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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회의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첫 출근이었는데 회의날이었고, 내가 작은 발표까지 맡았다. 통유리 너머로 상사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보였다.

이번엔 어리바리하게 굴지 않을 테다!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며칠 간 경구처럼 암송한 말을 되새기며 유리문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런데 몸을 안으로 밀어 넣는 속도가 문이 열리는 속도보다 빨랐다. 쿵!! 내 머리는 내 것이 아닌 듯 유리에 던져졌고 아기자기한 공간에 공격적 울림을 빚어냈다.

"아야.. 하하... 안녕하세요."
"뭐야, 등장부터 그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예요?"


문 앞에 앉은 두 분은 농담을 던져 주셨지만 벌써 날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생각했다. '망했다.'

망하게 둘쏘냐, 최악을 '궁예'했다

"시켜 주세요!!!" 처음에 스타트업 구인 소식을 듣고, 이사 계획까지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렸다. 담당 업무도 몰랐고 조건도 당장은 열악했지만 오랜 관심 분야였다. 일을 잘해서 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동안의 방황은 여기서 열매를 맺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날의 발표는 내가 부담감으로 염소처럼 떠는 바람에 한 번 중단되고, 그 후엔 발표 내용이 산으로 감으로써 중도에 정리됐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렇다. 나 낼모레 마흔인데 내 멘탈 쿠크다스다. 근데 이번엔 진짜 잘해보고 싶었다고…!
▲ 과한 목표 의식의 부작용 그날의 발표는 내가 부담감으로 염소처럼 떠는 바람에 한 번 중단되고, 그 후엔 발표 내용이 산으로 감으로써 중도에 정리됐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렇다. 나 낼모레 마흔인데 내 멘탈 쿠크다스다. 근데 이번엔 진짜 잘해보고 싶었다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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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ADHD가 아니다'라는 상담센터 의견의 여파 속에 있어서 병을 밝힐까 고민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얼빠진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직 망치지 않았어!'를 주문처럼 외며.

어느 날은 출근길 전철에서 상사와 연락을 하다 서로 같은 노선에 타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종종 그랬듯 내리면 만나서 사무실까지 같이 갈 상황이었는데, 우루루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내리고 보니... '또야?!' 한 역 앞서 내렸다. 허겁지겁 먼저 들어가시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에스컬레이터를 두세 칸씩 뛰어올라 단거리 달리기로 큰길까지 전력질주했다. 한겨울에 등이 축축해졌다.

"어디 갔다 온 거예요??" 택시를 탔지만 10분 늦게 도착한 나는 어리둥절한 상사에게 눈을 맞추지 못했다. "아, 그게… 일이 좀 생겼어요." 차라리 배가 아팠다고 하지. 일하러 오면서 일은 무슨 일?

실수했다고 고백할 수도 있었지만, 얼마 전에도 같이 출장 가던 중 비슷한 실수를 연달아 해서 길을 헤매게 만든 터였다. 더군다나 늘 다니는 길에서, 가만히 있으면 닿는 게 종점인데 똑바로 내리지 못했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귀여운 실수가 모이고 쌓이면 절대 귀엽지 않으니깐.

경험의 무서운 면은, 그간 겪어온 나쁜 상황들이 '객관적 경험치'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최악을 상상하게 만든다는 거다. 나는 생각했다. 눈치 빠른 나의 상사는 평소에도 내가 대중교통을 제대로 타고 내리지 못하는 걸 알아챌 거고, 그 사실은 그간 내가 선보인 다른 어설픔과 통합적으로 이해될 것이고, 결국 내가 처리하는 모든 일이 못 미더워지게 만들 거라고.

어둡게만 발휘되는 '관심법(이라 믿는 것)' 때문에 의욕 충만한 직장생활이 말리고 있었다. 지시나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누구보다 활발한 소통이 필요했지만, 머릿속엔 두 가지 시나리오만 맴돌았다.

① 이것저것 다시 묻는다 →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돼? 무능하네.'
② 짐작 가는 대로 한다 → '왜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하지? 오만하네.'

