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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8일 긴급조치 위반 재심현황 자료집을 발간하고,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와 간담회를 열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8일 긴급조치 위반 재심현황 자료집을 발간하고,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와 간담회를 열었다.
ⓒ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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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과 정치적 자유 억압 도구였던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법적 판단이 나온 지 10여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수백 명의 피해자가 재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아래 진화위)가 28일 공개한 '대통령긴급조치위반사건 재심현황 자료집'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사건에서 재심을 청구했거나 진행 중인 피해자는 총 재심 대상 1050명 중 885명(84%)으로 파악됐다. 사건 수로는 628건이다.

이번에 발표한 통계는 지난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 판결 1412건을 분석한 보고서와 재단법인 4·9통일평화재단이 발간한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재심현황(2020년 12월)', 대검찰청 회신자료에 근거했다. 긴급조치 피해자 전수를 파악하지는 못한 부분적인 분석 결과다.

진화위가 세 자료를 종합해 파악한 피해자는 총 1204명으로 긴급조치 1·4호 위반이 203명, 9호 위반이 1001명이었다. 이 중 최종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받은 154명을 제외해 총 재심 대상을 1050명으로 추렸다.

재심을 청구한 864명 중 218명은 검찰이 2017년 이래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경우다. 검찰은 긴급조치 1·2·4·9호 등에 대한 위헌 판단이 2010년부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연이어 나오자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직권 재심 조치를 취해왔다. 나머지는 피해자나 그 유족이 직접 재심을 청구한 경우 등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재심을 받지 않은 피해자가 165명에 달한다. 대부분 '집회·시위와 신문·방송 등을 통해 유신헌법을 부정·반대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한 긴급조치 9호 위반 피해자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과 당시 체제를 비판하거나 북한이나 소련을 우호적으로 표현했다고 긴급조치 위반자로 몰려 수사기관에서 강압적 조사를 받고 유죄선고까지 받았다.

"대화 중 '김일성이 정치를 잘해 이북은 살기 좋다, 소련이 세계에서 제일 부자나라다, 미국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고, '독재정치는 물러나야 한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총칼이 무서워 말을 못 한다'고 말함." (1977년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및 자격정지 2년 6월을 선고받은 무직의 시민 혐의)

"동네를 걸어가면서 인근주민들이 있는 자리에서 '박정희 정치는 독재정치다, 박정희는 나쁜 놈이다, 죽일 놈이다, 저 혼자 해 먹으려고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함." (1976년 대법원이 징역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농부의 혐의)

"폭행사건으로 군산경찰서로 임의동행돼 대기 중 순경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곧 죽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죽어도 좋다' 등의 발언을 함."(1976년 광주고법이 징역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수산물 상인의 혐의)

"미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미군과 위장 결혼허가서, 입국사증 신청서 등으로 결혼증명을 받아 이주 허가를 밟으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침." (1976년 서울고법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기업 사장 등 4명의 혐의)

  
28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개최한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단체 대표들.
 28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개최한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단체 대표들.
ⓒ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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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직권 재심 청구한 218명 중 형사보상을 청구한 수도 91명에 불과하다. 형사보상은 경찰, 검찰, 법원 등의 잘못으로 누명을 쓰고 구속됐거나 실형을 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다.

진화위는 "손해배상 청구소송(민사)만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피해자들이 검찰의 직권재심 청구에 대해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국가가 직접 배·보상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소송을 하지 않거나 피해 사실이 규명돼도 소멸시효 때문에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를 전체 피해자의 72% 정도로 추정한다.

정근식 진화위원장은 이날 열린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대표 면담에서 "국가가 나서서 직권 재심 청구한 것은 평가할 만하나 여전히 구제받지 못 한 피해자가 있는 것은 진화위의 과제"라며 "내달 검찰총장과의 면담에서 추가 재심 청구를 요청하는 등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 전원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 상설 기구 필요성에 입 모아
 
28일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와 간담회에 참석한 정근식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28일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와 간담회에 참석한 정근식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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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진화위는 재심현황 자료집 발표 후 긴급조치 관련 유가족 단체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선 진화위를 상설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나왔다. 

정 위원장은 "2009년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등에선 진실규명이 됐음에도 기회를 놓쳐서 보상받지 못 한 피해자가 매우 많고, 전쟁희생자 중에서도 '적대세력'이나 미군에 의한 피해자 국가배상 청구 소송은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모두 패소하는 등 피해 구제의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며 "일관되고 형평에 맞는 배·보상을 위해 관련 특볍법을 마련하거나 진화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하범 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 사람들 상임이사는 "학생·민주화운동 사건 경우와 달리 일반인들은 어떤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정보 전달도 느리고 사회적 방어막도 약하다"며 "이분들의 삶은 피해 학생들의 삶에 비해 더 비참하게 끝났을 개연성도, 이들의 2세에까지 불이익이 전달됐을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분들에 특별한 관심 가지고 최소한 국가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오. 우리가 잘못했소'라고 말해줘야 한다. 삶을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단체의 최형호 이사는 "진화위가 지속적인 기구로 상설화돼 이런 문제를 더 깊게 파헤쳐 나가야 한다"며 "사법부는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입증하라고 한다. 몇십 년 전 일어난 일인데다 당시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달씩 조사를 받아 불구가 되고 수감돼,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면회조차 시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장영달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공동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개념이 시작되고 진행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집권한 정치세력은 이를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이 활동이 불가능해졌었다"며 "누가 집권하더라도 진화위의 과업은 해야 한다는, 정부 기구 하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의를 표한 정 위원장은 "1기 진화위가 과거사 연구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10년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내년 예산에 소액이라도 반영시키려 노력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받지 않았다"며 "내부에서 총력을 다해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부분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태그:#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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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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