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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지만 가장 낭만적인 시간이다. 딱히 언제부터 겨울이라고 단정 짓기보단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 코끝에 김이 서리고 겨울 특유의 냄새로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문득 낮도 밤도 아닌 것 같은 날씨에 피곤한 몸을 달래줄 뱅쇼가 생각이 난다. 프랑스어로 와인이라는 뜻의 Vin, 따듯한의 Chaud 가 합쳐진 뱅쇼(Vin Chaud),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의, 나에게는 서양식 쌍화차 같은 느낌이다.

아이를 낳고 뱅쇼에 빠지다
 
처음 집에서 뱅쇼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첫 아이의 모유 수유를 끊은 2016년의 크리스마스였다.
 처음 집에서 뱅쇼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첫 아이의 모유 수유를 끊은 2016년의 크리스마스였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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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쇼는 끓이는 법도 무척이나 쉽다. 집에서 처치가 곤란한 과일들을 묵직하지만, 감각적인 느낌으로 숭덩 썰어서 냄비에 넣고, 여기에 와인 한 병 붓고, 기호에 따라 꿀이나 설탕을 넣어서 펄펄 끓인다. 그 뒤 한 김 식힌다는 느낌으로 약한 불에서 향신료류(시나몬 스틱, 팔각, 정향 등)를 넣고 10여 분 정도 더 끓이면 된다. 알코올이 적당히 날아간 뒤라 마시기도 부담 없고 계피향 때문인지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든다.

어린 두 남매를 둔 워킹맘으로, 12살 노령묘의 집사로 살면서 단 1의 휴식도 주어지지 않을 때, 눈 감고 뱅쇼 한 모금 마시면 무언가 텅 비었다 느꼈던 나의 기분이 적당히 쌉쌀하지만 달콤한 향기로 채워지곤 했다.

처음 집에서 뱅쇼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첫 아이의 모유 수유를 끊은 2016년의 크리스마스였다. 첫 아이가 너무 소중한 만큼 나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 출산도 특별하고 싶어서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인위적 의료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자연주의 출산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자연 출산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는데 꼭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되뇐 거 같다.

서른한 시간이 넘는 난산 끝에 3.9 kg의 남자아이를 낳았으나 후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모유 수유였다. 어렵게 완모 직수를 이어나가던 중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슴 트러블로 나는 백기를 들었다.

총 7명의 수유 전문가를 만나도 통 개선되지 않는 엉성한 수유 자세와 그로 인한 가슴트러블의 고통은 제2의 출산이었다. 결국, 딱 만 6개월만 수유를 하고 단유 기념으로 술을 마시겠다 선언했다.

마침 단유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이기도, 연말이기도 했기에 좀 더 기분을 내고 싶어서 집에서 뱅쇼를 만들어 먹었다. 그 뒤로 매년 뱅쇼를 끓여 마시다가 올해는 둘째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고양이의 노환이 진행되어 고양이 수발드느라 뱅쇼를 끓일 엄두도 내질 않았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없어진 고양이, 100계단을 오르내렸다

처음 지금의 고양이를 만난 건 2010년의 크리스마스 때이다(그러고 보니 그때도 크리스마스였다). 유기묘를 돕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금의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러시안블루 가족의 막내였는데 가장 몸집이 작고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그래서 이 녀석을 내가 곱게 키워보겠다며 데려왔다.

사실 나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지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고양이란, 길에서 마주치면 무섭고 우리 할머니는 고양이는 재수 없는 요물이라고 하셨다.

그러다 문득, 고양이가 내 처지 같이 느껴졌다. 사실은 사랑스러운 동물인데, 겉모습만 보고 사람들이 피하고, 편견 때문에 재수 없다고 거부당하는 고양이. 그것은 곧 나였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외양으로 판단하고 오해한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향해 뱉는 날 선 말들에 나는 아닌 척했지만 상처받았다.

