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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저는 마음속에 커다란 불안이 있습니다. 이 불안 때문에 저는 모든 걸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마트에 가려고 방을 나가기 전에 저는 가스 밸브를 열 번도 넘게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방금 전에 가스 밸브를 닫았으면서도 그게 확실치 않아 계속해서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계속 이러다가는 밸브 고장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곧게 폈습니다. 그리고는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스 밸브 손잡이 방향을 따라 가로 방향으로 길게 획을 그으며 이렇게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로로 길게 획을 그으며) "자 봐. 손잡이가 가로 방향이지?"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로로 길게 획을 그으며) "그래, 맞아. 가로 방향이야."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로로 길게 획을 그으며) "그럼 닫은 게 맞아. 틀림없어."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로로 길게 획을 그으며) "왜? 어째서?"
(곧게 편 손가락으로 가로로 길게 획을 그으며) "내가 닫지 않았는데 지가 스스로 가로 방향이 될 리가 없잖아. 기계가 말이야."


그날 저는 이 대화를 서너 번 반복하며 가스 밸브 손잡이 방향이 가로라는 사실을 뇌리에 확실히 인식시킨 후에야 비로소 방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방을 나온 저는 마트로 가던 중 공과금 납부를 위해 은행에 잠깐 들렀습니다.

늘 하던 대로 ATM 기기 앞에 잔뜩 웅크리고 선 저는 (주변에 보는 사람은 없지만) 카드 비밀번호가 외부로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들고 있던 가방 형태의 장바구니로 기기 화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는 행여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비밀번호를 누른 다음, 침착하게 수취인 계좌번호를 입력했습니다.

물론 수취인 계좌번호는 단지 손가락으로만 입력하지 않습니다. 입과 목을 더불어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수취인 계좌번호를 누르면서 동시에 그 숫자를 입으로 중얼거립니다. 그러면서 또 그 리듬에 맞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입니다. 이렇게 하면 계좌번호를 틀리지 않고 입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 때문에 뭐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저는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불안 때문에 뭐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저는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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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장을 보고 마트에서 돌아온 저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늘 하던 대로) 재빠른 손놀림으로 상의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마트에서 사용했던 체크카드가 제자리에 잘 들어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체크카드 확인 작업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언제나 2단계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 시각으로 확인하기입니다. ① 두 눈을 부릅뜨고 지갑 안쪽을 날카롭게 쏘아본다. → ② 체크카드 윗부분이 시야에 포착되면 OK.

두 번째 촉각으로 확인하기입니다. 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반듯하게 편다. → ② 반듯하게 편 손가락 끝으로 지갑 안쪽을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쭉쭉 세 번을 훑어 내린다. → ③ 손가락 끝에 무언가 얇고도 단단한 것이 걸리는 느낌이 들면 OK.

그날도 역시나 연달아 두 번의 OK 사인이 났고, 그러자 저는 (늘 하던 대로) 고개를 세 번 끄덕이고는 체크카드가 제자리에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체크카드 확인 작업을 끝낸 저는 "이제 마지막 고비로군"이라고 낮게 중얼거리며 바짝 긴장된 손길로 아까 마트에서 사온 고구마 상자의 포장용지를 뜯었습니다.

상자에 든 고구마를 하나씩 꺼내면서 저는 하나라도 상한 게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럴 경우 "이런 젠장, 하고 많은 것 중에 아주 형편없는 걸 골랐군. 이러니 내가 여태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생각해 봐. 고구마 상자 하나도 제대로 못 고르는 바보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며 심장이 상하도록 모질게 제 자신을 학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날은 고구마 상태가 다 양호했고, 그래서 그날은 모진 자기 학대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불안 때문에 뭐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저는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그래서 장을 보고 돌아와 고구마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저는 "산다는 게 이리도 힘든 줄 몰랐다. 이렇게 힘들게 살기 전에는" 하면서 제 자신에게 한참이나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고는 컴퓨터 자판을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으로 콕콕 눌러가며 소설을 씁니다.

저는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저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 <털 빠진 푸들>은 심한 불안에 시달립니다. 얼마나 불안이 심한지 그는 스트레스로 온몸의 털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청년을 만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고, 결국 모든 불안을 말끔히 털어 버리고 새롭게 거듭납니다.

그런 그를 보며 저는 "털 빠진 푸들아, 축하해. 불안을 이겨낸 것 축하해. 나도 언젠가 이겨낼 수 있겠지?" 하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대신해 제가 이렇게 제 자신에게 대답합니다. "그렇고 말고. 넌 틀림없이 이겨낼 거야. 난 믿어."

그렇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저를 짓누르는 이 거대한 불안을 언젠가 깨끗이 털어버릴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는 올해 소망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1. 가스 밸브 한 번에 잠그게 되기.
2. 공과금 계좌이체 손으로만 하게 되기.
3. 체크카드 잘 있는지 눈으로만 확인하게 되기.
4. 고구마 상했다고 심장이 상하도록 자기 학대 안 하게 되기.
그리고 하나 더,
5. 제발이지 좀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 완전히 끝나게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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