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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으로 이뤄낸 단체협약 체결
 
매주 금요일마다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진행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매주 금요일마다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진행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 재능교육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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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일,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피켓을 든 채 출근 선전전을 다시 시작했다. 1999년 노동조합을 만들 때 남들은 신고만 하면 받는다는 노동조합 설립신고 필증을 받는데도 우리는 30여 일이 걸렸다. 학습지 교사는 '개인사업자',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는 말도 노동조합 15년 내내 들어왔다. 덕분에 노동조합 15년 내내 회사를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무엇하나도 투쟁 없이 쟁취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는 일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2013년 8월 26일, 2076일의 농성투쟁과 202일간의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 농성을 마무리하고 지긋지긋했던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을 떠나면서 한동안은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다시 피켓을 드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긴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해고되었던 조합원들이 원직 복직하며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조합은 회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파기 후 원상회복하였던 단체협약을 2014년에 갱신 체결하였다. 현장 교사들이 가장 크게 고통을 받았던 (-)월 순증 수수료 삭감 제도와 자동 충당 제도가 폐지되었고, 휴가비를 지급받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

합의하지 않은 수수료 제도

그리고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수수료 제도를 변경하기 위해 회사와 수차례 교섭하였다. 회사가 제시한 개악된 수수료 제도를 노동조합이 수용하지 않자 2015년 3월, 회사는 수수료 제도 변경을 위한 교섭에서 노사합의 원칙을 깨고 일방적으로 수수료 제도 변경을 교사들에게 공지하였다. 그리고 2015년 7월, 노동조합과 합의하지 않은 회사의 개악된 수수료 제도를 시행하였다. 회사는 교사 각 개인에게 개별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변경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과 합의하지 않은 단체협약은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다. 노동조합에 다수가 동의했으니 개악된 수수료 제도를 수용하라는 협박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였다. 그러나 회사는 단체협약을 위반해도,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도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았다 하여 노조라 할 수 없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여 단체협약이라 할 수 없다"라고 한 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판단은 여전히 재능교육 회사에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6년여의 긴 농성투쟁을 마무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한동안은 서고 싶지 않았던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서 회사와의 투쟁을 시작했다. 현장 수업을 하지 않는 매주 금요일 다시 피켓을 들었고 출근 선전전과 집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금요일을 제외한 주중에는 현장을 다니며 재능 교사들에게 수수료 제도 개악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노동조합이 직접 그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까지

재능교육 본사 앞 투쟁을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난 2016년 6월 28일, 재능교육과 단체교섭을 위해 노사 간 상견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 1일에 제80차 단체교섭을 마지막으로 전문과 85개 조항, 부속합의서까지 잠정 합의했다. 조합원 총회를 거쳐 10월 29일 조인식을 마지막으로 단체협약 체결까지 5년 4개월이 걸렸다. 재능교육의 다섯 번째 단체협약이 완성되었다.

단체협약 전문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다. 회사는 첫 교섭부터 이 문구의 삭제를 요구하며 '관계 법령'으로 바꾸기를 요구했다. 이후 교섭 때마다 각 조항에서 '노동자성'과 관계되는 모든 문구는 삭제를 요구하거나 민법상 용어로 변경을 요구하며 노동자성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고, 그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조합은 늘 팽팽하게 맞섰다.

'조합 사무실의 관리유지비 지원', '조합 전임'에 대해선 오히려 노조법을 운운하며 삭제를 주장했다. 현행에서 '협약이 갱신 체결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된다'는 조항도 노조법에 따라 '효력이 경과 한 후 3개월만 효력이 유지된다'라는안으로 축소를 주장했다. 이 조항으로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더라도 재능교육의 학습지 교사들에게 단체협약의 효력은 지속되었다. '위탁계약서도 단체협약에 준하여 만든다'라는 조항도 삭제를 요구했다. 단체협약에는 '교사 계약 해지'에 관련한 내용이 있어서 타사처럼 계약 해지를 쉽게 할 수 있거나 재계약 심사제도 등 노동조건을 하락시키는 위탁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다.

