, 임금체불과 폭행 등 노동조건 위반 등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해 기존 사업장에서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변경 요건에 따라 사업장 이동을 했다 해도 3년 내 3회를 초과할 경우 체류 자격을 잃게 된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사업주들은 사업장 변경을 빌미로 이주노동자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강제노동의 위험이 있는 '현대판 노예제도'라 칭하며 폐지를 주장해 왔다. 

고용허가제에서 강제 노동으로 보이는 예는 숱하게 보도되었지만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상습적으로 여성 이주노동자를 성폭행하고 피해자가 임신하자 강제로 중절 수술을 시켰던 농장주가 고발된 사건이 있었다. 농장주는 성폭행을 피해 도망간 피해자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어겨도 사업장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 성폭행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사장에게 폭행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신고했던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기숙사 제공이라고 근로계약이 돼 있었지만 사측은 노동자가 근무 태만할 경우 기숙사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겼다.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 외국인 담당자들은 기숙사에서 질질 끌려 나가는 동영상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다시 기숙사 사용하도록 한다고 하니까 회사로 돌아가세요." 

폭력 사건을 경찰이 조사하는 가운데, 엄연히 근로계약 위반 사실을 두고도 고용복지센터 담당자들은 사측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폭행 사건으로 조사를 받는 고용주가 있고, 기숙사에서 쫓아내는 동영상을 보고도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주노동자에게 맞으면서 배우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2차 가해를 범했다. 관계 공무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피해엔 둔감하고 사측 목소리엔 움츠린다. 사측이 이주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관련 공무원들이 회사로 다시 돌려보내는 현실은 강제노동과 다를 바 없다. 

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사업주가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하는 순간 이주노동자는 흔히 말하는 불법 체류자(미등록 체류자)가 되고 만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이를 스스로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현 고용허가제는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농장주나 사업주 한 명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이 문제 많은 외국인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위헌청구'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재 판결 이후 강제노동이 헌법 정신이냐는 시민사회 질타가 이어진 가운데 ILO와 UN인종차별특별보고관 등이 줄곧 고용허가제 제도 개선을 촉구해 왔던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2015년 ILO 104차 총회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과 노동시간에 관한 권리가 확실히 보장되도록 정기적인 조사와 연례사업보고서 발간도 주문한 바 있다. 같은 해 UN인종차별특별보고관 역시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철폐와 노동시간, 휴게시간 및 주휴수당과 관련된  근로기준법을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전면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ILO는 '어떠한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거나 또는 임의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무'를 강제노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협약을 비준하는 회원국은 '어떠한 형태의 강제노동이든 금지하고 이를 이용하지 않을 책임을 진다. 강제노동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폐지를 보장하기 위한 효과적 조치를 취하라'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4월 ILO 강제노동금지협약 29호를 비준했고, 내년 사무총장 선거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출마한 상태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에 협약 이행을 위한 적정 노동을 강조한다. ILO가 말하는 적정 노동은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고용안정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며,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노동자와 그들 가족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며, 노동자들이 본인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노동'이다. 고용허가제 관련 규정은 국제 기준이 말하는 적정 노동을 보장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말레이시아 고무산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강제노동과 대한민국 고용허가제는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도 그렇고, 말레이시아 사례가 말해주듯이 국제이해관계에 따라 무역 관계에서 꼬투리 잡힐 부분은 사전에 제거하는 게 상책이다. ILO와 UN 외에도 미 국무부 또한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의 징후를 보이는 노동조건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제조업 뿌리산업의 상당 부분이 이주노동자에 의지하고 있고 그들이 만든 제품들이 중소대기업 등에 납품되고 있다. 이는 강제노동 혐의를 받는 고용허가제가 언제든지 한미 통상 협상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면에서 기업과 국가 경제에도 유리하다. 고용허가제 폐지는 시대 과제다. 

미등록 합법화 공론화,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2021년 10월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미등록자 현황
 2021년 10월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미등록자 현황
ⓒ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벌과금 부과 등의 처벌, 관계기관 합동단속체제를 통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으로 일관했다. 2005년에 '불법체류자 감소원년의 해'로 정했고, 2008년 9월에는 국가경쟁력강화 7차 회의에서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을 채택하며 5년 이내에 미등록 체류자 수를 총체류자의 10% 이하로 감소(당시 19.3%)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법무부 출입국은 국가가 제도권 내에서 관리 가능한 불체율은 10%선 이하라고 명시하여 연말까지 20만 명 선으로 감소 목표를 설정하고 단속 추방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2021년 10월 현재 미등록자는 법무부 출입국이 관리 가능하다고 공언했던 수치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2021년 10월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월보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8만 명으로 전년 동기간 207만 명보다 4.6% 감소했다. 이 중 미등록자는 39만 1548명으로 전년 39만 3045명보다 0.4%가 감소해 전체 체류 외국인 감소 폭과 비교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2019년 이후 39만 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2021년에만 신규 발생자가 4만 3190명이나 될 정도로 미등록자 수는 단속 추방과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감소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 준다.

미등록자 39만 명은 정부가 비전문 단순노무 직종에서 일하도록 허락한 비전문취업(E9) 21만 9570명, 방문취업(H2) 13만 8960명을 합한 숫자보다 많다. 이는 미등록자들이 외국인력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며 국내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더 나아가 미등록자는 비전문취업자와 방문취업자를 포함한 국내 체류 모든 '취업 자격' 등록 외국인 체류자, 교수(E1), 회화지도(E2), 연구(E3), 기술지도(E4), 예술흥행(E6), 계절근로(E8), 특정활동(E7), 선원취업(E10) 등을 합해도(41만 9973명) 큰 차이가 없다. 

국내 취업 자격 모든 등록 외국인과 미등록자가 거의 비슷하게 체류하고 있는 현실은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원하는 법무부 출입국으로서는 못마땅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 때문에라도 법무부는 '체류는 불허하되 노동은 허'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정책을 묵인하고 있다.

경기가 호황이라 노동력이 부족하면 미등록자들을 어느 정도 묵인하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구직난이 심해지면 제1순위로 미등록자들을 색출하고 추방에 나서는 미국 등의 사례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 출입국의 미등록자 체류 관리가 실패했음이 드러났고, 그 존재에 대한 현실적 필요는 미등록 합법화 논의가 한국사회에 지금 당장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방역당국이 발표하는 백신 접종률은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백신 접종을 시행하는 각 지자체들은 미등록자 추정치마저 갖고 있지 않다. 중앙정부만이 미등록자가 세종특별자치시보다 약 5만 명 이상 더 많다는 통계를 갖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4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를 배제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미등록 외국인이라 해도 접종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출입국 정책에 신뢰관계가 없는 미등록자들이 예약과 접종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접종 후 이상반응 등을 우려해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현장 활동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백신 접종은 시혜적 분배가 아닌 사회 전체의 방역망 구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미등록 합법화는 코로나 이후 인력난을 호소하는 사업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적 부담도 적다. 코로나 이후 불거진 제조업과 농어촌의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여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등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운영에서 발생한 미등록자만이 아니라 초과 체류자들을 포함한 전면적 합법화를 통해 코로나19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합리적인 외국인력정책을 시작하는 단초로 삼을 수 있다. 특별히 장기 체류 미등록자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실질적 합법화, 즉 영주권 부여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미등록 합법화는 인도주의적 차원만 아니라 빈틈없는 코로나 방역 대책과 노동력 부족 해소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국익 차원에서라도 공론화를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공론화는 방역당국과 출입국 당국만이 아니라 대선 후보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