나는 대부분 무능함보다 오만함을 택했다. 한 가지를 물을래도, 이렇게 물을까 저건 아닌데 각을 재다 혼자 태풍 맞은 나무처럼 앙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무능한 주제에 오만한 직원'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자학과 허세는 한 끝 차이였다

나의 삐딱한 관심법은 손잡고 노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능력이 없으면 닥치고 열심히!'라는 강박관념이다. 그런데 이 강박이 허세를 낳았다. 처음부터 잘 보이려고 내가 해본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의 범주에 넣은 거다. 구멍 투성이인 내가 허세만큼은 빈틈이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뭐라고 하신 거지?? 무슨 뜻이지??)
"그럼요! 이번 주까지 해서 보여 드릴게요."(와우~ 지금 쌓인 업무가 열 개예요! 내일의 나여, 부탁한다.)
"하하, 힘들긴요. 다 제가 배우는 건데요."(명백히 힘들다... 아니 그보다 오늘도 퇴근하고 일만 하면 애인한테 차일지도….)


한마디로 모두 '저질렀다'. 이 일을 시작한 시기 나는 '노력'에 진력이 나 있었지만, 한편 보통의 결과를 내기 위해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과 수고를 쓰는 일에 너무나 익숙했다. 프로 정신이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이 드는 게 내 특성이니 마땅히 그래야 했다. 

문제는 내가 그 모든 걸 동시에 해낼 수 있다 믿고, 여전히 자신이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태엽이 다 돼 톱니바퀴가 자꾸 멎는 '생각공장'은 밤에도 주말에도 삐걱삐걱 돌아갔다. 그래야 엎친 데 덮치는 주문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

'일을 줄여달라고 해 볼까?'라는 고민 앞엔 심판관이 버티고 있었다. 최종 보스, '자격지심'. 그 거대한 풍채 앞에서 생각은 급선회했다. '업무량이 많긴 한데… 그게 내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니, 잘 못하는 걸 밝히기로 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란 얘기밖에 안 될 걸.'

회사가 지키지 않은 약속들을 생각하면 속이 부글거렸지만, 그걸 기꺼이 받아들인 게 누구냐, 다름 아닌 나였다. 뒤늦게 내 상태를 전달하려 해도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간 저질러 놓은 허세들 때문에.

'폭망'과 '극복'의 2지선다형 버리기

몇 달 만에 정식 계약의 순간이 왔다. 그러나 자신감을 상실한 나는 빵빵한 풍선에서 푸슈슈 바람 빼듯 허탈한 포기 선언을 했다. 마무리 짓는 시점도 방식도 별로였다. '이번엔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데...' 무조건 기대치에 맞추려고 한 것은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민폐가 되었고, 좋았던 관계마저 잃어버려 한동안 많이 자책했다.

책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에서 저자 리단은 자신이 정신병을 가지고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잘리면서 알게 된 것들을 소개한다. 여기에 '일을 너무 잘하지 말 것'이 포함되는 게 재미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드러내며 잘하려고 애쓰면 나중에 능력을 의심받게 된다는 거다.

우리는 증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정신병을 가지고 학업과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과도한 바람"이다. 정신병이 있으면 어떤 일도 잘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관점이 현실적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맥락이다.

사실 완벽한 수행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도 어렵고, 마라톤을 100m 달리기처럼 하는 선수가 멀리 갈 수는 없다. 과한 스트레스와 과로는 증상을 악화시켜 앞으로 일할 용기마저 잡아먹는다.

물론 이상적인 상태는, 진단명이 확실한 사람이 '정신병 프렌들리'한 조직에서 성공적으로 '병밍아웃' 하여, 강점과 약점을 공유하고 직무 범위와 업무량을 정한 뒤 해량과 지원 속에 일하는 것. 하지만 여기에 들어맞는 경우가 현실에는 많지 않다.

그래서 다른 상상을 해 본다. 만일 내게 자격지심과 그로 인한 부정적 예측, 강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폭망'과 '극복'의 흑백 구도에서 벗어나 상황을 균형 있게 봤다면? 낙인 효과만 걱정하기보다 처음부터 내 한계를 터놓고 의논했을 수도 있고, 타이밍은 뒷북이어도 나를 믿어준 사람들과 좀 더 소통에 가까운 대화를 해볼 수도 있었을 거다.

정신질환자의 인지 오류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트라우마에 젖은 뇌가 부정적 시나리오만 쓰는 AI처럼 구니까. 하지만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려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망하지 않았다는 거. 정신병이 있어도, 일을 잘 못해도, 아예 일이 없어도 모든 게 망하는 건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좀 망해도 된다. 망하기까지의 수고를 스스로 알아줄 수 있으면 된다. 그럼 '잘' 망했다는 자부심으로 또 나아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자부심이 자격지심을 대체하는 날도 올 거다. 그것만큼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됐냐고? 이것도 '허세'다. 그래도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냈으니, 앞으론 좀 다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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