결혼 후 고양이 알레르기 보유자인 남편과 아이가 있어도 알레르기 약을 먹으며 함께 지냈다. 그러다 큰 애가 18개월이 되던 해, 신랑의 알레르기가 점점 심각해져 고양이를 친정집에 맡기게 되었다. 친정집에서 지내는 동안 고양이는 점점 병들어갔다. 물론 친정 어머니도 병환이 심각해져 더는 고양이를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양이는 노환 때문인지, 보살핌이 부족했던 건지 설사와 구토를 달고 살았다. 뼈만 앙상해 가죽만 남은 녀석을 다시 내게로 데려왔을 때 얼마나 미안하고 자책했던지. 가장 도움이 필요한 1순위는 이 녀석인데, 아직 어린 둘째 때문에 이 녀석을 늘 후선 순위로 미뤄둔 것이 후회됐다.

나는 또 최선을 다해서 이 녀석을 돌보았다. 그랬더니 점점 살이 붙고 눈빛은 살아났다. 매일 새벽 나에게 다가와 응석을 부리면 나는 또 그것에 응당 반응해준다. 간식을 챙겨주고 궁디팡팡 쓰담쓰담도 해준다. 그렇게 새벽 내내 선잠을 자고 아침엔 일찍 출근하는 신랑을 챙기고 그러다 보면 두 아이가 일어난다.

하루쯤 고양이가 나를 깨우지 않고 푹 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고양이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 불현듯 어제 퇴근 후부터 쭉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집 안에서 보이지 않았다. 막 일어난 두 아이에게 집에만 있으라 당부하고 나는 정신없이 아파트를 뛰어다녔다. 남편이 집안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열어놓았는데 고양이가 나간 줄은 몰랐단다.  

지상 33층 지하 3층까지 총 3번 오르락내리락하며 고양이 이름을 불렀다. 경비실에 가보니 웬 검은 고양이가 집 앞에 있다며 두 집에서나 신고가 왔었다는데 그 집 앞에 가보니, 나무 막대기 하나가 있었다. 아마도 고양이를 쫓아낼 때 썼던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이 1시간 동안 대략 100층을 뛰어다녔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야옹" 거리는 고양이 소리에 꼭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다니다가 극적으로 31층에서 고양이를 찾았다. 이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뛰쳐나왔는데 온몸이 차갑고 축축했다. 깔끔한 고양이의 특성상 참다 참다 볼일을 본 모양인데 오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차가워진 아이를 내 품에 얼른 안았다. 비록 이 패딩은 10년 만에 새로 산 외투였지만 고양이 똥오줌이 묻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늘 미안함과 후회로 남은 이 녀석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직은 헤어질 수 없는 이 녀석과의 시간…. 찾았으니 다행이다. 이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지 무엇이겠냐며 속으로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오물로 범벅이 된 고양이를 씻기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밥을 주고, 큰아이 유치원 등원시키고 나도 샤워를 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이 모든 것이 12월 24일 오전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일어난 일이다.

거실에서 욕실로 향하는 아주 잠깐, 두 다리가 휘청이며 털썩 주저앉았다. 벗은 양말엔 땀이 잔뜩 나서 얼룩져 있었다.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내린 탓인지 며칠째 근육통에 시달리는 중이다. 샤워하며 나도 모르게 '아…. 뱅쇼 한 잔 마시고 싶다' 짤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뱅쇼 한 잔을 권합니다

그러고 보니 뱅쇼를 찾는 시기는 늘 이때쯤이다. 무엇인가 마지막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 언젠가 헤어짐은 찾아올 것이지만, 아직은 헤어질 수 없는 것들과 조우하는 시간. 묵은 한 해, 애써서 살아온 나를 위로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마음에 품던 그 시간. 그 모든 시간에 나는 뱅쇼를 마셨다.

뱅쇼는 나에게 그런 맛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같은 연말의 맛. 뱅쇼 한 잔 하며 글을 쓰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고양이와 건배사를 되뇌여본다. 우리의 인연은 헤어짐이 필연적으로 다가올테지만, 나는 아직 너와 함께이고 싶어. 아직은 헤어질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짠!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면 꼭 뱅쇼 한 잔 드셔보시라 권유하고 싶다.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도닥이며, 내 마음속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는 시간에 곁들일 음료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속에 품은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새해에는 그것들과 더 충만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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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자 냥집사,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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