그렇게 64개월을 보내면서 80차 교섭을 마지막으로 2021년 단체협약을 잠정 합의하였다. 회사가 노동자성과 관련하여 삭제 또는 변경을 요구했던 모든 문구는 기존대로 유지했다. 인정퇴회, 계약해지, 휴업, 휴업자의 처우, 외곽관리교실 교통비 지급, 건강검진, 자녀회비 지원, 경조금 지급, 하절기 지원(휴가비), 표창, 소득세 원천징수 환급 처리, 기념일 지원 등 타사에서는 지원하지 않거나 축소 시킨 학습지 교사 지원제도를 노동조건 하락 없이 단체협약으로 지켜냈다. 다만, 하절기 지원(휴가비), 표창, 자녀회비 지원에서 노동조합의 요구(조건 인상)를 관철하지 못하고 기존 단체협약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조합 사무실 관리유지비 지원과 마지막까지 쟁점이었던 조합 전임,협약의 효력 지속도 회사가 요구를 철회하고 기존 안을 유지하고 관리유지비와 전임 활동비 지급을 합의했다. 또 쟁점이었던 수수료 지급과 부정영업진상조사위원회 신설 요구는 노동조합이 요구를 철회하였다. 이 두 가지 조항은 쟁점이었던 만큼 노동조합도 아쉬움이 크고 이후 과제로 남겼다.

22년 동안 다섯 차례 단체협약 체결
 
2021년 10월 29일 단체협약 체결 조인식
 2021년 10월 29일 단체협약 체결 조인식
ⓒ 재능교육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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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7일,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1천여 명은 노동자임을 선언하며 33일간의 파업 투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우선 협상안을 합의하고 2000년 7월 특수고용 노동자 최초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2004년 9월(28개월), 2007년 5월(22개월), 2014년 6월(73개월) 그리고 2021년 10월(64개월). 네 번의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한 때와 단체교섭을 했던 기간이다.

20여 년이 지난 2021년 10월까지 2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단체협약을, 정상적이라면 열한 번을 체결했어야 할 단체협약을 다섯 차례만 체결한 것이다.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한 횟수에서 알 수 있듯 재능교육은 학습지 교사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교섭에서 단 한 차례도 성실하게 임한 적이 없었다. 파업 투쟁, 도곡동 사옥 점거 투쟁, 단식농성 투쟁, 국회 앞 송신탑 고공 투쟁, 삭발 투쟁, 2076일 혜화동 본사 농성 투쟁, 202일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 농성 투쟁, 그리고 매주 금요일 혜화동 본사 앞 투쟁. 그때마다 재능교육은 구사대와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폭행과 미행을 일삼았고, 민·형사 소송을 하고, 가압류를 하고, 해고를 하고, 단체협약까지 파기하였다. 조합원 집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고 노동조합 사무실 집기는 경매되거나 폐기 처분되었다. 단식했던 전 위원장은 단식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성 투쟁 중 해고된 조합원들은 구속이 되기도 했고 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기도 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은 일상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야만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특수고용 노동자 중 최초, 유일한 단체협약을 가진 재능교육지부는 이렇게 노동조합을, 단체협약을 지켜왔다.

또 다른 특수고용 노동조합으로 이어질 단체교섭

얼마 전 대교지부 확대 간부 대상으로 재능교육의 단체협약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때 대교지부 조합원들로부터 고생 많았다며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때보다 가슴이 벅차고 뜨거웠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재능교육지부가 지켜온 단체협약을 토대로 현재 학습지 업계 1위와 2위를 다투는 대교와 구몬 학습지 교사들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요구에 각 회사는 "대법원의 노동자성 인정 판결은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만 해당된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교섭을 회피하였지만, 대교의 경우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노동자성 인정'으로 승소를 하였다. 이제 곧 대교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단체교섭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구몬에서, 또 다른 학습지 회사에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이 만들어질 것이다.

재능교육 단체협약 투쟁의 성과는 학습지 현장을 넘어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 인정과 단체교섭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특수하게 차별받지 않는 4대 보험과 퇴직금 쟁취를 위해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서, 차별 없는 노동을 위해서 재능교육지부는 다시 한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님이 쓴 글이다.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여기, 현장>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특수고용, #단체협약, #노동권, #학습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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